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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稅想) 칼럼] 알 건 다 아는 세상
[세상(稅想) 칼럼] 알 건 다 아는 세상
  •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 승인 2019.09.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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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주말 골퍼들 중에는 심심치 않게 싱글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놀랍지도 않다. 가정주부들도 웬만하면 80대를 치는 나라다. 한국은 골프강국이다. 골프 실력이 좋다 보니 홀인원 보험이 성업할 정도다. 골프는 섬세한 운동인만큼 젓가락으로 콩알을 잡는 한국인들에게는 좋은 소일거리다.

미국에 오래 살던 분에 따르면 핸디캡 100을 평생 깨지 못하고도 맘 편한 취미골퍼들이 많단다. 그 걸 보면 한국인은 뭘 하든 매운 듯하다. 하여튼 한국은 골프 광풍이 분지 오래고 가정식 메뉴가 정갈한 나의 단골식당 여주인도 오후에는 골프 연습장에 간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한다.

이렇다 보니 골프장은 사업만이 아니라 사교의 장이고 중요한 정보를 나누는 최고의 자리로 등극했다. 활동이 왕성할수록 거래처와의 골프도 있고 업계 골프대회도 열린다. 거기에서는 고급 정보들이 쏠쏠하다. 운동 중에 거의 하루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건 아마도 골프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골프장에서는 고민과 세상사 이야기가 여과 없이 오고 간다. 목욕탕에 함께 들어가고, 식사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솔직해지는 건 아닐까. 이런 때 듣는 기업인들의 이야기들은 우리 기업 현장의 모습은 물론 과거까지 엿보게 만든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의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에 사장 노릇할 때는 정말 재미가 있었단다. 사내에서는 사장 말이 잘 먹혔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도대체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뿐이랴. 갈수록 세무조사도 깐깐해지고, 날로 강화되는 근로기준법도 지켜야 하고, 특히 직장내 성차별 등 뭔 지 모를 일까지 속을 썩힌다는 거였다.

과거에는 아랫사람들에게 호통을 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큰 일 난다는 것이었다. 호통을 어떻게 쳤나 물었더니 글로 옮기기에는 부적절한 폭언들이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냐는 거였다. 이 분들의 가치관은 갈라파고스의 왕도마뱀처럼 진화를 멈추었구나 싶다.

하물며 자녀도 부모 말을 수용하지 않는데 어찌 사회인들을 그리 대접할 수가 있을까 싶다. 인식이 화석이 되었으니 회장님들이 힘 없는 수위에게 폭언을 하고, 오너 가족들이 통과세 받는 끼어들기 회사를 차리고, 직원들에게 부실 김치를 고가에 팔 생각을 하나보다.

심지어 어느 기업인은 땅콩 회항사건을 두고 사내 폭언쯤은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한술 더 떠 자기라도 ‘내’ 비행기에 관세청을 거치지 않고 물건을 실어 올 것이란다. 마무리는 이러했다. “그 거 다 국적기 항공사를 빼앗으려고 좌파들이 흔들어 대는 거라구!”

다른 사장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점심시간이 임박한데 외부약속이 갑자기 취소되어 회사직원들에게 번개 점심 제안을 하였단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고 표현했다. 점심 가능여부를 알아보러 다닌 총무부장 한 사람 빼고는 다 점심 약속이 있거나 사정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단다.

자신이 젊은시절에는 상사가 제안한 식사는 거절하기 어려웠다며 요즈음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푸념이었다. 왕년에는 사장 노릇 할만했단다. 직원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자신이 밥을 사준다는 데도 응하지 않는 직원들이 야속하단다.

사업을 하는 것은 비단 거래처 대접만 잘 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회사 내 아랫사람 대접도 잘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아니 아랫사람, 윗사람이라는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할 듯하다. 이제는 직장이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며 월급보다는 휴가와 주말이 보장되는지를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들이 사원들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주말에 회사 체육대회를 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버스를 빌려 1박2일도 보냈다.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저녁에 하는 사내 회식조차 껄끄럽다는 사원들이 대세다. 왜 개인시간을 빼았냐는 것이다. 사실 집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고 베이비 시터들도 퇴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근 후 회식하자는 상사는 가장 기피인물이다.

정말이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바뀌는 것에 대하여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갑질기업으로 낙인 찍히는 많은 경우가 거의 다 오너 리스크로 심각하다.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회사 이미지가 추락하는 일이 대개는 오너들에 의하여 촉발되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에게 혼내다 보면 폭언은 가족 같아서 하는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진 기업인들이 적지 않은 듯싶다. 학계측은 노사문화에 대한 이러한 시각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규모가 되고 연혁이 깊은 회사일수록 오너나 그 가족들이 갖는 회사 직원에 대한 인식은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일자리를 얻은 근로자들은 늘 감사한 마음으로 복무해야 마땅하다는 오너 가치관은 해당기업의 미래 잠재력에서 많은 실점을 안길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벤처 스타트업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투자자들이 젊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연구에 열심이다. 요즈음은 고객층 분석에서 십년을 한 세대라고 여긴다. 직장도 다섯 세대가 함께 일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한다. 벤처사업일수록 세대격차를 이해하지 못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여긴다. 젊은 세대들의 EQ와 DQ(digital IQ)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퇴직 공무원들의 골프 뒤풀이 자리였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고 세무사를 하는 분이 이런 말을 하였다. 사업을 왜 하냐? 돈 벌려고 한다! 그래서 말인데 자기 회사 돈을 사장이 쓰는데 그 걸 횡령이라고 처벌하는 것은 코미디라는 거였다. 법인을 차린 오너가 자기 회사 돈 좀 썼다고 구속시키는 건 부당하다는 거다.

동조 의견이 반대 의견 보다 더 많았다. 놀라운 일이다. 공직자 출신의 인식으로는 의외였다. 굳이 그 이유를 분석하자면 아마도 소위 ‘유사법인’이 많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대외적 신인도가 필요하여 법인으로 등기를 하였으나 운영은 주먹구구식이다 보니 개인사업자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들은 주주총회도 없고 이사회도 없다. 상법의 회사편이 거의 유명무실한 법인들이다. 운영의 실질이 개인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유사법인에 대해 법인세를 부과하는 것이 옳으냐는 지적도 나왔다. 무릇 세금 매길 때에는 큰 원칙이 있는데 그 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실질과세라는 것이다. 경영의 실태가 개인과 다를 바가 없다면 왜 법인세를 부과하냐는 거였다. 법인세를 취소하고 개인소득세를 부과해야 세법이나 상법상 옳은데 굳이 외관이 법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법인세를 매기고, 다시 배당소득세 매기고 다시 또 종합과세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거였다.

이런 논리라면 우리나라 법인제도는 세법적으로 형해화(形骸化)되고 만다. 비단 중소기업만이 유사법인이겠는가. 제왕적 재벌경영도 예외가 될 수가 없다. 오너(owner) 가족이 모두 들어서서 중요 포스트를 차지하고 좌지우지 하고 있는데 그런 가족기업에 법인세를 매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인세의 두 배인 사업소득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과거 20년간 실질과세처럼 논란이 많았던 원칙도 찾기가 어렵긴 하다. 특히 한국에 투자한 외국법인들에 관한 세무조사에서 말이다. 한국에서 해외에 송금되는 배당과 이자가 어느 나라의 누구에게 실질적으로 귀속되는지를 놓고 세무조사와 조세쟁송이 빈발하였기 때문이다.

가령 아일랜드의 어느 법인이 한국에 설립한 한국법인에서 배당을 아일랜드로 보내면 한국 과세당국은 십중팔구 이 부분에 대해 조사를 해왔다. 아일랜드 법인의 주주가 누구인지를 보고 다시 그 위의 주주를 보면서 족보 조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제적 투자의 실질적 ‘의사결정’을 누가 하는가를 중점 점검하는데 대개는 아일랜드가 아니라 그 위의 모회사나 조부 회사 혹은 증조부 회사 등을 실질귀속자라고 보는 결론이 나곤 하였다.

즉 중대한 의사결정을 한 조부회사가 미국이면 아일랜드 회사는 도관으로 보고 미국 회사에 대해 한미조세조약을 적용하여 배당소득에 과세하거나 증조부 회사가 독일이면 독일 회사에 대해 과세하는 식이다. 이런 경우 과거 5년간의 배당이나 이자에 대하 한꺼번에 과세하다 보니 쟁송금액이 가히 천문학적이다.

이야기의 초점은 내국기업과 외국기업을 왜 차별하는가였다. 외국기업은 엄격하게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하고 수많은 내국 유사법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거였다. 심지어 어느 분은 일선 직원들이 실질과세원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는 거였다.

타인명의로 위장 법인을 여러 개 만들어 놓고 특정인이 뒤에서 운영하면서 매번 체납 및 탈세를 하기에 숨은 실질귀속자에게 실질과세를 하고 밀린 체납도 받아내라고 국세청에 제보를 하였는데 체납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법인은 법인이고 개인은 개인이라고 하더란다. 법인격을 하늘 같이 존중한 것이다.

위장 법인 등기부 등본들을 제시하며 실질 사무실 금고 위치까지 도면을 붙였고 거기에는 명의 위장 증거가 되는 많은 서류와 쟁송 서류들이 있으니 예치하면 금방 알 수 있다는 데도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지방경찰청에 자수하러 온 살인범에게 종로세무서로 가라던 사건이 떠오르게 한다.

다른 분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단다. 탈세제보서를 들고 가니까 공무원이 면담하자면서 내용을 읽고는 증빙이 없어서 접수를 못하겠다고 접수 자체를 거부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경우를 예상하지 못한 탓에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과문하여 제보에는 반드시 증빙이 붙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악질 체납자를 근절하겠다는 과세관청의 다짐과는 영 딴판이었던 거다. 칼 든 범인을 직접 잡아와야 처벌하겠다는 경찰서와 뭐가 다른가.

사람들이 모이면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된다. 거기에서는 세상이 어떻고, 누가 어떻고, 갑질이 어떻고, 과세관청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를 이야기 한다. 발로 뛰는 실무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일을 처리하는지를 다 아는 관리자들은 없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정치인들은 다음 총선에서 재선되느냐에만 골몰하며 적시 입법으로 국민의 불편과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소홀히 한다. 정쟁으로 세월을 보내며 고쳐야 할 악법들은 손 놓고 있는 그들은 놀랍게도 우리가 직접 뽑은 공직자들이다.

하물며 국민이 선출하지도 않은 행정부 공직자들은 정년이 보장되는데 오죽하랴 싶다는 말도 한다. 세간이 짐작하듯 행정부처의 관리자들은 다음 번 인사이동과 승진에만 골몰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갈수록 세상은 소통하고 알 건 다 아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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