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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개방사회와 소통의 방식
[칼럼] 개방사회와 소통의 방식
  •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 승인 2019.08.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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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유럽에서 오랫동안 유학하던 이가 김포공항(인천공항이 생기기 전)에 도착하던 날, 흰 눈이 펑펑 쏟아졌다고 한다. 그날 한국의 빛깔에서 고국을 실감했단다. 흑백필름이 펼쳐지는 듯했던 거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백설의 나라였는데 공항 안에는 온통 까만 머리에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뿐인 게 그녀에게는 생경했다. 흑과 백. 오랜만에 찾은 고국은 두개의 빛깔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인은 유럽인들처럼 원색을 수용하기가 어렵단다. 이유는 검은 머리 때문이라는 건데 흑모와 어울리는 ‘깔’ 맞춤을 하다 보니 자연 검정이나 회색류가 한국인의 색깔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색감이나 기호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쯤은 일상이 된 물 밖 여행을 통해 느끼는 것이긴 한데 70년대에 ‘외국물’ 좀 먹던 이야기이니 그 느낌이 얼마나 강렬했을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늘 걷던 길이 햇빛 때문에 달라 보이는 시간, 봄볕에 발을 헛디딥니다. 햇빛 때문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달라지다니요. 꽃과 나무와 마음을 변화시키는 봄볕에 하릴없이 연편누독(連篇累牘)만 더합니다”라고 읊조리는 시인 조용미 말고도 여인네들은 빛과 색깔에 민감한 것 같다.

어찌되었든 북유럽 생활에서 머리 색깔의 다양성만큼이나 견해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걸 실감했다고도 했다. 상대적으로 한국 사회는 스탠스(stance) 취하기가 불편한 때가 많다고 한다. 거대한 양분법 사회 같기 때문이다. 우리 편이 아니면 반대 편이 되어 버리는 것은 억울한 일이며 스펙트럼이 좁아도 너무 좁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녀의 말처럼 세상은 흑과 백, 아군과 적군의 이분법으로 나뉘는 느낌이다. 국제사회가 그렇고, 우리 사회도 그러하다. 굳이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개방사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의견과 시각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논리적 대화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요 개방사회라는 것을 이해는 한다. 다만 그렇게 실천하느냐는 별론이지만.

개방사회는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평양 같은 폐쇄사회는 사실은 물론 해석조차 독점하려 든다. 바람직한 사회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야 한다. 조직 논리에 함몰되는 경우 폐쇄사회에 기운다. 행정을 조직과 민원인이라는 피아(彼我)로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이분법적이고 폐쇄적이다.

물론 견해의 다양성에만 방점을 찍어서는 안된다. 여론의 장에서 누구의 견해가 더 타당한지 걸러지고 그 과정에서 보다 설득력이 강한 의견이 인정받은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세미나를 열고 토론하는 것은 행정의 기본이다. 문화적이며 민주적이다.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더 나은 해석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일상화되는 것은 선진국의 모습이며 개방사회의 증좌이다.

개방사회는 앙리 베르그송이 처음 사용했다 한다. 사회가 서로 배척적이고, 적대적이며, 이해관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계층 누구라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정보의 접근이 가능하며 상호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지배하는 그런 사회를 뜻하는 거란다. 이런 시각은 후일에 영국 철학자 칼 포퍼가 열린사회 이론에서 발전 계승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미나가 열리고 다중을 부르는 공청회가 자주 열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국회에서도 입법이나 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자주 열고 있으며, 학자들도 세미나를 자주 개최하고 있다. 학자들은 현상과 이상을 고민하는 학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가령 현행 상속제도가 급변하는 사회 변화 속에서 어떻게 개정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조세행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같이 연구 모색한다.

이러한 활동은 과세냐, 아니냐의 흑백 세상을 유채색 세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며 우리 사회의 개선과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세법과 세정에 관해 4대 학회가 정기적으로 논문을 발표하며 학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패널들의 토론과 방청인들의 체험과 의견들이 교환된다. 모두가 세법과 세정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귀한 자원이다.

특이한 점은 이러한 고민의 현장에 정작 공무원들은 결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회에 따르면 연사나 패널로 초대해도 공무원들은 고사하기 일쑤란다. 발언이 부담이라면 시민의 소리, 학자들의 견해, 납세자의 고충을 학회 세미나를 통해 공유하는 자리에 조용한 방청인으로 나타날 만도 한데 현실은 전혀 그 반대란다.

거마비도 준비하고 초청하는데 정작 정책을 알리고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자리를 준다 해도 마다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이에 대해 세정을 맡았던 전관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이러하다. 세미나 참석은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는 것이다. 행정조직은 외부 의견에 민감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납세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서 박탈행정을 하는 세무당국이 얻을 게 없다는 선입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납세자 행태에 관해 과세관청은 성악설에 기울어 있었고 그 사실을 파헤치는 것이 조직의 소임이라는 생각이 전통적이었다고 전관들은 술회한다. 실제로 급격히 성장하는 한국 경제 발전 과정에서 세금계산서 등의 비정상적인 수수 등 조세회피가 만연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에는 이해할 법도 하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지만.

조금 더 솔직한 표현은 이런 것도 있었다.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의 말에 근거가 다 있게 마련인데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순진하게 신봉(!)한 나머지 그 옳은 말씀에 동조하는 의견이라도 표명하는 날에는 조직 내부에서 적군에 발을 담그는 이적 행위로 볼 우려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이런 분위기라면 큰 일이다.

그렇다면 세정을 논하는 자리에 공직자가 발표자가 되거나 패널로 나서는 것은 피한다 쳐도 방청하면서 세간의 인심과 세정의 평가가 후한지 박한지를 수집하는 소중한 정보수집활동은 왜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극복하고자 외치는 일본이나 유럽의 공무원들은 열심히 외부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과연 우리 행정부의 이런 자세는 바람직한가 자문해 봐야 한다. OECD Tax Committee에 참석하는 일본 세무공무원들은 한국은 물론 각국 대표들의 발언이나 개인적 취향까지 면밀히 수집하고 있고, 미국 군사학교에 매년 파견되는 우리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행동과 발언을 한낱 동급생의 행동으로 보지 않고 대 한국 국가정보로 이해하고 세밀히 기록 보고하는 일본 군인들의 모습을 우리는 뭐라고 평가해야 할까.

정보의 인식이 이러하니 10년 후, 20년 후 한국의 동급생 장교가 장군이 되고 장관이 되면 그들은 한국의 장군이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보다 더 정확히 알고 덤빈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네 스타일은 핀셋으로 집듯 찍어주는 좋은 의견도 ‘그건 네 생각이고! 우리는 우리 식으로 갈꺼야!’라는 조직 주관성(meism)이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극심한 시위나 막장 발언 그리고 분신자살이 재연되는 모습에서 우리는 정상적인 정보의 유통과 공유, 그리고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상당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통상적 움직임들이 정보로서 존중 받고 관계 소통하면서 대책을 미리 세웠더라면 국민이 분신을 하거나 극렬해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과세관청도 소통의 차원에서 과거와는 달라야 하고 학회 활동이나 공청회 그리고 세미나를 정보의 수원지로 여기고 정보로서 활용하고 한발 더 나아가 그런 자리를 정부의 고충과 고민을 알리는 좋은 기회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관리자들이 소통의 인식을 바꾸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보고만 받으려 하지 말고 직접 세미나에 ‘조용히’ 참관하여 세상 이야기를 듣다 보면 최신 학설도 접하고 아이디어와 영감도 많이 얻게 되니 목민관으로서는 금상첨화다.

책임자라서 그 마저 여의치 않다면 국세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정보 수집 활동의 범위를 개별적 탈세 정보 수집에만 한정하지 말라는 거다. 세미나 참석에도 가점을 주고, 미디어에 게재되는 조세 전문 칼럼이나 학외에서 발표된 주제나 패널들의 발언, 그리고 참석자들의 의견 개진 등도 모두 세정 정보로 인정해 주면 단발성 탈세정보 외에도 보다 근본적이고 가치 있는 제도적인 분야나 거시적인 정보까지 수집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제도적 정보는 수집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분석하고 공론에 부쳐서 직접 세정에 활용하는 한편 필요하다면 개선안으로 다음 해 세법개정안에 반영하는 다층적 순기능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CEO가 나서면 조직도 새로워진다. 관리자가 관심을 가지면 조직이 바뀐다. 정보는 활용하고 개선하기 위한 원재료다. 일상적 활동에서 정보의 개념과 범위를 새로 정해 개인의 탈세에만 전념하지 말고 국민적, 납세자적, 학문적 견해와 의견을 활용하고 수용하는 행정을 시도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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