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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9월 위기설, 누구의 위기일까?
문재인 정부 9월 위기설, 누구의 위기일까?
  • 이상현 기자 / 편집국장
  • 승인 2019.07.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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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한일관계 재정립은 털 것은 털고, 태울 것은 태우고 가는 것

12일 도쿄 한-일 과장급 실무회의 현장을 담은 사진은 기자의 주말 휴식을 그예 잡쳤다.

무슨 창고 같이 보이는 회의실 바닥에 쓰레기가 보였다. 일본측 과장급 실무자들은 악수는커녕 형식적인 통성명도 없이 현해탄을 건너온 한국의 과장급 실무자들을 ‘악성 민원인’ 보듯 바라봤다. 탁자에 법전을 놓고 사진 기자들을 위해 화이트보드에 적어 놓은 회의 제목은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였다. 온통 소심하고 용렬한 일본이다.

그러나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일본을 이렇게 소심하고 용렬하게 만든 책임이 한국에 없지 않다.

모든 ‘진영론적’인 프레임을 배제하고 사실, 핵심만 짚자. 196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 일으킬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 일본과 돈으로 전쟁범죄를 합의하려고 했다. 일본이 스스로 전쟁범죄국가임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그 돈으로 굶주림부터 해결했어야 하는 정황도 있었음을 알지만, 비극은 언제나 ‘척박한 환경에 대처하는 부적절한 대증요법’에서 비롯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보수주의자 드골 대통령의 프랑스는 나치부역자들을 수만명 사형시켰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은 일제부역자들을 처단하지 않았다. 외려 그들이 보유한 적산으로 현재 한국 경제가 움텄다. 일본은 이 때 치른 배상금으로 죄값을 치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당초 전쟁범죄라는 죄를 인정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가해자가 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는 것과 ‘죄’인지도 모르고 그냥 재수가 없어서 걸려든 너절한 자해공갈단에게 합의금을 건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굶주린 한국인들에게는 돈 말고는 사유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판단해 버린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원래 유전적으로 남의 고통과 불행을 못 느끼는 사이코패쓰나 소셜패쓰는 아니다. 패전 후 모든 것을 잃은 일본 국민들은 ‘전범국가’라는 정신적 사형선고까지 맞닥뜨렸다. 당시 일본 관료들은 천왕을 평화주의자로 상징조작 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정신적’ 멸망을 모면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요컨대 한국의 비극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정의와 순리를 따지지 않은 데서 출발했다면 일본의 비극은 역설적으로 선배 관료들의 상징조작(전범의 수괴인 천왕을 평화주의자로)에서 출발했다. 일본의 목숨은 구했으나 선한 일본 민중들의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상처가 전두엽으로까지 심각하게 번진 일부 권력지향적 정치인들에게 국가권력을 허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연초 언론계 한 선배로부터 ‘문재인 정권 9월 위기설’ 얘기를 듣고 궁금증이 생겼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절반을 채우는 시기는 11월인데, 하필 9월이냐’는 궁금증이었다. 선배는 딱히 ‘9월’의 근거를 답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5년 단임의 한국 대통령은 임기 2년 6개월을 마친 시점부터 소위 ‘레임덕(lame-duck)’ 현상이 시작된다. 집권 말기 지도력 공백 현상을 맞은 정치지도자를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하는  정치용어다.

최근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 금지 조치를 맞아 한일관계가 부쩍 악화된 것을 보니 ‘문재인 정권 9월 위기설’은 오랜 기간 준비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위기’의 요체는 단연 경제다.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에 정권의 명운을 건 문재인 정부가 지구촌 전역에 엄습한 경기침체를 피해갈 길은 애당초 없었다. 재정을 동원한 소득주도정책이 성공하기에는 경제가 너무 국제화 돼 있다. 정부 관료들이 실적을 위해 친인척을 동원한 가짜 일자리 만들기까지 서슴지 않았지만 어림없었다.

대기업들의 수출에 많이 의존하는 산업구조상 내수, 특히 소득과 소비를 부양하는 확대재정정책이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가계 빚 이자 내기에도 빠듯하니 저임 일자리, 최저임금 상승 등이 ‘소비→투자→성장’으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다.

법인세 등 세제개편을 통해 자국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북돋운 트럼프의 보호무역정책은 한미, 한중, 한일 교역체계를 단숨에 교란시켰다. 외교안보 변수까지 개입돼 문재인 정부는 궁지로, 코너로 몰렸다.

진작부터 이 틈을 비집고 불순한 기회를 모색한 내외부 세력들이 있다는 소문이다.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 직후 지난 6월30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미국의 지지아래 중국의 ‘일대일로(一大一路)’에 맞서 주도한 인도·태평양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의 협력을 심화하겠다고 공식 밝혔다.

같은 날 일본은 한국을 겨냥한 ‘경제보복’이라는 논란에 휩싸인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의 전략적 행보에 협력을 시사했지만 한일관계 악화로 미국의 한미일군사동맹 요구에 한국만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절묘하게 반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친미반북’ 구호만 외치는 사람들이 최근에는 친일구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그들의 신화 속 주인공과 똑 같이 ‘돈’이 모든 가치의 맨 앞에 있다. “일본을 왜 건드렸냐”, “미국에 중재를 부탁해라” 등을 주문하는 사람들이다.

기자가 최근 인터뷰 한 한 일본전문가는 “일본이 ‘친북반일’ 문재인 정권의 경제 실정을 확증시켜 줄 상황을 적극 조장해 탄핵 정국을 만드는데 오랜기간 물밑작업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도 그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는 곧 한국 정부가 이에 부역한 친일 한국인들을 대대적으로 발본색원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문재인 정권 9월 위기설’ 얘기가 불현듯 다시 떠올랐다. 실제 한국에서 ‘아베 장학생’들이 누구인지도 새로운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바람 같아서는 문재인 정부가 박정희 정권의 대일외교 오류를 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아베가 한국의 외교 유전자를 바꿀 좋은 기회를 주고 있는 측면도 있으니까.

“니 같이 똘망한 놈들이 다른 나라 편에 섰다는 것은 나라가 진작 망해부렀다는 증거여. 망한 나라 돌아볼 것도 없고 인자부터 새 기회를 잡아 보드라고.”

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남 고부관아 이방 출신 악덕 고리대금업자 백만득(중인 계층)이 아들 백이현에게 한 말이다. 백이현은 양반계급에 한이 서린 개화주의자로 일본 공사관 소속의 당대 실력자가 돼 아버지 앞에 나타났고, 돈이 인생의 전부인 만득은 친일파 아들을 반갑게 맞았다.

세상 삼라만상이 작동하며 상호작용하는 논리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구한말 착취자의 지위를 유지하려 양반들은 일본에 맞섰고,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착취질서를 뿌리뽑으려는 일부 중인들은 개혁을 위해 친일파가 됐다. 지난 일의 옳고 그름을 따져 허황된 진영논리를 보강하려는 게 아니다. 최근 한일관계를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자는 것이다.

일본 지식인들 상당수가 ‘재수 없어 너절한 자해공갈단에게 걸려들어 합의금을 건냈다’는 아베류의 천박한 사고를 부끄러워 한다. 물론 전쟁범죄자를 평화주의자로 상징조작한 것을 입증하는 것은 무척 힘들 것이다. 다만 한국도 과거 국가 리더십의 오류를 분명히 인정하고 일본과 좋은 관계를 새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애써야 한다. 값싼 반일감정은 필요 없다.

한국은 이제 굶주리는 국가가 아니다. 털어버릴 것은 털고, 태울 것은 깨끗이 태우고 갔으면 좋겠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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