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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기적 인간
[칼럼] 이기적 인간
  •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 승인 2019.12.0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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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인간은 과연 선한가? 일반 시민들이 여의도를 보면 매번 떠오르는 질문이자 궁금증이다. 선거철만 되면 표를 의식하고 그럴싸한 공약을 발표하곤 하는데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자기가 한 말을 뒤집는다. 그리고 병든 숲은 두고 한낱 잡초를 놓고 싸운다.

이런 인간 행동을 이해함에 있어 옥스퍼드 교수 리차드 도킨스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꼭 윤리적이거나 이타적인 존재는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 개체는 유한한 기간 동안 유전자를 운반해주는 잠정적인 운반체(vehicles)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인간 행동 뒤에는 유전자라는 조종자가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윤리성을 고민하는 철학자가 아니므로 자신의 이기성을 고뇌할 필요가 없다. 그저 끊임없는 복제와 영속만을 추구하면 된다.

그러한 유전자가 운전하는 차량(vehicle)에 불과한 인간 역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란다. 그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통하여 모든 생물 개체와 마찬가지로 인간 개체 역시 숙주(?)인 유전자의 프로그램대로 행동하는 일종의 아바타라는 점에 주목하라는 거다.

지난 번 대선 후보들이 내 건 정책은 보수나 진보나 모두 대동소이했다. 집권하면 개헌을 하겠다, 최저임금제를 하겠다, 의료보험과 기초연금 등 사회 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하겠다 한 목소리를 냈다. 유권자들은 이제 국운이 트이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나니 약속한 개헌이나 정책들은 실종되고 말았다. 오히려 국민에게 약속했던 모든 정책들이 개정되기는 커녕 정쟁의 요리감이 되어 버렸다. 조선시대 때 상복 정쟁보다 더 저열한 이전투구만이 현재진행형이다. 정치인들이 정쟁 유전자의 아바타가 된 듯하다.

인간을 유전자와 생존운반체로 설명하는 도킨스와 달리 종교는 절대자가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해 자유방임적 불확실성 앞에 던져 놓고 자유의지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현세에서의 업보가 내세에서의 상벌을 부르는데 자유방임의 대가가 매우 엄혹하다며 창조자(creator)는 사디스트(sadist)일거란다. 그도 그럴 것이 악업을 행한 자는 유황불에 영원히 타거나, 환생하여 50일만에 삼계탕이 되어 다른 인간의 밥상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과연 정치인만 나쁜 유전자를 가졌을까? 사람들은 공복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자기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지체부자유 고아를 고문해 화성 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몰아 20년을 감옥에 가두었다는 것도 이 땅의 공복 이야기이고, 집안이 어려워 중고등학교도 가지 못한 익산 어느 마을의 청소년들을 잡아 동네 노부부의 살인범으로 누명을 씌운 이들도 공복이기 때문이다. 멀쩡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한 일도 부지기수였다. 우리를 참 슬프게 하는 건 이들 피해자들이 한결 같이 힘 없고 못 배운 이들이었다는 거였다.

악행은 처벌되어야 하나 그렇질 못하다. 히틀러의 전범들도 마찬가지였고, 유태인 600만명을 학살한 아이히만도 자기는 아무 죄가 없다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자국인조차 지체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이라 하여 27만 5000명을 인종청소했다. 순종 독일인만 남기겠다고.

무죄 주장은 범죄자들의 공통된 현상이다 보니 한민족과 독립투사들을 탄압하고 고문한 친일분자나 추종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린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요. 공무원인데 명령에 어찌 항거할 수가 있었겠어? 그 시절은 식민시대였다고. 오래 전 일인데 이젠 다 잊자구. 화합이 필요해. 과거사를 가지고 왜 자꾸 분란을 일으키려는 거지?”

한편 전범국 독일에서는 올해도 유태인 강제수용소를 지키던 일개 사병들에게조차 준열하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학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수용소 회계원조차 학살 공범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검찰은 90 노인이 된 그들을 ‘거대한 살인 기계의 자그마한 톱니바퀴였다’며 법대에 세웠다. 그들이 경비만 선 평범한 하급 군인이었다 할지라도 인간이라면 부당한 명령이나 현실을 거부하고 항거했어야 한다는 거였다.

유죄 판결의 근거는 소위 ‘액세서리 이론’이었다. 범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고 단지 주변의 액세서리에 불과했더라도 면책될 수 없다는 법 이론이었다. 전범 나치의 만행을 단죄하는 독일의 사법적 노력은 70년이 지난 현재도 진행형이다. 반면에 전범국 일본이나 피해국 한국은 지금 어떠한가? 딱한 일이다.

아이히만이 재판정에 섰을 때 세계 언론은 ‘인간의 얼굴을 한 악마’를 보기 위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사람들은 ‘괴물’을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빗나갔다. 가족을 아끼고 선량한 얼굴을 한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유명한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the banality of evil)에 딱 어울리는 모델이었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의 수행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성실히 일하면서 승진을 꿈꾸는 군인이었고, 조직이 명령하는 대로 자신에게 부여된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는 거였다. 오히려 관료사회의 믿음직한 구성원으로 집단에 충실했던 것이 죄가 되는지 항변했을 정도였다.

(재판관)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나?”

(아이히만) “나는 나치친위대 장교로서 상부의 명령을 받고 인종청소를 했을 뿐이다. 그래서 죄가 없다. 군인의 신분으로 국가에 충성한 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이런 상태를 ‘무사유’ 혹은 ‘사유의 부족’이라고 독일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정의한다. ‘생각 없이’ 명령과 권위에 굴복하는 것은 죄악이며 무사유는 결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에리히 프롬 역시 ‘아이히만은 관료의 (바람직하지 않은) 극단적인 본보기다’라며 ‘악의 평범성’을 거들었다. 어떤 조직에 몸담고 있든 사유(思惟)나 성찰 없이 살고 있지 않은지, 내가 아닌 타자의 시선에서 챙겨 보는지 자성할 일이다. 특히 박탈행정업무를 다루는 공복일수록 민감한 대민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

다행히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 결정론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이타적 희망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내고 전파하는 밈(meme) 때문이다. 유행, 종교, 신, 가치 등은 모두 인간이 모두 뇌에서 만들어지고 유행을 탄 것처럼 이타적 밈(meme)을 개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구상에 자신을 조종하는 이기적 유전자에게 저항할 능력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2019년이 저물어 간다. 송년회라는 이름의 모임들이 벌써 여기 저기에서 열리고 있다. 조세분야 모임에서도 다양한 화제가 식탁에 올랐다. 미담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다. 예나 제나 공무원들이 헌신하며 고생을 하고 있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언제 납세자나 대리인이 가장 어려웠는가로 화제가 옮겨갔다.

회고의 내용은 이러했다. “제일 어려웠던 건 역시 박근혜 정부 때였지. 세무조사가 정말 독했어. 왜냐구? 다 알잖아. 그 분이 증세 없이 세수를 늘릴 수 있다고 공약을 했거든. 지하경제를 파면 세수가 확보된다고 했지. 하여 세제실은 세율을 건드리지 않고 증세하려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고 기부금 공제도 줄이는 등 애썼는데 그게 비정상적이다 보니 결국 월급쟁이들의 연말정산 대란으로 이어졌어.

그 와중에 기부를 하고 싶으면 세금을 내고 기부하라, 울지 않게 거위 털을 뽑아라,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 등 갖은 막장 발언들로 세제 쪽 사람들이 구설수에 많이 올랐잖아. 지하경제에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그 대선 공약 때문에 국세청도 꽤나 애먹었어. 지하경제가 손에 잡히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세수 확보를 하자고 뛰다 보니 지상경제만 열심히 조사한 꼴이 된거지. 지역구마다 국회의원들에게 세금 원성이 자자했다는 거야. 결국 세제도 세정도 많이 훼손된 아쉬움이 있어”

이제 송구영신하는 한 해의 끝이다. 송년 모임의 이런 저런 회고도 순수한 밈(meme)의 나라사랑이고 싶다. 어찌어찌 20여 년간 써온 칼럼도 여기서 숨을 고르고 쉬어야 할 것 같다. 그간 졸고를 성원하거나 지적하여 주신 많은 독자분들, 그리고 칼럼 취지를 세정에 반영해 주신 세심한 분들께 많은 감사를 드린다. 감사하고 송구할 뿐이다. 모쪼록 새해에도 독자님들 모두 화평하시고 행복 하시기를!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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