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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상의 세짜이야기]
[김종상의 세짜이야기]
  • 日刊 NTN
  • 승인 2013.12.0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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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이건희와 징기스칸 후계자들의 공통점

김종상 세일회계법인 대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세종대왕은 태종의 셋째아들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라면 서슴없이 세종대왕(1397∼1450년, 재위 1418∼1450년)을 꼽는다.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 초기에 장자를 제치고 셋째 아들을 후계자로 세웠던 태종의 탁견(卓見)이 새삼 귀중하게 느껴진다. 조선의 3대 왕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었으나, 건국 초기 정몽주, 그후 개국 공신 정도전을 제거하는 등으로 태조(재위 1392-1398년)와 그 장자였던 2대 정종(재위1398∼1400년)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개국 초기의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으며 특히 공신과 외척을 제거하여 신권(臣權)중심에서 왕을 중심으로한 중앙집권화의 토대를 다져서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할 세종성세(世宗成歲)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원래 태종의 큰 아들 양녕대군(1394∼1462년)은 학문보다는 풍류를 즐겨 세자(世子)의 자리를 충녕대군(세종)에 물려주게 되었으며 둘째 효령대군(1396∼1486년)은 세종의 즉위 후 불가에 입문하였으나, 이들은 서로 존중하고 각별한 형제애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여 각계의 인재들을 불러 모아 요즈음의 Think-tank(연구소)의 역할을 하게 했으며 인문, 과학, 농업, 음악, 의약, 국방 등 다방면에서 우리나라의 눈부신 중흥을 이루었다. 특히 한글을 창제, 공포(1443∼1446년)한 것은 가장 위대한 업적인데 오늘날 전자 통신시대에도 탁월한 기능을 발휘하여 세계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더 크게 평가하고 있다.

징기스칸의 후계자 오고타이(아들), 쿠빌라이(손자)도 셋째아들들

뉴욕 타임스가 지나온 이천년의 인물로 전반기 천년은 예수 그리스도, 후반기 천년은 징기스칸(1162∼1227년)을 선정한바 있다. 그만큼 징기스칸은 척박하고 인구도 200만 내외인 몽고에서 그 초원을 통일하고 중원의 중국, 서쪽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서 아시아, 당시 이슬람(호라즘)제국, 러시아, 인도, 유럽에 이르기까지 진격하여 연전연승하며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그의 사후, 그의 아들과 손자들로 이어저서 계속된 정복사업은 당시의 전세계였던 유러시아의 모든 국가와 민족들에 큰 충격과 영향을 미쳤다. 징기스칸의 적자(嫡子)아들 4형제 중, 큰 아들 ‘주치’는 출생의 의혹(징기스칸의 부인이 3년 동안 납치됨)으로 후계경쟁에서 밀려나고 인품과 전략이 뛰어났던 셋째 ‘오고타이’가 제2대(1229∼1241) 대칸(몽고의 황제격)이 되어 징기스칸의 사후, 몽고제국을 지휘하였다. 원래 유목민족 몽골에는 막내가 후계자(종족의 마지막까지 부뚜막을 지킨다)가 된다는 전통이 있었다. 징기스칸의 막내 ‘툴루이’도 출중하여 징기스칸의 모든 전쟁을 수행하며 원래의 몽골지역을 총괄하다가 그의 큰 아들을 거처 셋째 아들 ‘쿠빌라이’가 5대 칸이 되었다.

그는 ‘기둥을 박지 말라’(천막, 겔에 거주하며 말과 가축을 몰고 이동하는 방식)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넘어서 점령지, 중국에 원나라를 개국(1271년)하여 그 시조가 되었다. 소수민족으로 중국 대륙의 효율적 지배가 어려웠던 원나라는 초대 쿠빌라이의 사후(1294년) 10명의 황제가 바뀌는 난세를 겪다가 명나라에 멸망(1368년)하였다.
우리나라(고려)는 몽골의 칸 시대에 연이은 침입과 항쟁시기(1231∼1270년)을 거처 원나라의 부마(夫馬)국으로 6명의 ‘충자(忠字)왕’시대(1274∼1351년)로 이어지는 등 우리 역사상 가장 혹독한 외적의 지배를 받았다.

세계 전자 통신 기업의 선두에 오른 이건희 회장도 셋째아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소위 ‘박·정·이(朴·鄭·李)’경제개발시대에 현대의 정주영회장과 함께 그 한 축을 이룬 삼성그룹의 이병철(1910∼1987년)회장의 셋째아들 이건희(1942∼)회장이 현재 삼성전자 등 세계적 기업을 이끌고 있다. 큰 형 이맹희와 둘째 이창희(1991년 사망))을 제치고 선친의 삼성그룹 회장직을 승계하게 된 배경이 있겠지만 현재의 이르기까지 장남과의 알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1993년, 소위 ‘신경영 선언’이후 20년 동안 삼성그룹의 획기적 변신으로 그룹의 매출이 30조에서 380조(2012년), 종업원은 15만명에서 42만명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또한 월드베스트로 반도체(D램)이 41%, TV가 28%, 디스프레이, 2차전지 등은 23∼26%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확실한 1등기업이 되었다. 원래 소니 등 일본의 전자기업들을 따라가던 삼성이 2006년에 이들을 추월하고 2009년에는 이들 일본의 상위 9개 전자업체의 전체 영업이익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충격적인 일도 벌어졌다.
세계의 전자통신 최우량기업들인 애플, 노키아 등과 경쟁하면서 스마트폰은 몇 년사이에 세계시장 점유율이 32%(애플 13%)을 달성하는 등으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사와 함께 ‘빅 4’의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 만년의 역사에서 아렇게 세계에서 뚜렸한 일등을 해본 역사가 있었던가? 이밖에 조선분야에서도 세계 1등이며 자동차 수출 등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선전하고 있는 분야들이 적지 않다. 이는 몇 몇의 기업들이 이룬 실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이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눈부신 업적들은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지역감정, 여러 계층간의 불신, 갈등을 최소화하는 소통, 화합이 뒷받침되어야 지속될 수 있다. 밝은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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