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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도 울고 갈 과도한 세금
신(神)도 울고 갈 과도한 세금
  •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 승인 2019.1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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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미국이다. 저승사자가 인간 세상에서 존경받고 리더십이 높은 그의 삶을 직접 보고자 성공한 어느 대기업의 회장을 찾아왔다. 물론 방금 타계한 핸섬한 젊은이의 몸을 빌렸다. 회장 집에 머물며 그의 일상을 지켜보는데 아뿔싸 그만 회장의 아름다운 딸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여기서 그 특이한 사랑 이야기를 펼칠 수는 없고 저승사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죽음과 세금’이 쌍둥이라는 거였다. 그 두 단어가 상관관계가 없어 보였다. 죽음은 신이 관장하는 질서정연한 일인데 감히 인간들이 당파적으로 세법을 편집하고 조령모개(朝令暮改)하며 자기 지역구에 함부로 끌어다 쓰는 세금과 동렬에 놓는가 말이다.

각설하고 회장이 모함에 빠지자 저승사자는 간교한 자들과 맞선다. 악인은 저승사자에게 너는 도대체 정체가 뭐냐고 묻는다. 회장은 저승사자가 정체를 밝힐까 조마조마해지는데 저승사자는 재치 있게 말한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국세청 요원이야!” 결국 탈세를 밝혀 정의를 실현한다. 저승사자는 인간 세상에서 세금이 죽음처럼 위협적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넷플릭스(Netflix)에서 보여주는 신작 영화 이야기다.

이번에는 목사님의 실화다. 이 분은 젊었을 때 잘 나가는 국제 뱅커였다. 아시아의 금융 허브 싱가포르에 있는 구미계 투자은행(investment bank)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고소득이긴 하나 뱅커들의 정년은 대강 45세이다. 그만큼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된다.

심신이 고갈되어 갈 때 신앙을 만났다.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었다. 은퇴를 선언하고 외국에서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의 영성은 잘 익은 과일처럼 익어갔다. 훌륭한 목사가 되었다. 재목이 좋으니 이를 금방 알아본 국내의 유수한 교회에서 그를 초빙하였다.

한껏 올라간 영성을 안고 귀국하여 열정적으로 목회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무서로부터 안내문을 받았다. 싱가포르에 거액의 외화가 당신의 이름으로 예치되어 있는데 이에 대하여 밝히라는 거였다. 목사님은 의아했다. 젊었을 때 싱가포르에서 번 돈을 그대로 남겨 두고 들어온 것뿐인데.

사실 싱가포르 등의 예민한 지역에 있는 한국인의 예금을 파악해내는 것은 국세청에서는 오래전부터 역점적으로 해오던 일이었다. 그 것을 어떤 루트로 국세청이 파악한 것인지는 목사님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설명만 하면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왠걸! 세무서 직원의 설명을 접하니 이건 매우 나쁜 소식이었다. 예치된 예금을 거의 대부분 세무서가 가져간다는 거였다. 외국에 예치된 돈을 해마다(익년 6월) 세무서에 신고했어야 하는데 오랫동안 그러질 않아서란다. 무려 예치금액의 20%씩 해마다 세무서가 가져간다는 거였다. 5~6년 무신고면 재산 전액이 사라지는 셈이다.

목사님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내가 외국에서 평생 벌어 놓은 돈을 세무서가 다 가져간다는 것인지 말이다. 목사님은(국제업무를 하면 국제 변호사라 부르니) 국제(!)세무사를 찾았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해외에 재산을 빼돌리거나 금융자산을 숨겨 두고 한국에서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역외탈세’라고 하는데 국세청은 그걸 찾아내는 걸 가장 좋아한다고.

목사님은 다시 물었다. “나는 자산을 해외로 빼돌린 적이 없어요.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며 거기서 벌어서 거기서 안전자산인 채권을 사두었어요. 그 후 하나님을 영접하여 세상사에 신경을 쓰지 않고 신학(神學)에 몰두한 죄 밖에 없어요.”

정말 그랬다. 국제세무사가 들어보아도 그는 죄가 없었다. 국내자산을 해외로 빼돌린 것도 아니고, 채권을 보유하고 있어서 아무런 소득도 실현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세금을 탈루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죄가 있다면 하나님을 영접하여 세상 일을 소홀히 한 죄라고나 할까.

사실이지 세상사에 아무리 밝은 이라도 해외에 예치된 돈에 대해 해마다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는 예상 밖의 세법지식을 (상인(商人)도 아닌) 일반인이 얼마나 알겠는가.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억울하고 딱한 사연들이 도처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이런 일을 당해본 이들이나 세무전문가들에겐 해마다 반복적으로 20% 빼앗아가는 세법 규정이 괴물로 보인다. 선량한 국민을 편하게 살게 보호해주지는 못할 망정 방심(?)한 틈에 국민의 재산을 뭉텅이로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어느 기러기 아빠인 학부형의 이야기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과 엄마를 미국으로 보낸 아빠 이야기다. 그는 세무서가 원망스럽다. 그는 어렵사리 가족을 모두 보내는 결정을 하였다. 한국인 답게 나 하나 희생하여 자녀들만큼은 넓은 세상에서 교육을 받고 뻗어 나가도록 하고 싶었다.

한국의 집을 팔아서 미국에 유학용 주택을 사기로 하였다. 올인한 거다.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데 그 동안에 막대한 월세로 재산을 없애느니 집을 사는 것이 현명한 재산운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집을 팔아서 송금하였다. 그리고 세 달 후 미국에서 새 집을 샀다.

온 가족은 행복했다. 해외에 내 집도 생기고 새 삶과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한국의 아빠에게 세무서에서 연락이 왔다. 미국의 통장에 거액이 들어있었는데 왜 신고를 하지 않았냐는 거였다.

기러기 아빠는 세무서 직원에게 되물었다. “그 돈은 한국에서 송금할 때 은행에 미국 주택 매입 자금이라고 신고했고, 송금 전에 세무서에도 자금출처를 확인까지 받지 않았느냐? 한국의 집을 팔은 돈이라고 세무서에 신고까지 하고 보낸 돈인데 그걸 다시 미국에 입금되었다고 또 신고하라는 의무가 있었는지는 까맣게 몰랐는데 그게 왜 죄가 되냐?”

그랬다. 그 돈은 딱 3개월간 미국의 은행에 들어있다가 출금되었다. 집을 구입하였기 때문이었다. 장기간 가지고 있던 여유 금융자산이 아니라 일시적인 예치금이었을 뿐이었던 거다. 그런데도 20%나 몰수하는 게 옳은 일이냐고 국제세무사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국제세무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기러기 아빠의 말이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국가가 개개인의 세원 파악을 위해 소득이나 재산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의무를 국민에게 부여할 때는 보다 친절하고 보다 용이한 방식으로 고민했어야 한다.

과세자료 수집에 관한 최고 사법기관의 태도 역시 의무 부과시 범위를 최소화하도록 요구하고, 의무부과를 하지 않더라도 과세정보의 수집이 가능하면 굳이 요구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규정(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제8장)은 그런 위민정신(爲民精神)과는 거리가 멀다. 천태만별의 사정과 양태를 불문하고 무조건 무신고하거나 과소신고한 금액의 20%까지 해마다 반복하여 뺏는다. 세상사에는 갖은 사연과 불가피성이 있게 마련인데 아무런 예외조항도 없이 기계적으로 사유재산권을 이렇게 위협하는 규정을 빨리 고쳐야 한다.

고의적으로 재산을 해외유출한 경우 명분이 있을 수 있겠으나 고의성 유무나 불가피성을 따지지 않고 기계적으로 무려 1/5의 재산을 해마다 반복적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과잉행정이다. 사유재산에 대한 현저한 위협이다. 그냥 두면 언젠가는 틀림없이 위헌판결을 구할 것이다.

사유재산제도를 사회적 계약의 기초로 삼는 자유민주국가에서 사유재산제도의 존립을 위협하는 과도한 행정행위가 합당한 일이 아니니 소송을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목사님은 달랐다. 따지지 않겠다는 거였다. 첫째, 영성생활에 지장이 올 것을 걱정했다. 수년간 소송을 하는 것이 목회자의 마음을 탁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둘째, 자신의 재산이 누군가에게 좋게 쓰일 것이라고 믿기로 하였단다.

이렇듯 시민들은 참 선량하다. 입법부는 노상 정쟁에 골몰하기에 행정부가 만들어주는 입법안으로 나라가 꾸려지는 나라치곤 그럭저럭 굴러간다. 다 시민들이 훌륭해서다. 행정부처도 세상을 잘 모르는 공무원들이 탁상입법을 겁도 없이 잘도 한다는 지적을 심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입법안을 손댈 때는 선량한 국민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닌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일벌백계에만 골몰하면 안된다.

모쪼록 해외에 해외금융계좌를 보유한 거주자 및 내국법인 중에 올해 매월 말일 중 어느 하루의 보유계좌잔액(보유계좌가 복수인 경우에는 각 계좌잔액을 합산한다)이 5억원을 초과하는 분들은 내년 6월 중에 납세지 관할세무서장에게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과거에 이를 빠뜨리신 분들은 세무전문가들로부터 현명한 자문을 받아야 할 것이다.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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