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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稅想) 칼럼] 밀레니엄 세대의 도래
[세상(稅想) 칼럼] 밀레니엄 세대의 도래
  •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 승인 2019.05.0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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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속담이 있다. 과거 유교적 가족관계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형이라는 존재는 준(準)부모였다. 농경시대에는 다산의 필요성이 있었다. 자녀는 곧 일손이었기 때문이었다. 예닐곱을 낳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농사일로 바쁘면 집에서는 형과 누나가 부모이자 유치원 원장을 겸임했다.

이러한 전통사회가 크게 요동친 것은 6.25전쟁이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이성 대신 광기가, 존중 대신 증오가 지배했다. 어제의 이웃에게 총부리를 들이댔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급격히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다. 그들이 바로 오늘 날의 베이비 부머(baby boomer)이다.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나서 산업화의 역군으로 열심히 뛰다가 이제는 은퇴하고 있다. 이들 베이비 부머의 자녀들을 밀레니엄 세대라 부른다. 그들은 조직보다 개인이 우선이고, 회사생활보다 개인생활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결혼과 자녀는 당위가 아니라 단지 취사선택사항일 뿐이다.

1980년초부터 2000년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는 20대와 30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판이한 가치관과 문화를 가지고 새로운 trend setter로 나서고 있다. 혼자 여행 다니고, 독신주의를 선언하는가 하면, 혼밥이 맛있고, 무자녀가 편하다고 한다. 이들은 광활한 인터넷 세상을 손오공처럼 마음껏 헤집고 다니며 이전 세대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사용에 얼마나 능한가에 따라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는 새로운 사회적 격차가 생겨났다. 귀성열차나 문화행사 표를 예매하려 해도 베이비 부머들은 표 구하기가 어렵다. 인터넷 활용 실력이 젊은 세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젊은 세대가 속전속결로 매진시켜 버리므로 나이 든 분들은 현장에 가서 긴 줄을 서야만 한다.

과거의 도제식 직업훈련이나 수업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달리 알아볼 곳이 없던 시절에는 선임이 가르쳐주는 대로 배워야 했지만 지금은 손가락만 까닥 클릭하면 전세계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가히 TMI 시대(too much information Era)라고 할만하다.

반면에 6.25전쟁을 마치고 1950년대 국세공무원을 시작한 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가 군에 소집되어 참전해 보니 선임의 말은 곧 생명과 같더란다. 전투요령에 경험이 많은 선임들의 말은 생존에 절대적이었다. 휴전되고 나서 세무서에 와보니 거기 역시 세법이나 세무행정에 관한 아무런 책자도 없거니와 어떻게 하라는 사무처리규정도 없으니 오로지 선임의 입만 바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출장을 나갈 때면 선임의 가방을 공손히 들고 따라 다니며 수행원 노릇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배는 정말 경외로웠다고 한다. 회사에 가서 장부를 잠시 보자고 한 다음 준엄하게 영업세 몇 조를 위반했다거나 물품세 몇 조에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기 일쑤였는데 그 때마다 사장님들은 벌벌 떨었기 때문이었단다.

하도 궁금하여 급기야 귀서 길에 조심스럽게 물었다고 한다. “선배님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세법 조문을 다 외고 계신가요?” 그러자 그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문? 그거 그냥 생각나는 대로 조문을 대는 거야. 세법책이 세무서에도 몇 권 없는 판에 납세자들이 알 리가 있나!”라고 하더란다.

그분의 50년대~70년대 이야기를 여기에 다 소개할 수는 없다. 고생담도 많지만 때로는 어이가 없어서 공개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보가 없으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좀 더 공평하게 바꾸는데 인터넷과 SNS가 큰 몫을 했다.

공무처리나 전투마저 선배들의 입과 행동을 지켜 보며 배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전국의 납세자가 똑같은 행정 서비스를 받도록 일관성 있는 업무분야별 사무처리규정이 도입된 건 과연 언제부터일까?

가령 우리 국민들이 여전히 벌벌 떠는 세무조사에 관한 사무처리규정은 언제 제정되었을까? 한국전쟁이 끝나고 65년이 지난 지금까지 숱한 세무조사가 있었는데 과세관청에 일관성 있고 객관적인 조사절차가 도입되어 전국에 똑같이 적용되는 사무처리규정을 훈령으로 공시한 것은 언제부터일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조사사무처리규정 제정을 한번 검색해보면 2006년 2월이라고 나올 것이다. 혹여 늦은 게 아니냐 하더라도 지금의 과세관청 분들 잘못은 결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옛 선임들의 게으름(?) 탓이라고나 할까.

이래저래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정보공유의 시대에 들어 온 것을 우리는 환영한다. 형보다 아우들이 더 잘하는 세상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물론 형들의 입장에서는 사무처리규정 이전에도 세무조사지침을 공문으로 전국에 내려 보내 일관성 있게 조사업무를 추진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지밀한 대외비 공문이어서 정작 세금을 내주시는 국민들에게는 비밀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말이다.

정부의 정보가 많이 공개될수록 선진국임은 틀림없다. 일전에 여의도 국회에 와서 세미나에 참석한 스웨덴 국세 공직자의 말은 인상적이다. 스웨덴은 매년 실시하는 각 부처 신뢰도 조사에서 국세청이 1위라고 하여 정말인지 인터넷 등을 통해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그리고 많이 놀랐다. 유럽의 친납세자적 세정은 우리에게는 아직 꿈같아서였다.

그들의 세정 서비스는 상상을 넘어섰다. 가령 국민으로부터 이메일을 모두 공개하라는 요청을 받고 자신의 대외 이메일 내용을 모두 제공했다는 내한인사의 증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에 스웨덴 국왕이 전쟁을 일으켜 온 국민이 고난을 겪은 전례 때문에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을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자연스럽게 법제화되었다는 거였다.

과세관청을 전역한 분들은 서로 자주 만나며 과세관청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전직 국세공무원들은 발전하는 조국을 위해 끝없이 늘어만 가는 재정수입을 충당하는 큰 소임을 맡았던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그분들의 과거 무용담들은 존경스럽다. 하지만 일정 부분 징세편의적이었으며 납세자들의 권익을 뒷전에 두었던 죄송스러운 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개중에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개발독재시대 시각으로 세정을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의 사고방식은 국가는 국민을 우선하므로 국민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이다. 현임들이 그런 철학을 가지고 행정에 임한다면 공무원 생활이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산업화 시절의 공무원은 능률과 실적 지향적이었다. 상당 부분 인권 감수성이나 적법절차는 개념에 없었다. 그 결과 존중되어야 할 사회적 가치들을 적잖이 희생하여 고속성장이라는 열매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시대는 아니다. 밀레니엄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행정은 새로이 부상하는 밀레니엄 세대들의 가치관을 많이 연구하는 것이다. 예전처럼 국가는 선이니 납세자들은 나를 따르라 할 수는 없다. 정치든 행정이든 신인류 밀레니엄 민초들을 자극하여 좋을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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