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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칼럼] 세무사법 개정,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
[정창영 칼럼] 세무사법 개정,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
  • 정창영 기자
  • 승인 2021.02.23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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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부는 겨울 찬바람은 유독 맵다. 잠깐만 서 있어도 볼이 발갛고 콧등이 시릴 정도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는 세무사들의 1인 시위가 고정으로 자리 잡았다. 한겨울 추위와 펄펄 끓는 여름 더위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잘못된 세무사법을 정상으로 돌리려는’ 세무사들의 눈물겨운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세무사회 집행부는 연일 국회의사당 안에서 의원들을 만나 읍소하고, 회원들은 국회 입구에서 ‘이 부당하고 잘못된 세무사제도를…’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다. 벌써 몇 년 째 세무사들은 국회를 안팎으로 감싸며 이 법 개정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세무사들로서는 날벼락이었다. 조세전문가로서의 위상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한 때는 승승장구하며 전문직으로의 영역을 자리 잡으려는 순간 느닷없는 변호사의 공격을 받았다. 치열한 법리해석과 논리가 동원됐지만 안타깝게도 국민들 눈에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면서 여의도의 관심은 좋게 말해 ‘중심을 잡는’ 쪽으로 급선회하며 지루한 답보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세무사 입장에서 본다면 이 잘못된 엄청난 오류가 시정되려는 순간 국회의원들이 눈치를 보며 슬슬 뒤로 물러나면서 벽이 높아지는 것을 목격 중이다.

당초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국회 기획재정위원들 중에는 상당수가 세무사의 독립직역에 공감을 보이는 분위기였다. “변호사들 욕심이 너무 과하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왔고 느닷없는 공격을 받은 것으로 비춰진 세무사에 대한 동정 여론도 많았다.

실제로 “길을 막고 물어보자”는 분위기도 있었고,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변호사가 단지 변호사라는 이유로 세무회계를 포함한 세무사 업무를 전부 수행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는 여론도 강했다. 숫자가 급증한 변호사들이 만만한 세무사 업무를 침범하는 것으로도 이해가 됐다.

그러나 전장이 여의도로 고착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길을 막고 물어도 볼 것조차 없다는 상식에 법리논쟁이 붙으면서 소위 논리의 틀에 포위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법에서 변호사에게 세무사 업무를 수행하라는 취지는 세무사의 핵심업무가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는 변호사들의 주장이 쐐기를 박고 있다. 따라서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 ‘마지노선’으로 제시된 기재부와 세무사들의 의견조차도 수용할 수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유도해 나갔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세정가에서는 ‘상식’으로 생각해 오던 사안에 대해서조차 “변호사를 당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젓고 있다.

여기에다 여의도를 구성하는 ‘성분’은 세무사에게 심각할 정도로 불리하게 돼 있다. 시쳇말로 변호사들이 방심했을 때와는 정 반대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율사출신 국회의원들이 즐비한 국회를 상대로 세무사가 ‘밥그릇’으로 도전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 그대로다. 그동안 여의도에서 번번히 기습을 당했던 변호사들이 삭발까지 하면서 ‘정신’을 차리자 전세가 ‘확’ 달라진 것이다. 세무사 쪽에서 주장하는 ‘국민 눈높이’와 ‘상식’은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운 전세다.

일종의 공적 전문사무를 대행하는 세무사 직무가 이렇게 풀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이 단지 세무사와 변호사의 업무영역 다툼으로 치부돼 적절한 합의로 결말지을 일인가. 결국은 결론이 나겠지만 이 일이 처음부터 ‘여의도 일’이 맞았던 것인가.

끝 모를 세무사·변호사 다툼으로 정상적인 세무사 업무가 일부 마비되는 상황을 보면서 논리도 논리지만 국민 4대의무인 납세의 핵심 기능을 이렇게 ‘방치’하는 정치권과 정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납세자들에게 돌아갈 것이 뻔하다. 설치던 국회는 빠지고 정부는 보이지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

오는 6월 한국세무사회는 새로운 회장을 뽑아야 한다. 재작년 세무사법 개정을 두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던 전임 회장이 재선에 나섰다가 단칼에 쓴잔을 마셨고, 현 원경희 회장은 “세무사법 만큼은 자신 있다”는 공약을 내걸고 회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원 회장은 2년 동안 세무사법 개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말할 만큼 열심히 나섰지만 요즘 ‘역부족’을 실감하고 있다. 세무사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이해한 듯 표정을 지었지만 결정적인 대목에서는 잘 돼야 원점이었다.

지난 주 원 회장은 세무사고시회 임원진과의 면담에서 “변호사에 비해 세무사 자격을 가진 국회의원이 턱없이 모자라 한계를 절감했다”면서 세무사들의 적극적인 정치권 진출을 희망했다. 그는 길을 막고 물어도 대답이 뻔한 이 문제가 이렇게 배배 꼬이는 것은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라며 세무사들의 정치권 진출 필요성도 강조했다고 전해졌다.

현실이다. 한동안 시민단체들이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자 당시 세무사회는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세무사가 워낙 부족해 불이익을 겪는다며 젊은 세무사들을 중심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독려하기도 했다. 성과도 꽤 얻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시민단체에 참여해 봉사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다. 20대, 21대 국회를 대상으로 세무사법 개정을 위해 뛰었던 세무사회 관계자들은 세무사법 개정에서 정작 세무사들의 의견이 반영되기는 아주 어려운 구조라는 소회를 밝혔다. 변호사들이 국회 상임위 곳곳에 포진한 상황에서 변협이 과거와 달리 삭발투혼으로 맞서는 한 세무사 입장이 반영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비유하는 절망적 상황을 털어 놓았다.

이번 세무사 회장 선거에서도 세무사법 개정이 핵심적인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답이 없는 이 문제가 선거판을 휘몰아 갈 것이다. 세무사 업계로서는 이 문제가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비견될 정도다. 이 요원한 가치에 동참하면서 또 선거를 치러야 한다. 말의 성찬이 지배하고 반복적인 소모전이 또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루틴’하게.

국민들은 어떤 세무사법을 원하고 있는가? 세무사·변호사·정부당국자·국회의원들에게 이 간단한 명제를 국민입장에서, 납세자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것이 고차방정식처럼 얽혀 버린 세무사법이 제대로 된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무사 입장에서도 한걸음, 변호사 입장에서도 한 발 물러서 국민을, 납세자를 우선해서 디자인을 다시 해야 한다.

세무사 업무는 일반 자격사 업무와는 확연히 다른 특성이 있다. 공적 성격이 강하게 부여된 정부사무와 납세자 권익보호를 대리하는 일이다. 그래서 세무사 자격에는 구체적 업무범위가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특히 세법과 국세행정은 요즘 하루가 다르게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또한 복잡한 세법 운용은 전문가 조력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데다 국세행정은 세무사 참여 없이는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따라서 세무사법 개정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명실상부하게 주관해야 한다. 주무부처가 배제된 듯 진행되는 현재의 방식에는 큰 문제가 있다. 복잡하게 얽힌 이 일이 여의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일견 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주인 없이 문제만 더 키울 뿐이다.

따라서 세무사법 개정은 하루빨리 여의도 만능에서 빠져나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그리고 ‘세무업계’ 관계자들이 납세자인 국민을 전제로 기본으로 돌아가 답을 찾아야 한다.

이 기본이 절실한 시점이 됐다.

정창영 주필
정창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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