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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稅로]어느 전통주 도매장 사장의 죽음
[가로 稅로]어느 전통주 도매장 사장의 죽음
  • 日刊 NTN
  • 승인 2013.05.2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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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본지 편집국장

 

지난주 국내 굴지의 전통주 제조업체 ‘배상면주가’ 대리점주 L모씨가 본사의 물량 밀어내기와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해 유서를 써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L씨는 자살하기 전 남긴 유서에서 “남양은 빙산의 일각이고, 살아남기 위해서 (판촉) 행사를 많이 했지만 남는 건 여전한 밀어내기”라며 본사를 강하게 비난했다.

L씨는 전반적으로 전통주 수요가 줄어들면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전통주 시장이 위축되면서 매출이 급감했고, 사업을 위해 빌렸던 돈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L씨는 한때 월 7000만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최근 월 1200만원으로 줄어 대리점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면허업자인 주류도매상이 현실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의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시각과는 다른 각도의 조명도 필요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L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업계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대리점주 자살사태를 몰고 온 ‘배상면주가’는 우리나라 전통주 업계의 선두그룹에 속하는 전통주 명가 기업이다. ‘국순당’ 설립자인 배상면 회장의 셋째 아들 배영호 사장이 1996년 세운 회사로 히트상품 ‘산사춘’으로도 유명하다.

‘배상면주가’는 전통주 바람이 불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가파른 성장을 지속했다. 배 사장의 형인 배중호 사장이 운영하는 ‘국순당’이 ‘백세주’를 내세워 코스닥시장에서 이른바 황제종목으로 급부상하며 파죽지세로 선전하던 때 ‘배상면주가’ 역시 상장을 추진했을 정도로 건실하고 전통주 제조능력이 뛰어난 회사였다.

특히 이 회사가 그동안 전통주에 들인 공은 각별한 정도를 넘고 있다. 지금도 경기도 포천에 있는 ‘배상면주가’의 전통주 제조시설과 전통주 박물관인 ‘산사원’은 전통주 업계에서는 조금 과장하면 ‘보고(寶庫)’로 여길 정도로 잘 정리를 해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배상면주가’는 2004년 연매출 371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전통주 소비가 급감하면서 매년 매출액이 크게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시장변화에 반 박자 늦게 대응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배상면주가’는 백세주·산사춘 등 약주류를 중심으로 한 전통주 시장이 급감하고 막걸리 소비가 증가하자 매출 감소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느린마을’이라는 막걸리를 생산했다.

그러나 ‘배상면주가’의 막걸리 시장 본격진출은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배상면주가’가 잔뜩 뜸을 들이다가 막걸리 시장에 진출했을 때는 이미 막걸리 시장이 ‘서울장수’와 ‘국순당’ 양강구도가 팽팽하게 형성된 뒤여서 '배상면주가‘는 소위 막걸리 열풍의 온기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막걸리 시장마저 급격히 위축되면서 매출 기여는 고사하고 ‘배상면주가’를 더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46억원 매출액에 당기순손실 2억6900만원을 기록했을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졌다. 이때부터 본사 차원의 물량 밀어내기도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말이 돌았다.

‘후발주자에다 제대로 된 시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유통기한 10일짜리 막걸리를 생산하는 ‘배상면주가’로서는 한계가 분명했고, ‘배상면주가’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대리점은 고통을 그대로 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배상면주가 사태’는 우리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전통주 도매상의 경영부진 어려움이 소위 갑·을 문화의 관점에서 조명돼 일단 예민한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다.

주류면허를 관장하는 국세청은 이번 사태를 접하고 주류업계 전반에 걸쳐 ‘밀어내기’가 있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밀어내기 판매는 주류업계에서는 일종의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솔직히 주류업계에서는 ‘밀어내기’와 ‘’판매독려‘가 현실적으로 구분이 쉽지 않다.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해석이 가능한 것도 이 대목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핵심을 ‘배상면주가’ 본사의 밀어내기에서 모든 것이 비롯됐다고 보기에는 보다 근본적 원인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솔직히 국세청이 이번 사태를 접하고 ‘실태조사를 벌인다’느니,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한다’느니 하는 말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적어도 전통주, 농민주 분야에서 국세청이 강력한 행정력을 발휘하며 시정해 나갈 동력은 이미 약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농민주와 전통주는 거의 ‘무개념’에 가까울 정도로 ‘진흥책’을 펼쳤고, 그 결과 엄청난 숫자의 면허가 ‘무한발급’된 상태다. 주관부서도 애매하고, 지자체까지 끼어들면서 ‘동네 술’까지 모두 면허를 받았고, 현실적으로 관리는 공백에 가까운 상태에 있다.

단적인 예로 농민주와 전통주 회사 중 이익을 내는 제조사를 찾아보면 그 실상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충 면허받고 대출받아 제조시설 갖추고, 테이프 커팅하면서 오픈하고, 생산은 하지만 소비자는 외면하고 판로는 끝이다. 거창한 규제완화의 산물이다. 농민주 제조의 원재료에 중국산이 사용된다면 누가 믿겠는가. 무자료에 덤핑판매까지 서슴치 않는 것이 전통주 시장의 현실이다.

배상면주가는 누가 뭐래도 전통주 업계의 로열패밀리다. 이런 회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고, 왜곡된 유통을 감행한다면 고사직전의 소규모 전통주 제조사들의 실상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번 ‘배상면주가’ 사태를 계기로 전통주·농민주 정책에 대한 정밀 점검이 필요하다. 아울러 규제완화도 좋지만 정부의 주류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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