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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그물망의 재정준칙이라야 나라 곳간 지켜낸다
촘촘한 그물망의 재정준칙이라야 나라 곳간 지켜낸다
  •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 승인 2020.10.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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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지난 5일 정부가 2025년부터 국가채무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이내, 연간 통합재정수지(정부 총수입 대비 총지출)는 적자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의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현 정부 들어 국가채무가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준칙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게 배경이다. 늦었지만 정부가 이제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랏빚의 위험성을 직시하고 건전 재정관리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2016년에도 정부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국가부채 비율을 GDP의 45% 이내, 연간 재정 적자를 3%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건전화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의원들도 연간 국가부채 증가액을 GDP의 0.35% 이내로 제한하자는 ‘부채제한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탄핵사태와 정권교체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문재인 정부 3년 만에 상황이 급변했다. 특히 올해는 팬데믹 위기 국면과 선거까지 겹쳐 한 해 동안 국가채무는 100조원이 넘게 늘었다.


정부는 코로나19 피해 계층을 지원하고 경기상황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네 차례나 편성했다. 전쟁으로 지출이 급증한 1950년대나 경제발전이 미흡해 세금징수 조차 힘들던 1960년대를 제외하고, 추가경정예산을 4차까지 편성했던 기록은 찾기 힘들다. 여기다가 정부 지출은 확대되는데 기업 여건 악화로 법인세를 비롯한 주요 세수입 확보는 어려워지고 있다. 그 결과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8년 35.9%에서 올해는 45% 내외로 치솟을 것으로 추정된다. 채무비율이 2년 사이 9% 포인트, 그 증가율은 25%에 달한다.

다른 국가에 비해 국가채무 비율의 절대수치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증가 속도는 매우 놀랍다. 채무 증가에 일단 속도가 붙으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배가되면서 관리가 어렵기 마련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당장 한국의 신용등급을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국가채무 비율의 향후 급증에 대한 위험을 언급한 상태다. 중기 국가재정운영계획에서 정부는 2024년 채무비율이 60%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증가 폭과 속도라면 그 보다 이전에 도달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만약 2년간 9% 포인트의 증가 폭과 같은 속도로 늘어난다면 40% 돌파 후 9년 만에 2배인 80%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재정위기국이 위기 당시에 경험한 속도에 필적할 정도다. 실제로 최근 유럽 재정위기를 경험한 국가를 보면 순식간에 정부 부채 비율이 상승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스는 2008년 100%대였던 국가채무 비율이 불과 3년 후인 2011년에는 180%까지 높아졌다. 스페인은 2008년 40%대에서 6년 후인 2012년에 2배인 80%대에 도달했고, 아일랜드도 2008년 40%에서 불과 2년 후 80%대에 이르렀다. 위험은 훨씬 빠른 속도로 예측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발표된 준칙내용이 지나치게 느슨한 것은 문제다. 과연 제대로 된 준칙 구실을 할지조차 의심스럽다. 기획재정부는 목표 지표를 유럽연합(EU) 권고기준에 맞춰 ‘국가채무 60%, 재정수지 적자 3%’의 두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지만,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기준의 ‘동시 충족’이 아니라 ‘종합 고려’로 기준을 낮췄다. 둘 중 하나가 기준치를 초과하더라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를 밑돌면 준칙을 충족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효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예외 허용 상황도 논란이다. 전쟁, 대형재해, 경제위기 등이 발생하는 경우 이 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고 한다. 경기가 둔화할 때는 재정적자 기준을 -3%에서 -4%로 완화하는 데다, 예외 기준 마저 ‘전문가 협의 등을 거쳐 마련 한다’고 막연하게 규정해 정부가 쉽게 준칙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 산식 등 세부 수치를 본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도 문제다.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기준을 쉽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재정준칙이 확정되더라도 2025회계연도부터 적용하기로 함으로서 현 정부에서 늘어난 국가부채 부담을 다음 정부로 떠넘기는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직전 3개 정부 국가채무 증가가 140조~180조원 수준이던 것이 현 정부 임기 5년간 채무 증가 전망치는 417조원, 국채비율도 60%에 근접한다면 보나마나 다음 정부의 재정정책은 선택 폭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가재정법 개정 검토 보고’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159개국은 이미 재정준칙을 갖고 있다. 이 중 법률에 근거를 둔 국가는 103개국, 아예 헌법에 명시한 국가도 14개국에 이른다. 독일은 2009년 헌법에 ‘부채 브레이크’를 도입해 2016년부터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0.35% 이내로 관리하고 있다. 강력한 준칙에 기반을 둔 든든한 재정이 유럽에서 가장 앞선 코로나 대책의 힘이 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재정 여건을 고려한 한국형 재정 준칙”이라고 설명했지만, 지나치게 유연성에만 방점을 둔 바람에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재정 준칙이 없는 나라가 한국과 터어키 둘 뿐이니 ‘우리도 만들었다’는 선언적 의미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른 노령화 및 저출산, 잠재성장률 추락, 돌발적인 통일비용 등의 부담을 지고 있다. 선진국에선 보기 힘들 정도로 비대한 공기업 부실도 결국 정부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50년대 후반에는 공무원연금기금에 이어 국민연금기금 등도 고갈 위험에 처해 재정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건전성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라면서 급증하는 나랏빚에 제동을 거는 것에 너무 안이하다.

정치권의 요구에 휘둘려서 정부가 곳간을 풀어버린다면 제동을 걸 수단은 흔치 않을 것이다. 재정준칙을 두는 이유는 이런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내고 책임 있고 지속가능한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훨씬 더 촘촘한 그물망의 준칙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와 국회는 앞으로 남은 논의 과정에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준칙이 마련되도록 치열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박인목 논설위원 (세무사·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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