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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세무조사 사실 보도, ‘공익’은 얼마쯤?
[데스크칼럼] 세무조사 사실 보도, ‘공익’은 얼마쯤?
  • 이상현 편집국장
  • 승인 2018.10.21 0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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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무조사 사실 알려지면 해당 기업 '비도덕적' '탈세' 등 연상되는 게 현실
- 정기조사 등 일반・통상적 검증절차도 주가하락 부르는 부정적 계기로 작용
- "세무조사 보도 안할테니 대가를 좀…" 천박한 상업언론의 발상도 큰 문제

요즘 무슨무슨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보도를 심심찮게 접한다.

그런 보도를 접할 때 “어떤 기자인지 참 대단하네”라며 부러워 한 적도 있다.

과거와 달리 요즘 ‘세무조사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곧바로 해당 기업의 주가가 하락한다. 그러다 보니 ‘부러움’도 잠시, 막연한 ‘걱정’이 앞선다.

기업 세무조사는 ‘정기조사’와 ‘비정기조사’로 크게 나뉜다. 기업이 법인세 등을 신고한 내용이 적정한지를 검증하기 위해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신고성실도 평가결과와 조사를 안 하고 넘어간 햇수 등을 고려해 지방국세청장 또는 세무서장이 일괄 선정하는 것이 ‘정기조사’다.

‘비정기 조사’는 공평과세와 세법질서 확립을 위해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지방국세청장과 세무서장이 선정한다. 일선 세무서장이 책임지는 긴급조사와 부분조사, 자료상 조사, 거짓 세금계산서를 받은 사람조사 등을 빼면 지방국세청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비정기조사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일선 세무서장의 책무를 벗어난 건은 지방국세청 조사국에서 비정기조사를 벌이는 것이다.

앞서 비정기조사를 ‘특별세무조사’로 불렀다. 호사가들은 서울에 본점을 둔 대기업에 대한 비정기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재계의 저승사자’라고 입방정을 떨기도 한다.

‘정기조사’와 ‘비정기조사’ 공히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산 권력과 죽은 권력의 교차지점에 세무조사, 정확히 ‘비정기조사=특별조사’가 꼭 있다. 역설적으로 ‘법이 정한 범위’가 강조되는 이유다.

개념・방법・유형・특성 등에 따라 ▲일반세무조사 ▲조세범칙조사▲추적조사▲기획조사▲통합조사▲세목별조사▲전부조사▲부분조사▲동시조사▲긴급조사▲간편조사▲사무실 간이조사▲주식변동조사▲자금출처조사 ▲이전가격조사 ▲위임조사▲교차세무조사 등 꽤 많은 용어로 세무조사를 분류한다. 물론 ‘조세범칙조사’를 ‘교차세무조사’의 형식으로 받는 것처럼, 개념・방법・유형・특성에 따라 분류는 중복된다.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는 것은 납세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5년간 안 받아서 6년차에 세무조사를 받는 게 납세의무를 소홀히 해서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의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해당 기업의 비도덕성을 떠올린다. 상장기업일 경우 여지 없이 주가가 곤두박질 치기 일쑤다.

납세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도 비도적적인 기업으로 낙인 찍히고 주가하락의 처벌을 받는다. 이쯤 되면 세무조사는 아주 분명한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분야임에 틀림 없다. 유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도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유죄가 드러나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보호받는 것과 사뭇 대조된다.

기업들이 세무조사를 받아 행정법 또는 형법 위반이 드러날 수 있지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 자체만으로 이미 회사의 도덕성과 주가가 동시에 추락하는 재산권 침해가 불가피하다. 공시나 언론 관련 제도가 부당한 재산권 침해를 지탱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럼 특정 기업이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언론에 포착될까.

국세청 조사국 사람들은 해당 기업 임직원이 언론사 기자들에게 정보를 흘릴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반면 기업 재무담당자들은 국세청 공무원들에게 혐의를 둔다.

다만 국세청 소속 세무공무원이 특정 기업의 세무조사 사실을 언론사 기자에게 누출하는 것은 세무공무원의 비밀 유지 의무를 명시한 현행 ‘국세기본법’ 조항(제81조의13)을 어기는 것이다.

국세청 공무원은 납세자가 세법에서 정한 과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과세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과세정보 제공 요구를 받은 세무공무원은 그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

세무조사를 받는 당사자 기업이 주가가 떨어질 줄 알면서 ‘우리 세무조사 받는다’고 떠벌일 가능성도 희박하다.

조사받는 기업 소속 임직원이 회사에 앙심을 품고 기자에게 제보하는 경우, 경쟁사가 탁월한 첩보활동으로 알아내 언론에 흘리는 시나리오, 기자의 잠복취재, 말실수로 친구나 지인인 기자에게 알려진 경우 등은 모두 일말의 설득력이 있다. 정답이 여러 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업 세무의 정상적인 검증절차가 포함된 세무조사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해당 기업의 재산권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공개돼야 할 정도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가”다.

언론이 세무조사 사실을 보도 ‘해치우는’ 상황에서는 세무조사 받는 기업의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 중 주주와 공급사슬, 채권자, 소비자는 손해를 본다. 주가가 떨어져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 투자나 제품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고 판매가 줄면 자금조달 금리가 오를 수 있다. 매출목표를 맞추려고 소비자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 국세청도 개별납세자의 비밀이 지켜지지 않은 환경이 그닥 달갑지 않다.

반면 회계사・세무사 등 세무컨설턴트들은 돈 벌 기회가 생긴다. 해당 기업을 한방 먹인 언론사는 광고를 받을 수 있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 등 권력자도 세무조사 무마청탁을 받아 존재감을 과시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게 절대 ‘공익(Public interest)’은 아니다.

세무조사 사실이 알려져 해당 기업의 주가가 하락, 그 회사와 그 협력업체(공급사슬)의 고용이 위축되거나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국민 전체의 손실이다. 이 손실은 언론사나 세무대리인, 법을 넘어 권한을 행사하려는 권력자들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제로섬 게임’이다. 다시 말해 공익은 커녕 ‘공공의 손실’이다.

기자는 몇몇 언론사 발행인들과 가졌던 썩 불쾌했던 인터뷰 기억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 정보를 빼내 해당 기업에 ‘비보도 조건’으로 광고를 요청하면 좋지 않겠소?”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그들은 모두 기업 출입기자 출신들이었다.

상업언론이 대세인 현실의 편린이라 여겨 묵과했지만, 당시에도 마음은 착잡했다.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마치 무슨 대단한 아이디어인듯 떠벌이는 입매가 밉살맞았다.

세무조사 보도가 ‘제로섬 게임’이라면 제도를 바꿔야 할 것이다. 차제에 기자들도 이 문제를 한번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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