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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칼럼] 예산안 늑장·졸속처리를 지켜보는 납세 국민의 걱정
[국세 칼럼] 예산안 늑장·졸속처리를 지켜보는 납세 국민의 걱정
  •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23.01.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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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난해 12월 24일 새벽, 본회의를 열어 638조 7276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처리했다. 여야는 법정 처리 시한(2022년 12월 2일)을 22일이나 넘기면서, 사생결단식 힘겨루기를 이어가 국민의 불안감을 어느 때보다 고조시켰다. 가까스로 해를 넘기지 않고 처리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의 ‘지각 처리’라는 오명은 피할 수 없게 됐다.

 

□ 매년 12월이면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이제는 사라져야
예산안 처리가 이처럼 늦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겉으로는 법인세율 인하 문제가 시작이었다. 여당의 주장과 논리는 ‘경제 활성화’였고, 야당은 ‘부자 감세’가 반대이유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행정안전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등 극소수 쟁점을 놓고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협상은 계속 꼬여만 갔다. 거대 야당의 수정안이 의석수를 이용해 힘으로 통과된다면 야당이 정부 예산을 짜는 초유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예산안이 강행 처리된다면 여야 충돌이 더욱 격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 상황까지 갔다. 결국은 이른바 ‘윤석렬표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을 각각 절반씩 감액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윤 정부가 신설한 ‘행정안전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그리고 야당이 요구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 50% 삭감된 수준에서, 법인세율은 네 단계 과표 구간 모두에서 1%포인트씩 낮추는 모양새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납세 국민은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우려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예산안 처리 지연에 대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국회의 늑장 심사 악습이다. 정부 예산안은 해마다 9월 초 국회로 넘어온다. 하지만 여야는 국정감사 등에 힘을 쏟느라 뒷전으로 미뤄놨다가 11월이 돼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나마 여야가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라 통상 증·감액을 최종결정하는 예산안조정소위 심사 기간은 1주일도 채 안된다. 예결특위 정책 질의마저 이태원 참사에 파묻힌 올 예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요 선진국 의회의 예산 심사 기간이 3~4개월에 달하는 것과 너무도 대비된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은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올 예산안이 처음이다.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기 전엔 국회가 법정 기한을 넘겨 예산안을 처리하는 사례가 매년 반복됐다. 2000년 이후 법정 시한을 지킨 것은 2002년, 2014년, 2020년 세 차례뿐이었다. 2012년과 2013년엔 해를 넘기기도 했다. 이런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됐다.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가 완료되지 않으면 정부 예산안을 본회의에 자동 부의(附議)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그 이후 적어도 정기국회 종료 전까지는 예산안을 처리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가장 늦었던 2019년에도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 10일에 2020년 예산안이 처리됐는데, 올해는 이런 관행마저 깨진 것이다. 

우리 헌법 제54조 제2항에는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해진 예산안 처리 시한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왜 지키지 않는가.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일반 국민이 법 어기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면서 입법기관인 국회는 무슨 배짱으로 어기는지 알 수 없다. 그것도 헌법규정을 말이다. 

 

□ 밀실·벼락치기 관행…예산안 심사 방식도 확 바꿔야 
부실·졸속 심사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이다가 막판 법적 근거도, 감시의 눈도 없는 ‘소(小)소위’를 꾸려 밀실, 벼락치기 심사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밀실 심사 관행이 유독 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회 예결특위는 지난해 11월 30일까지 증액은 손도 못 댔고, 감액 심사도 마치지 못한 채 활동을 끝낸 뒤 속기록도 없어 밀실 담합 수단으로 여겨지는 ‘소(小)소위’로 예산안을 넘겼다. 의원들은 증·감액 내용도 모른 채 표결에 임했다. 오죽하면 어느 예결위 의원조차 “심사 상황을 알 수 없었고, 수정안이 도깨비처럼 등장해 국회를 모독했다”고 토로했을까.

이번에 여야는 정부 예산안에서 4조2000억원 감액하고 3조9000억원을 증액했는데, 증액분 가운데 지역 민원성 예산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여야 실세 의원들은 수천억원이 넘는 ‘쪽지 예산’을 끼워 넣었다고 한다. SOC 예산 중 정부 안보다 증액된 것만 해도 2833억원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지역화폐 등 포퓰리즘 예산도 수천억원씩 추가됐다. 국익 우선 의무(국회법 제24조)는 안보이고 세금을 제 돈처럼 뿌리는 선심이 날뛴다. 

여야 지도부, 중진, 초선 의원 가리지 않고 예산안이 통과되자마자 지역구에 수억~수십억원을 챙겼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홍보자료를 뿌리기 바쁘다. 정부 예산안에 이미 반영한 민원성 예산도 모자라 혈세를 마구 써도 되는 쌈짓돈처럼 여기고 있다. 쟁점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한 와중에도 지역구 예산 나눠 먹기만큼은 여야가 한통속이다. 쪽지 예산은 사업 타당성 검토를 제대로 거치기 힘들어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예산 편성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으나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성실하게 납세하는 국민은 허탈하다.

쪽지 예산은 끼워 넣으면서 무인기 개발 예산은 260억원을 삭감했는데, 당장 북한이 띄운 무인기는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본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혹시 예산을 확보할 지역구 국회의원이 없어서일까. 반도체 세액공제법안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가 시한에 쫓겨 일괄타결 대상이 되면서 여당안(20%)도, 야당안(10%)도 아닌 정부안(8%)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반도체라는 글로벌 패권 전쟁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경쟁국 기업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싸워야 하는 양상이다.

 

□ 여도 야도 포퓰리즘 경쟁…재정준칙 법제화 서둘러야
올 예산안은 윤석열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편성한 데다 국회가 정부안에서 4000억원을 삭감했으나 나랏빚 증가를 막지는 못했다. 이에 올해 국가채무는 1134조4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0.4%에 이른다. 통합 재정 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차감해 정부의 실질적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 수지 적자는 58조2000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D1)는 2017년 660조2000억원에서 작년 말 1069조8000억원으로 5년 사이에 400조 원 넘게 급증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여야는 선심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3525억원 규모로 되살아난 지역화폐 예산이다. 조세재정연구원마저 ‘경제 효과가 불투명하다’고 우려한 지역화폐에 대해 재정 중독 사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양당 후보들이 내세웠던 공약인 ‘사병 월급 200만원’도 선심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사회진출 지원금을 포함해 병장 월급이 130만원으로 오른다. 또 지역경제 활성화 명분으로 추진하는 사업에서 증액된 1조5000억원 중 상당수는 여야 의원들의 요구를 반영한 ‘쪽지 예산’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지금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파고와 경기 침체까지 겹쳐 신음하고 있다. 이런데도 정치인들이 나랏돈을 자기들 쌈짓돈인 양 마구 쓰며 선심 경쟁을 벌이면 결국 국민과 기업들이 피해를 본다. 취약 계층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지만, 무차별적인 현금 살포는 자제해야 한다. 재정을 거덜 내면 그 부담은 미래 세대의 허리를 휘게 만든다.

상황이 이런데도 재정준칙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아직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에 발의됐지만, 여야가 2023년 예산과 세제개편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느라 재정준칙 법제화가 해를 넘기고 만 것이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가 폭증하는 것을 막는 장치다. 여야를 떠나 나라 살림의 방만한 운용으로부터 국가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현재 OECD 회원국 가운데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 뿐이라고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중기(2021~2030년) 재정 전망’에 따르면 2029년에는 국가채무가 20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측한다. 오늘도 묵묵히, 성실하게 납세하는 국민은 걱정이 앞선다. 국회는 재정준칙 제도 법제화를 최대한 서둘러야 할 것이다.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 국세청 국장 명예퇴직  
• 세무사(세무법인 정담 대표) 
• 경영학박사 
• 수필가   
• 가천대 대학원 겸임교수 
• 서울세무사회 자문위원장  
• (사)건강사회운동본부 감사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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