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8:00 (화)
수제맥주, 지금 규제로 안전한가?
수제맥주, 지금 규제로 안전한가?
  • 이상현 기자
  • 승인 2019.10.16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 31주년 기획 취재] 수제맥주의 현주소, 비전은?
— 수제맥주 허용 때 시행령 별표만 고쳐 허용
— “중요한 일을 중요하게 하지 않는 공직자들”

 

국가가 술과 담배의 제조와 유통을 법령으로 엄하게 규제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좋은 이유’와 ‘나쁜 이유’, ‘이상한 이유’도 있다.

먼저 ‘좋은 이유’. 술과 담배에는 일정량 이상 섭취하면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있기 때문에, 유해성을 최소화 하는 제조방법과 소비자의 남용을 부르는 과도한 판매를 국가가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나쁜 이유’는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데, 국가만 모른체 시치미를 떼고 있는 점. 소비자의 남용을 부르는 과도한 판매를 규제할 필요성이 있지만, 실제 국가가 과도한 남용을 막는 데는 별반 관심이 없고 판매를 통해 거둬들이는 막대한 세금과 각종 부담금으로부터의 기금 수입에만 눈독을 들이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상한 이유’는 식품안전과 조세수입이라는 국가 규제의 명분과 실리에 걸맞게 확고하고 명백하게 관리해야 함에도, 공직사회가 그럴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스펙을 만들어 주거나 외압으로 채용되지 않고 오롯이 능력으로만 임용된 공무원들이 능력이 안 된다는 게 ‘이상한’ 점이다.

주세법령 개정으로 지난 2002년 소규모 양조시설에서 맥주를 만들어 팔 수 있도록 수제맥주 면허제가 시작됐다. 술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수제맥주를 다른 주류와 동일하게 제조와 판매를 허용한 것은 현행 국가 주류관리 시스템에서 아주 중요하고 획기적인 조치였다.

그런데 수제맥주 허용은 법률 조문에 명시된 것도 아니고 지난 2002년 1월1일부터 시행된 주세법 시행령, 그것도 본문에는 추상적으로만 언급되고 ‘별표 3 제4호 규정’에 ‘소규모맥주제조자’를 추가했을 뿐이다.

수제맥주 허용을 원했던 수제맥주 제조사와 열혈 소비자들은 속칭 ‘맥주 다양성(Diversity of Beer)’를 전면에 내세웠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작행위와 수제맥주의 개성은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문제는 수제맥주 성분과 제조법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수제맥주의 다양성을 어디까지 보장할 지에 대한 대책도 없이 무작정 허용부터 덜컥 해준 점.

국가는 같은 맥주 재료라도 호프를 얼마나 볶느냐에 따라 흰 맥주가 검은 맥주가 되고, 특정 과일의 즙을 맥주 원액에 섞으면 어떤 화학적 변화가 생길 지를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업계는 “그 정도 가공 차이로 무슨 큰 변화가 있겠느냐”며 ‘된장찌개에 넣는 두부의 크기 차이’ 정도의 물리적 변화로 설명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정숙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7년 이래 음주예방을 위해 30억원의 세금을 썼지만 최근 10년간 음주 관련 질환자는 무려 81%가 늘었다.

수제맥주와 수제담배를 비교해 보면, 한국만큼 술에 대해 관대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배제조업을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기획재정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11조)”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해 담배를 제조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담배를 상업적 목적으로 제조해 시장에 공급하는 사업자에 대한 규제이고, 자신이 소비하기 위한 담배를 재배하고 만드는 일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직접 재배한 담배를 종이로 말아 피우는 방식은 예전 담배 농가 주변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다만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인허가 대상인 담배제조업은 담배의 제조뿐 아니라 반출까지 포괄적으로 포함한다고 보기 때문에 사적으로 재배해 만든 담배를 대가 없이 지인에게 건넨다고 해도 법령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수제담배는 자가 소비용으로만 허용되는 셈이다.

수제맥주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국세청에 재료 중량을 신고했으니 호프를 더 볶아 흑맥주를 만들든 덜 볶아 흰 맥주를 만들든,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까? 소비자들은 일일이 과학과 의학 서적을 뒤지며 그런 수제맥주의 안전성을 확인한 뒤 마셔야 할까? 아니면 또 깨알 같은 세부 규제로 아예 성장을 막아버릴 것인가?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국회 김정우 의원실 보좌진은 기자에게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또 걱정이 앞선다. 공직자들이 “술에 붙는 세금을 올리거나 건강부담금을 올리자”고 할 것 같아서다.

수제맥주 허용처럼, 정부가 식품 안전을 확실히 보장하지도 못할 규제완화를 덜컥 해놓고 “세금을 더 물리자”고 할까봐 걱정하는 것은 소심한 기자의 기우(杞憂)일까.

 



  •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6(서교동), 국세신문사
  • 대표전화 : 02-323-4145~9
  • 팩스 : 02-323-74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예름
  • 법인명 : (주)국세신문사
  • 제호 : 日刊 NTN(일간NTN)
  • 등록번호 : 서울 아 01606
  • 등록일 : 2011-05-03
  • 발행일 : 2006-01-20
  • 발행인 : 이한구
  • 편집인 : 이한구
  • 日刊 NTN(일간NTN)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日刊 NTN(일간NTN)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tn@intn.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