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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법 만능주의의 자초지종…정책혼합은 불가능한가?
[데스크 칼럼] 법 만능주의의 자초지종…정책혼합은 불가능한가?
  • 이상현 기자 / 편집국장
  • 승인 2021.03.0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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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H 사태는 법이 없어서?…부처 이기주의와 칸막이 행정 극복 못하는 나라
- 국가재난지원이 복지정책?…"세금 덜 쓰고 피해자끼리 돈 돌리는 경제정책"

더불어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언론을 포함하는 내용의 6개 언론관련 법률안을 3월 국회 안에 처리하겠다고 밝히자, 모처럼 신문협회와 기자협회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했다.

한 거대신문사 사주는 정권이 불편해하는 보도를 언론개혁의 미명아래 옥죄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기자협회도 징벌적 손배제를 언론개혁의 전부로 이해하는 집권여당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해당 거대신문사는 문재인 정부와 원래 불편한 관계라고 쳐도, 기자협회가 여당의 입법에 거부감을 드러낸 내막을 시니어 언론인으로부터 최근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사회는 해마다 2000명 넘게 배출되는 변호사들을 먹여 살리려 나라의 모든 구성원들이 ‘법률 만능주의’의 늪에 빠져야 한다는, ‘번득이는’ 통찰이었다.

실제 한국사회에서 ‘법률 만능주의’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구축한 법제가 아니다 보니, 법이 공동체 구성원간 관계관리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해주는 도구를 넘어 ‘진실’을 가늠짓는 ‘전가의 보도’로 여겨진다.

이 법이 입법이 되면, 후미진 역사의 뒤안길에 진실을 파묻어온 권력자와 부자들이 예의 금권과 폭력으로 언론을 옥죌 가능성이 높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한국인 특유의 강한 제보정신도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공직사회에서도 이런 ‘법률 만능주의’는 어김없이 드러난다. 물론 공무원들은 소관 법률에 따라 판단하고 집행해야 하지만 인류가 인간 뇌(腦)의 비밀을 풀지 못한 가운데 사회관계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모두 법률로 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못해 무책임한 태도다.

LH 임직원들이 농사를 짓겠다며 신도시 개발 예정지 땅을 사서 나무를 심어 놓고 정부 발표를 기다리며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사실 그동안 법이 없어서 국토교통부의 적폐가 켜켜이 쌓여왔던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9일 국회 상임위 현안 질의에 출석해 LH의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임직원의 행태에 대해 강력히 처벌할 규정이 이미 있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수년 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금을 걷은 뒤 소득재분배 지표가 악화된 7개 나라에 속했다. 몇 년 뒤 정부가 부랴부랴 나서서 해명을 하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해명을 했지만, 실제 개선됐는지는 미지수다. 사실 이런 사실은 공론화조차 되지 않았다.

세금이 뭔가. 국가가 걷어서 각종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낳는 산업을 일구고 취약계층에게는 장려금을 지급해 누구나 인간다운 생계를 보장하는 나라살림의 밑천이다. 그런데 이런 세금을 걷으면 걷을수록 분배지표가 악화된 나라는 국가의 기본 기능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조만간 “지금은 그런 일 없다”고 당당히 발표하길 바란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공직자는 절대 ‘법’을 ‘전가의 보도’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합리적이고 공평하며 신뢰받는 국가경영을 위해 법학이 아닌 행동심리학 연구가 더 활발하다. 탈세 포상금 제도를 어떻게 업데이트 할까 고민할 시간에 “국가가 어떻게 신뢰를 얻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신뢰를 얻으면 ‘탈세’는 사라질 것이다.

무엇이 신뢰의 걸림돌인가. 또 혁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르주아 혁명을 겪지 않은 한국은 조선시대 ‘이호예병형공’의 부처 이기주의와 칸막이 행정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평소에는 이방이 형방의 이권을 건드리지 않다가 이해상충 되는 일이 생기면 전쟁이 난다. 그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늘 백성들이었다.

경제부처 공무원들에게 묻는다. 재난지원금이 미시(산업)와 거시(소득)를 아우르는 ‘경제정책’인가. 아니면 수개월동안 불가피했던 집합금지명령으로 거의 매출을 하지 못한 상공인들을 위한 ‘복지정책’인가.

안타깝게도 한국의 공직사회는 재난지원금을 복지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미국에서 왜 ‘헬리콥터 머니’라고 부르는 지 생각해 본 정치 지도자와 공직자가 몇이나 될까 모르겠다.

기자는 수차례 재단법인 한국간편결제진흥원이 운용하는 제로페이가 재난지원정책을 위한 중심 수단이 돼야 함을 역설했다. 국가재난지원을 ‘복지정책’이 아닌 미시‧거시 경제정책으로 이해하자고 강변해왔다. 무작정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복지지출만 하는 재난지원금에만 몰두하지 말고, 재난지원금을 가장 피해가 집중된 골목상권 안에서만 유통되도록 해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경제활동이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강변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은 화폐량의 함수이지만, 화폐 유통속도의 함수이기도 하다. 같은 양의 화폐도 2배 빨리 경제권을 돌면 2배의 GDP가 창출되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이 대형마트를 통해 대주주의 배당으로 빠져 나가지 않게 골목상권에서만 결제되도록 제로페이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면 소비수요와 경제성과에 미치는 경로도 추적할 수 있다. 국책연구원 소속 지식인들이 “재난지원금의 30%만 직접 소비에 사용됐다”며 비아냥거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제로페이를 이용해 전 국민이 거주지 인근 골목상권에서만, 반드시 필수소비재만 구매하도록 재난지원금을 지원하면 기업 생산도 줄지 않는다.

재정만으로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활동 피해를 보전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경제 부처들은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은 이참에 ‘이호예병형공’의 ‘부처이기주의’와 칸막이 행정을 깨부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재단법인 형태로 설립, 서울시부터 시작해 공직사회 전반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로페이는 단순히 종이 지역화폐를 스마트폰으로 옮겨 심은 게 아니다. 재벌 계열 금융회사들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언론을 매수해 ‘관치화폐’라고 조롱하는데, 제로페이는 “그래, 나는 국가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동원된 관치화폐 맞다”고 당당히 맞서야 한다.

국가는 국민 세금을 슬기롭게 쓰기 위해 부처간 장벽을 허물고 경제학 원론 교과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정책혼합(Policy Mix)’을 실현해야 할 때다.

국세청과 4대 사회보험관리기관들이 제각각 소득을 파악해 징수와 보장의 잣대로 삼아왔다. 만시지탄으로, 기획재정부 중심으로 ‘소득정보 연계 추진 범정부 추진단’이 출범했고, 국세청도 소득자료관리준비단을 꾸려 범정부 추진단에 참여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등이 관할하는 사회보험기관들이 얼마나 협력할 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갈 길이 멀지만, 쉬지 말고 켜켜이 쌓인 적폐를 걷어내야 한다. 일부 LH 직원들의 비릿하고 당당한 투기 예찬론을 더 이상 보지 않으려면.

긴급재난지원금 가구당 최대 100만원 지원/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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