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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감사의견 낼 ‘갑’님 회계사 상대로 차기 감사계약 협상을?
[기자의 눈] 감사의견 낼 ‘갑’님 회계사 상대로 차기 감사계약 협상을?
  • 이유리 기자
  • 승인 2020.01.22 0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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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결산법인, 감사 중에 내달14일까지 감사계약 체결
- 기존 감사법인이 기득권 가져 ‘갑'일 수밖에 없는 구조
- 전문가, "회계개혁 성공하려면 구조적 장애부터 없애야"
기업회계감사/그래픽=연합뉴스
기업회계감사/그래픽=연합뉴스

회계감사에서 가장 바쁜 시기가 왔다. 

외부감사 대상 기업 대부분이 12월말 결산을 채택하고 있다. 외감대상 기업이 재무제표를 작성해 1월 말까지 회계법인에 넘기면 외부감사인들은 1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짧은 기간 동안 외부감사를 모두 마쳐야 한다.

상장법인 대부분이 몰려 있는 12월 말 결산법인은 2월 14일까지 감사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외부감사법 개정으로 2019년부터는 감사인 선임기한이 사업연도 개시일로부터 45일 이내 감사계약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감법 개정 전에는 감사계약을 4월에 체결하고 5월에 보고했었다.

현장에서는 외부감사가 한창일 때 감사계약도 맺어야 하니 현재의 감사법인이 기득권이 되면서 ‘갑’이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존에 감사계약을 맺은 감사법인이 기득권이 되면서 감사시장에 진출하는 새로운 회계법인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경우에는 감사인을 교체하고 싶어도, 현재 감사법인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서 감사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비적정 의견을 준다는 으름장에 ‘울며 겨자먹기’로 감사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개정된 외부감사법과 표준감사시간 도입으로 감사시간이 늘어나면서 감사비용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회계투명성을 위한 제도 시행으로 늘어난 비용이지만, 기업들은 분명히 이같은 상황에서도 가격비교를 통해 감사인을 정하고 싶어도 현재 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나오기 전 감사계약을 체결해야 하니, 현 감사인이 갑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회계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외부감사에 비적정 의견을 준다고 해 감사인 교체도 못하고 현재 감사법인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적지 않게 나온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은 회계사들에게 ‘갑질’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지만, 현 제도에 의한 감사계약 기한이 현 감사법인을 갑의 위치에 놓이게 한 것이다.

지난해 주총시즌에는 비적정 의견을 받은 상장기업이 급증해 ‘감사대란’이라는 제목이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한 연구소는 지난해 상장법인들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해 12월 결산 상장사 2068곳(코스피 763곳·코스닥 1305곳)의 2018 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1.8%인 37곳에서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것으로 파악했다.

전년도에는 상장사 2007곳 중 1.2%(25곳)가 비적정 의견을 받은 데 비해, 50% 가까이 비적정 의견이 증가했다.

비적정 의견의 증가를 회계개혁으로 인해 감사인의 독립성이 확보됐다는 지표라는 해석이 나왔다.

외감법 개정으로 회계감사가 깐깐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감사가 한창일 때 감사계약을 체결해야하기 때문에,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감사계약을 하지 않으면 비적정 의견을 주겠다는 감사인 태도 때문에 어려워하는 기업의 목소리도 있다는 것을 무시하면 안 된다.

감사인이 갑이 됐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내부 회계시스템이 취약한 작은 규모회사만이 아니다.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 집단 계열사의 감사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외부감사인들이 ‘이렇게 하면 적정의견 못 드린다’라는 말을 입고 달고 다닌다”고 호소할 정도다.

특히 지난해 11월 처음 시행된 주기적지정제로 지정된 감사인은 ‘그 회사의 감사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권한이 더욱 세다고 기업들은 입을 모은다.

한마디로 회계제도가 취약한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들도 회계사들이 갑이 됐다고 체감한다는 것이다.

최중경 회장을 비롯해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회계개혁을 위해 도입된 제도들이 회계사 때문에 실패하면 안된다며 갑질 회계사를 징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금융위원회도 기업들에게 지정제로 지정된 감사인이 감사계약에 비용을 과다하게 책정하면 신고하라고 했다.

위반했을 때 처벌가능성을 높이면 제도가 안착될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이 된 것이리라. 하지만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구조를 개선하지만 않으면 처벌가능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어떤 회계법인이 비적정 감사의견을 놓고 감사계약을 담보하려 한다면 한공회가 감사의견을 바꾸라고 감사인에게 강제할 것인가, 지정 감사인이 감사보수를 높게 책정해서 기업이 금융위에 신고하면 금융위가 가격을 정해줄 것인가.

한공회에서도 강조하는 바, 공인회계사는 그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독립된 전문가다.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들에서 회계사의 갑질이 문제가 된다고 한들, 전문가의 의견을 회계사회나 정부가 일일이 재단해 징계하거나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 보다는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제도의 구조적인 장애를 없애는 것이라 생각한다.

회계법인에 갑질 하지 말라는 당부보다는 외부감사 진행 중에 감사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제도를 손봐야 할 것이다.

감사인 독립성을 위해 시행한 지정제가 취지대로 작동하게 하면서 회계법인 갑질 우려를 없애려면, 복수지정제 도입도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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