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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있었던 세 건의 암살·테러 사건
10월에 있었던 세 건의 암살·테러 사건
  • 日刊 NTN
  • 승인 2013.10.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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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짜이야기-김종상 세일회계법인 대표

 
인류 역사상 테러 및 암살 등의 사건이 빈번했고, 이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달라졌던 유명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우선, 1500여년 세계제국 로마의 기초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 율리우스 시저(황제라는 단어가 된 Ceasar Kaiser)가 암살(B.C. 44년)된 것은 가장 유명했던 사건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다음은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부부가 세르비아에서 암살(1914년)된 사건으로, 이것은 1차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또한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암살(1948년)은 인도 국민 단합의 계기가 되었고, 미국의 존경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약 100년(1865, 1963) 간격으로 암살되었다. 이에 최근 100여년 사이에 또 10월에 발생한 우리나라와 직접 관련된 세 건의 암살, 테러사건을 음미해 본다.


안중근 의사(義士)의 이등박문 암살(1909.10.26)

독립투사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 안중근(安重根 1879-1910년)은 고려 말 저명한 유학자 안유의 후손으로 학문과 재산을 두루 갖춘 집안의 자손이었다. 그는 이미 15세 때부터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동학혁명(1894년)에 참여했으며, 늘 심신의 단련에 힘썼다고 한다. 특히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보호조약(1905년)을 전후해서는 만주를 오가며 의병활동에 투신했고, 당시 대륙 진출과 조선의 식민지화를 앞장서 추진하던 이등방문의 암살을 목표로 삼았다.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토 히로부미, 1841∼1909)은 왕정복고(王政復古)로 일본의 근대화의 시작이 된 명치유신(明治維新,1868년) 과정에서 초대 내각총리(1885년) 등 4차례 총리를 역임한 대표적인 원로 정치인이었다. 을사보호조약 이후, 조선의 초대총감으로 임무를 마치고, 이제는 만주를 세력화하는 등 대륙진출을 위한 예비 작업으로 러시아 재무상과 회담을 갖기 위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 도착 한 것이다.
그 이전인 1907년에 고종이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대표 3인을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하여 을사보호조약의 위법성과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려 했다. 하지만 일본과 영국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고종은 강제 퇴위되어 국내외에서 일본에 대한 공분이 만연하던 시기였다. 뒤이어 일제에게 외교권을 빼앗기고, 강제병합이 기정사실화 되어가는 중, 1909년 10월 26일 오전 10시경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의사가 그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이등박문을 저격하였다. 이 사건은 조선민족 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인들에게도 시원스런 쾌거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10.26사태

박정희(朴正熙 1917∼1979년) 대통령은 5.16 군사혁명 이후 18년 동안 집권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새마을 운동 등을 추진하여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나라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정치인이다. 그의 군사혁명의 정당성, 10월 유신(維新)으로 민주주의를 유보한 것 등의 공과는 차후 역사에서 계속 평가하겠지만, 경제개발계획을 안정적으로 추진해 세계의 중진국 대열을 넘어서, 이제는 세계 G10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키운 공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유신체제도 7년을 맞이하면서 장기집권의 피로를 느끼던 1978년 말 총선 이후, 1979년 Y.H사건, 부마사태 등으로 정치상황 등이 극도로 불안하던 10월 26일,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 권력의 중심부에서 박대통령의 가장 측근이었던 국가정보부장 김재규와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알력이 노골화되어 김재규부장이 박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이 소위 ‘10.26사태’ 인 것이다. 그 후 김재규는 유신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위한 의거였다고 명분을 내세웠지만, 당시 여러 정황상 설득력이 떨어졌고, 권력 투쟁의 일환으로 촉발된 사태로 마무리됐다.
묘한 것은 안중근 의사의 쾌거 이후 꼭 70년 후 같은 날, 10월 26일이라는 점, 유신(維新)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다만 이등방문은 일본의 유신의 창안자(명치왕, 오꾸보 등)는 아니었지만 주된 실천자이었고 우리나라를 강제점거 하는 과정에서 그 암살이 의거로 평가되는 것 등이 차이점일 것이다.


30년 전(1983년) 10월 9일의 아웅산 폭발 테러

얼마 전, 10월 9일은 한글날이 23년 만에 부활된 공휴일이면서, 아웅산 폭발테러사건의 30주년 되는 날이라, 언론사마다 관련된 기사들이 넘쳐났다.
79년 10·26사태를 조사·수습하던 책임자는 대통령(전두환)이 되었고, 그 뒤로 4년의 세월이 흐른 1983년 10월 9일, 북한 김정일의 주동으로 당시 버마(미얀마)에 공식방문 중이던 우리나라 전두환 대통령과 대표단에 대해 고성능 폭발물로 폭탄테러를 기도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이 바로 ‘아웅산(현재 미얀마의 독립투사 아웅산 수지의 국립 묘소) 테러사건’이다.
당시 우리 대표단에서는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 비서실장과 장관 17명이 순직하였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나마 대통령이 행사장에 조금 늦게 도착하여 무사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천인공노할 끔찍한 폭탄테러였다. 사건 후 북한군 현역 장교 3인이 체포되어 북한의 소행이 명백히 드러나, 외교단절 등 국제사회의 제재가 가해졌지만, 김일성, 김정일은 이를 부인하고 사죄하지 않은 채 묻혀 졌다.
당시 그 자리에 있다 중상을 입은 합참의장은, ‘그때 바로 이에 상응하는 대응조치(보복 등)를 했어야 그 후 반복된 KAL기 폭파 사건, 천안함 폭파 사건 등의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회고하였다. 다시 한번 그 희생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존경했던(부가가치세세 도입의 주역이었던) 김재익 경제수석을 비롯해 정말 아까운 분들이 희생된 것이 새삼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하늘은 높고(天高), 땅엔 단풍이 아름다운(楓美)계절, 가을에 이들 사건을 정리하면서, 두 건은 이제 발생하지 않을 일이지만, 아웅산 테러 같은 끔찍한 사태는 또 있을 수 있으니, ‘萬般의 對備!’ 그리고 ‘우리도 더 이상 당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와 국민 염두에 두는 국정감사’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그동안 이슈가 돼 왔거나 일부 제대로 된 석명이 미진했던 대목들은 죄가 거론되는 것이 국정감사입니다.
때로는 어느 일방의 주장이 그대로 전달되기도 하지만 ‘뭔가 가리는’ 분위기만큼은 생동감 있는 것이 또한 국감장 분위기입니다.
따라서 ‘국감스타’ 의원이 탄생하는가 하면 반대로 바닥과 밑천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 국정감사가 갖는 특성이기도 합니다.
21일 국세청을 시작으로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과 산하기관 국감이 이어집니다. 수도권과 경부선, 호남선 국감이 세정가에서 전개됩니다.
이들 기관장과 관계자들은 몇 달째 밤을 밝히며 수감준비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감 분위기는 날씨만큼이나 싸늘해져 있습니다. 감사에 임하는 위원이나 수감기관 관계자 모두 ‘국가와 국민’을 염두에 두는 국감이 되기를 기원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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