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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칼럼] 가업승계제도 개선으로 경제 활력 제고를
[국세 칼럼] 가업승계제도 개선으로 경제 활력 제고를
  •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21.11.2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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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달여 전 예고했던 정부 주도 상속세제개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획재정부는 11월 초 국회에 제출한 ‘상속세 주요 쟁점에 대한 검토의견’ 보고서에서 기존 상속세 과세체계를 거의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2년만의 전면 개편을 기대했던 것에 비해 고작 연부연납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상속세율 인하, 상속세 과세방식의 변경, 가업상속에 대한 공제한도를 확대하고 사후관리기간을 단축하는 방안 등에도 부정적인 의견이라고 한다. 합리적 조세 개편보다 세수 감소만 의식하는 것 같아 실망스러운 귀결이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높고, 기업 최대주주에게 붙는 할증까지 더하면 최고 60%에 이른다. 과세방식도 상속재산 전체에 매기는 유산세 방식이어서 상속인별로 물려받은 만큼 내는 유산취득세에 비해 부담이 크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지난 11월 초 “최고 50%인 현행 상속세율은 과도하며, 이미 소득세를 낸 자산에 다시 고율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지적했다. 상속세제가 과중한 세 부담은 물론이고, 기업경영에 걸림돌이 되어 경제활력을 해친다는 지적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번 기재부 검토의견에서 가업승계제도의 개선을 외면한 것은 매우 아쉽다. 중소기업은 자산이나 담보 물건이 별로 없어 상속세가 부과되면 경영권을 내놓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예가 손톱깎이 세계 1위였던 쓰리세븐이다. 창업주가 타계하자 유족은 경영권을 이어받으려 했지만 150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결국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1위 콘돔 생산업체 유니더스도 50억원의 상속세 때문에, 국내 1위 종자기술을 보유했던 농우바이오 역시 1200억원의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요진건설도 900억원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사모펀드에 총지분의 45%를 매각했다. 이후 공동 창업자가 지분을 재매입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에게 2배 이상 웃돈을 줘야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9년 11월 발표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영속성 및 지속경영을 위해 가업승계가 ‘중요하다’라고 답변한 기업인은 66.8%였다. 그 중 68.8%가 주된 이유로 ‘창업주의 기업가정신 계승을 통한 기업의 지속발전 추구’를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실제 많은 중소기업인이 가업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이유로는 ‘막대한 조세 부담 우려’(77.5%)와 ‘가업승계 관련 정부정책 부족’(49%)을 들었다. 이들 기업 중 정부의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활용할 계획이 있다고 답변한 기업은 전체 기업의 30%에 불과했으며, 그럴 계획이 없다고 답변한 기업은 25.8%로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들은 공제제도를 활용할 계획이 없는 이유로 ‘사후 요건 이행이 까다로워 기업의 유지 및 성장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25.8%), ‘사전요건을 충족시키기가 힘들어서’(19.5%) 순으로 대답했으며,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느끼는 사후 요건으로는 ‘근로자 수 유지조건 완화’(75%)를, 사전요건으로는 ‘피상속인의 최대 주주 지분율 완화’(59%)를 꼽았다.

실제로 국세청이 발표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상속세 과세 대상자 8357명 중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건수는 고작 75건으로 0.9%에 불과했다. 정부의 가업승계지원 노력에 비해 그 실효성은 매우 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현행 가업승계제도의 문제는 첫째,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3년간의 평균 매출액이 3000억원을 넘어서게 되면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둘째, 공제혜택을 받더라도 기업을 얼마나 잘 키웠는지 보다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경영했느냐로 공제액의 한도가 달라진다. 가령, 피상속인(선대)의 경영기간이 10년 미만이면 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며, 10년 이상 20년 미만이면 최대 200억원, 20년 이상 30년 미만이면 최대 300억원, 30년 이상이면 최대 500억원의 공제한도가 순차적으로 적용되는 식이다. 국내 중소기업 평균 업력이 12년 정도인 점을 감안할 때, 업력 30년 이상에게만 제공되는 최대 500억원의 공제혜택은 현실과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 셋째, 피상속인을 포함한 최대 주주가 비상장기업은 50%, 상장기업은 30% 이상의 지분율을 10년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사후 요건도 만족해야 한다. 설사 사전요건을 모두 충족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았다 하더라도 가업 상속인이 상속개시 이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사후 의무 요건을 이행하지 않게 되면 상속세가 부과되는 것이다.

또다른 사후 의무 요건으로는 우선 사후관리 기간 7년 동안 상속인은 가업에 종사해야 하며, 지분이 감소해서는 안된다. 상속 후 5년간 가업용 자산의 10%, 7년간 20% 이상을 처분해서도 안되며, 1년 이상 가업을 휴업하거나 폐업해서도, 주업종을 변경해서도 안된다. 상속인 상당수가 가업을 승계받은 뒤 신사업에 진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상속 후 7년간 정규직 근로자 평균 인원이 상속 전 근로자 평균 인원의 100% 이상 또는 상속 후 7년간 총급여액 평균이 7년 후 기준 총급여액 이상이 돼야 하고, 매년 정규직 근로자 평균 인원이 기준연도의 80% 이상 또는 매년 총급여액이 기준 총급여액의 80% 이상이 돼야 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까다로운 조건 탓에 가업상속공제가 중소·중견기업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많은 중소기업이 높은 상속·증여세율로 흑자 상황임에도 폐업을 결정하거나, 사모펀드에 회사 매각을 의뢰하는 등 기업 영속성에 위협을 받고 있다. 또 외국자본의 적대적 M&A에 노출된 기업도 존재한다.

해외 국가 다수는 상속세 부담이 기업의 투자활동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는 인식 아래 기업부담을 줄이기 위한 여러 특례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독일 명목 최고세율은 50%로 한국과 같지만 직계비속 상속 때는 최고세율이 30%로 낮아진다. 또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가업승계에 공제혜택을 준다. 또 최대 500억원이라는 공제한도를 설정한 우리나라와 달리 상속 후 5년 이상을 유지하면 상속재산의 85%를, 7년 이상 가업을 유지하면 100% 공제하는 게 원칙이다. 영국도 모든 기업이 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고, 사후관리 요건도 없다.

일본은 비상장 중소기업 소유주가 상속증여할 때 ‘특례사업승계제도’를 2018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특례제도를 신청한 중소기업 2세는 가업을 물려받을 때 내야하는 증여세와 상속세를 전액 유예받는다. 선대 경영자가 사망하면 유예받은 증여세 납부가 면제된다. 가업을 계속 운영해 3세에게 물려주면 유예받은 상속세는 최종 면제된다. 가업을 이어나가는 한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지 2년 만에 신청 건수가 연간 10배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원활한 가업승계를 통해 기업이 쌓아온 기술력과 일자리를 후대가 계승하고 발전시키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가업승계제도를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 첫째, 사후요건인 근로자수 유지조건과 피상속인 지분율을 완화해야 한다. 둘째, 사전요건으로 되어 있는 공제한도액도 대폭 상향조정해야 하고 그 기간도 질적 기준으로 단축해야 할 것이다. 셋째, 업종 변경도 탄력적으로 허용해서 새로운 업종으로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 넷째, 상속재산을 담보로 중소기업이 대출로 상속세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업 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일자리와 기업가 정신의 대물림’으로 봐야 한다. 가업승계를 욕심 많은 창업주가 그간 착취해 온 부를 자식에게 넘겨주는 비도덕적인 과정이 아니라, 기업이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 또 일자리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후대가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물려주는 과정이란 인식이 중요하다. 가업승계로 인한 국가 기술 수준 향상과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는 단기적인 시각에서 금전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귀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상속세 제도에 대한 여론은 두 가지로 갈린다. 상속세 부담이 지나치게 무거워 경감이 필요하다는 여론과, 부의 대물림·집중을 견제하기 위해 기존 수준의 상속세 과세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그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부의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에서 ‘가진 자’의 세금인 상속세를 손대기는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라는 일자리는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어 결혼을 미루고, 결혼해도 생활비 부담에 아이 낳기를 꺼리는 젊은 세대에게 현실적인 저출산 대책이기도 하다.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가업승계제도인 만큼 국회나 대선주자들이 심사숙고해서 국가장래를 위한 최선의 결론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
(본지 논설위원)

•국세청 국장 명예퇴직
•세무사(세무법인 정담 대표)
•경영학박사
•수필가
•가천대 대학원 겸임교수
•서울세무사회 자문위원장
•(사)건강사회운동본부 감사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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