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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은퇴는 없다”…인생·사업·나라 혁신에 나선 베이비부머
[인터뷰] “은퇴는 없다”…인생·사업·나라 혁신에 나선 베이비부머
  • 이상현 기자
  • 승인 2019.04.30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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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공직 마치고 새 일, 새 삶 나선 최기섭 시흥세무서장

-열정・자부심으로 세제・감사까지 두루 경험 “행운”
- 6급 직원 첫 외부위탁교육 기회 따낸 국세공무원
- 5월부터 경제현장 납세자 돕는 세무사로 새출발
- “가업상속, 강소기업 창업주는 잠못이루고 있죠”
최기섭 시흥세무서장
최기섭 시흥세무서장

“지금 생각해도 그 땐 참 열심히 살았어요. 어쩌면 평생 공부해야 할 것을 그 때 다 한 것 같다니까. 최고를 향한 열정이 보람과 자부심을 낳고 다시 열정으로 이어졌던, 그런 시절이었어요.”

지난 4월26일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흥세무서 2층 서장실에서 만난 최기섭 서장이 기자를 만나 흐뭇한 표정으로 지난날을 회고했다. 36년 공직생활을 돌아보면서 열정에 차서 ‘없던 기회’도 만들어 주경야독 하던 30대 시절이 그에게 단연 ‘황금기’였다고 한다.

“국세청에 재직하면서 가장 좋았던 시절은 평생의 업인 세무를 다방면으로 통찰하고 익힐 수 있게 폭넓은 업무를 볼 기회가 주어졌던 30대 였던 것 같아요. 7급 승진하자마자 기재부, 당시 재무부 세제실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리갈 마인드(Legal mind)가 생기니 시야가 넓어졌고, 공부 욕심도 더 났습니다.”

 

조직이 인정한 열정, 물 오른 공부, 리갈 마인드

재무부 세제실 근무 당시 했던 조세제도 개정 작업이나 여론수렴 등의 업무는 국세공무원으로서 최 서장이 나라와 세금에 대한 남 다른 생각을 갖게 해준 귀중한 경험이었고, 당연히 값진 자산이 됐다. 나중에 세제실장과 재정경제부 장관, 지금은 인접 안산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김진표 장관이 그의 부서 과장이었던 시절이었다.

최 서장은 당시 세제실 김진표 과장과 함께 재무부가 만든 세법과 각종 정책들의 입안을 위해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설득하고 보챘던 기억도 새록새록 꺼내놨다.

“30대 초반에 재무부 갔다와서 본청과 지방국세청을 오가며 일했는데, 세제실 다녀온 뒤로 본청 심사에서 붙잡고 법리를 많이 다루는 송무부서 선배님들도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가 많았죠. 물론 제가 원한다고 부서를 골라가는 것은 아니었지만요.”

대전지방국세청장까지 지낸 노석우 당시 과장이 최 서장의 보쓰(직장상사)였다. 노 과장 역시 일과 공부 욕심이 남달라 공부가 물에 오른 최 서장과 죽이 잘 맞았다고 한다.

“당시 노 과장님이 직원들 실력이 고르지 못하다며 제게 교육을 부탁하셨어요. 법원 판례와 심판원 심판례를 수집해서 분석, 직원들과 공유하고 토론과 교육을 했습니다. 낮에는 심리 업무, 밤에는 이슈가 될만한 판례와 심판례를 요약정리했습니다. 대단한 열정과 체력이었죠.”

 

국세청 세무주사의 외부위탁교육 기회 공식화 시킨 장본인

부서장인 노석우 과장이 공부 욕심이 남다른 탓에 최 서장도 자극을 꽤 받았다고 한다. 본청 심사 부서에 근무하던 1995년, 노석우 과장은 일과 후 연세대 법무대학원에 다녔다. 당시 6급 직원이던 최 서장도 나라에서 장학금을 주는 외부 위탁교육을 받고 싶었다. 재부무 세제실 당시 보고 들었던 세법과 정책 입안 업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것.

그런데 당시에는 6급 직원에게 외부위탁교육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5급 사무관 이상에게만 기획가 주어졌던 것. 당시 6급 세무주사였던 최서장은 공무원 교육훈련을 총괄하는 행정자치부를 찾아가 담당자에게 따졌다고 한다. 간절히 원하고 꼭 필요한 사람이 공부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직급이 낮으면 ‘주경야독’도 안 되는 거냐고.

행자부도 최 서장의 노력과 열정에 감복,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6급 세무주사에게 외부위탁교육 기회를 부여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최 서장은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에 입학, 가끔 학과 동료들과 막걸리도 마시는 혹독한 ‘주경야독’에 접어들었다.

국세청 조직이 기억해야 할 점은 최 서장의 공부 극성이 그 뒤로 아예 국세청 6급 세무주사의 외부위탁교육 길을 열어제꼈다는 점.        

“그 때 6급 직원은 안보냈는데 행자부 찾아가 ‘티오 하나 더 주십시요.’ 그렇게 티오(T/O) 따내서 다녔고, 그게 국세청 세무주사들 티오로 굳어진 거예요. 제가 국세청 6급 교육 티오를 따낸 거죠. 물론 후배들은 제가 아닌 나라에 고마워 해야죠. 한학기 등록금이 370만원, 졸업할 때까지 1500만원의 학비를 나라가 대주는 것인데, 열심히 공부해야 조금이라도 갚죠.”

 

음지에서 본 공직사회도 체험…“국가 신뢰가 최우선”

최 서장은 2006년부터 약 3년간 국무총리실에서도 근무하면서 감사업무와 직무감찰 업무까지 두루 셥렵했다.

지금의 총리실 공직윤리담당관실 업무인데, 고위공직자 관련 비위 첩보를 제보 받아 뒷조사도 하고 하는, 최서장 표현으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같은 암행어사” 업무였다. 각 부처 장차관, 1급 공무원들 동향을 보고하고 감사원과 조율해 공기업에 대한 감사도 벌이던 현대판 ‘암행어사’직을 그가 수행했던 것이다.

총리실 파견 기간 중 했던 ‘암행어사’ 직무는 이후 본청과 지방국세청 조사국과 감사 부서에서 일하게 된 계기였다. 다만 2년6개월여 총리실 파견 기간 친정인 국세청이 승진이 빨라져 동기들보다 승진이 다소 뒤쳐졌다. 하지만 최서장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감사나 감찰 분야 일을 하다보니 공직사회 전반을 통찰할 수 있었고, 공직사회의 음지를 볼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술자리에 골프 자리도 경험했던 시기”라고 표현했다. 자세한 무용담은 다음 기회에 듣기로 했다. 아무튼 최 서장의 40대는 그렇게 또 다른 의미의 치열한 공직사회에 대한 체험 시간이었다.

“그렇게 또 인생의, 공직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직장에서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주지 못한 게 아쉽고 후회스럽습니다. 진정성 있게 사람을 대하는 정신자세를 후배들에게 강조하고 싶었죠. 대민 부서이다 보니까 정성스레 납세자를 대하면 누구든 무리해서 세금 납부를 회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스웨덴 국세청 개혁의 1차 목표가 ‘국가에 대한 신뢰 회복’이었다는 점, 도덕성에 호소하는 형식적 캠페인이 아니라 행동심리학에 기반한 납세자 신뢰 구축이었다는 점, 이런 저련 이야기로 인터뷰는 두시간을 훌쩍 넘었다.

“세무조사 받는 업체는 죄인이 아닙니다. 절대 죄인 취급 하면 안됩니다. 납세자를 겉치레가 아닌 진정성을 갖고, ‘갑’으로 대하면 세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국세청을 떠나며 든 생각은 아닌 듯 했다. ’진정성’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가 만들어 가는 혁신

최서장은 5월15일 개업식을 갖고 자신의 직책이 ‘서장’에서 ‘세무사’로 바뀜을 공식 선언한다. 퇴직과 동시에 5월 종합소득세 신고를 ‘공수전환’으로 치러야 하는 최서장, 아니 최 세무사의 표정에 약간의 긴장도 감돌았다.

“아직 퇴직금이 정산이 안됐잖아요. 몇 개월 걸리는데 퇴임 후 바로 기존 사무실 인수 방식으로 권리금 주고 개업하다보니 목돈이 들어갔어요. 선배들과 술 한잔 하면서 부탁했더니 흔쾌히 꿔줬어요. 큰 거 몇장, 적은 돈이 아닌데 말이죠. 인생 헛 살아온 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62년생 범띠, 선이 굵고 선후배 의리를 중시한다. 멀리 홍천세무서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까지 퇴임식 때 참석한다고 했다.

최 서장이 개업하는 시흥지역에는 시화 반월공단 공업단지에 영세중소기업들을 포함한 소규모 법인만 1만개가 영업중이다.

“창업 1세대들, 나이 많죠. 60대 후반, 70대, 80대도 아직 일해요. 2세들이 제조업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응석을 부려 머리 싸맨 제조업체 사장들 꽤 많습니다. 물려받는다고 해도 상속세 등 65%를 세금으로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많아요.”

많은 중소기업들이 매물로 나오고 기업 인수합병(M&A)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기업 중역으로 근무하던 베테랑들이 알짜 중소기업을 인수해 일으키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그는 30대부터 쌓은 세법지식과 조세재정정책, 세무조사와 감사 실무까지 두루 섭렵한 세무행정 경험으로 법인의 상속과 증여, 양도 등에 비교우위가 있다. “아직 이런 현장 상황을 공직사회가 잘 몰라요. 중소기업 인수합병 문제의 대부분이 세금 문제이고, 수요도 급증해 이른 바 ‘블루오션’ 입니다. 2세에 사업승계하는 작업, 새로 시작하는 저로서는 일감이 많은 셈입니다. 사실 이 얘기는 비밀로 하고 싶어요.”

 

공직 후 기다리는 새 일터…되돌아 보는 가족

“종업원 고용 유지, 업종 변경 금지 등 중소기업이 현행법상 가업승계요건 지키자면 사업을 유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대비 해야 합니다. 감면 요건만 되면 가급적 각종 조건에서 자유롭게 해줘야 가업의 노하우는 유지됩니다. 강소기업은 나라 경쟁력 차원에서 사라지는 것보다 2세가 물려받는 게 낫습니다.”

최서장은 여야가 앞다퉈 가업상속지원을 강화하는 입법을 서두르고 있지만, 현장에서 고령의 창업주가 밤잠 설치는 내막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세무사로 첫 업무는 5월 종합소득세 신고이지만, 최 서장의 ‘핵심 경쟁력’인 비즈니스 모델은 가업상속자문을 포함한 중소중견기업 자산관리 분야다. 짬짬이 고교인맥과 국세청 인맥들을 망라해 ‘콜드콜(cold call, 영업상 최초 접촉 시도)’을 준비해왔다.

그는 인터뷰 당일 시흥세무서 관사 짐은 다 정리했고 사무실 짐은 토요일에 정리한다고 했다. 그간 준비해 놓은 영업대상자 목록은 딸에게 엑셀파일로 정리를 부탁했다. 마침 인터뷰 도중 30대 초반인 딸이 엑셀파일 정리건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서른 둘 큰 딸에게 “일당 줄게”라고 말했다.

법인카드도 운영지원과 직원에게 반납했다. 5월이면 시흥세무서 관사를 비우고 고양시 자택에서 시흥 세무사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맏이인 딸과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아들 모두 결혼 생각이 없어 걱정이다. 비즈니스도, 가족과 꾸려갈 일상도 모두 새롭다. 열정적으로 달려온 36년 공직생활이 마감되고 새 일터가 기다리고 있다. 베이버부머인 그에게 세상은 늘고단하지만 성취의 묘미를 주는 도전, 혁신의 대상이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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