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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무서장·세무사·납세자…
[칼럼] 세무서장·세무사·납세자…
  • 日刊 NTN
  • 승인 2013.11.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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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가의 11월 풍경, 세 장면-

▲ 정창영 본지 주필.

Ⅰ.
 결국 그 시간이 왔다. 착잡하지 않으리라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막연한 생각이 머리에서 좀처럼 접히지 않는다. 요즘 듣는 말 열 마디 중 열한마디는 “어렵다”는 말이다. 얼마 전 지난해 퇴직한 선배를 만났다. “마음은 편하다”고 말은 하지만 얼굴 곳곳에 불안과 허전함이 역력하다.

가을이 찬바람과 함께 급히 떠나는 계절이 오면서 올 연말 명예퇴직으로 국세청을 떠나는 A 세무서장은 요즘 생각이 복잡하다. 혼자서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청사 주차장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는 풍경조차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지난 주말에는 사무관으로 재직하다 일찍 퇴직한 뒤 세무사로 자리 잡은 ‘절친 임관동기’를 만나 저녁식사를 하면서 ‘조언’도 들었다. “단독으로 세무사 개업이 정 부담스러우면 사무실을 같이 쓰자”는 제안도 받았고, “요즘 세무사 업계 경기가 장난이 아닌 상황이어서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는 충고도 들었다.

돌아오는 길 A 서장의 귓가에는 세무서장이 된 뒤 수없이 들었던 “세무서장 출신이 개업하면 가장 어렵다”는 말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모셨던 옛날 서장님들의 퇴직은 이러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에 미치자 달라진 세월을 실감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세무서장의 11월에 얕은 한숨이 베어 나오고 있다.

돌아보면 힘든 날도 많았지만 고비마다 승진도 했고, 축하도 받았고, 무엇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 한다는 자부심이 컸던 세월이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나는 대한민국 국세공무원이다’를 외치며 보내온 시간이었다.

요즘 가족들 얼굴이 자주 떠오르고, 퇴임사에서 어떤 말을 남길까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런 단상도 잠시 연말을 앞둔 세무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Ⅱ.

B 세무사는 요즘 거래처 사장 전화가 오면 살짝 긴장이 된다. ‘세무사는 상반기만 바쁘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부가세 법인세 소득세 신고가 몰려있는 상반기 세무사 사무소는 전통적으로 전쟁터다. 연일 야근에 휴일근무가 이어지고 세무사도 당연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당연히 수입도 좋다.

‘비교적 한가한 시기’인 요즘 B 세무사가 긴장하는 것은 국세청의 달라진 세정 때문이다. “누가 국세행정을 ‘루틴’하다고 했나?”를 실감할 정도로 20년 베테랑 세무사인 자신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요즘 국세행정이다.

거래처마다 세무조사가 이어져 ‘돈도 안되는’ 세무조사 조력을 늘 1~2건씩 달고 있다. 세무조사 건수도 건수지만 문제는 내용이다. 과거와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사요원들은 별의별 응용자료를 활용하는가 하면 분석도 상시적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벽(壁)’하고 이야기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까마득한 후배 조사요원들은 소명기회조차 인색하다. 나름대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조사요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료를 정리했지만 정작 꺼내 놓으면 ‘남의 이야기’가 된다.

납세자는 조사요원에 하소연하고, 세무사에게 화풀이라도 하지만 B 세무사는 말 할 곳조차 없다. 조사내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납세자는 세무사를 불신하는 시선이 역력하다. ‘실력’ 운운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 뿐이 아니다. 세무사 업계의 경쟁은 이미 갈 곳까지 가고 있고, 급상승하는 직원 급여에다 사라지는 거래처… 한동안 걱정 없었던 ‘손익분기점’이 요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정부가 납세협력비용 축소를 위해 세무사제도의 근본을 검토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쏠쏠하던 전자신고세액공제도 폐지 직전에 있다. 중견인 B 세무사는 세무사회 감투다툼은 물론이고, 요즘 얘기되고 있는 세무사회공익재단 설립 문제 등에는 솔직히 관심도 없다. 그런 2013년 11월이다.

Ⅲ.

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수도권 지역에서 제조업을 하고 있는 C 사장은 요즘 기운이 빠져 있다. 아니 의욕이 없다는 표현이 맞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정부 경제팀이 ‘지금도 문제는 없고, 곧 좋아질 것’이라고 말할 때는 ‘확’ 소리가 나왔던 C 사장이다. 업계에서 30년 일했지만 지금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업계 사장들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IMF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는 말을 듣는다. 마치 중소기업을 말려 죽이는 형국이다. 휴대폰·자동차 관련 업종 빼고는 돌아가는 곳이 없다는 말은 제조업 사장들 사이에서는 정설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정부가 세수가 모자라 공단 전체를 세무조사 한다’는 무지막지한 말이 돌아 한동안 긴장했었다. 물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당시 C 사장은 솔직히 “잘 됐다. 할 테면 해봐라” 심정이었다.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마치고 거창한 ‘선물보따리’를 들고 왔다지만 관심도 없다. 오직 생각은 언제 어떻게 사업을 접어야 ‘상처’가 최소화 될 것인지에 있지만 그것도 수십년 함께 해 온 직원들 얼굴이 떠올라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있고, 막상 사업 접고 난 뒤 상황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C 사장의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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