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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칼럼] 우스갯말과 진실
[국세칼럼] 우스갯말과 진실
  • 日刊 NTN
  • 승인 2014.05.22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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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웅 본지 논설위원
해묵은 우스개 소리다. 학생이 좋은 대학에 들러가서 잘되려면 세 가지 필요충분조건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학생의 체력, 둘째는 어머니의 정보력, 셋째는 아버지의 무관심, 마지막으론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것이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2백년 전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한다. 20대의 야심 찬 법학도 라스티냐크가 보트랭으로부터 출세에 대한 지혜를 듣는다. “네가 30세에 판사가 되면 연봉이 1200프랑이고, 평생 열심히 뛰고 더러운 짓을 마다치 않으면 50대에는 꽤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될 수 있겠지. 그래 본들 연봉은 5만 프랑이지.”

그는 잘생긴 라스티냐크에게 출세전략을 말해준다. 망설이지 말고 지참금 100만 프랑을 가져올 상속녀와 결혼하라는 거였다. 그러면 젊은 나이에 바로 연간 5만프랑의 고소득자가 되어 30년이 지나야 벌 수 있는 소득을 20대에 얻게 된다는 거다.

지인의 이야기이다. 자기 동서는 자녀들과 행복한 노년을 보낸다고 한다. 사업이 잘되어 강남에 빌딩을 여러 채 가졌다고 한다. 고졸 아들 셋이 있는데 며느리들은 모두 유명대학 출신인데다 수시로 시가에 찾아온다고 한다.

며느리들은 경쟁적으로 별미 음식을 준비하여 시가에 들려 담소를 나누다 가는데 요즈음 보기 드문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 시부모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나중에 좋은 빌딩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지인의 관찰 소감이다.

수일 전 신사동에서 역삼동으로 택시를 몰던 환갑이 넘은 기사가 푸념을 하였다. 4~5년마다 선거를 하고 그때마다 정치인들은 달콤한 약속들을 하는데 누구를 찍어도 서민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니 도무지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위에 말한 일련의 이야기 기저에 흐르는 공통된 경제적 진실이 무엇인지를 속 시원히 알려주는 책이 나와서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 교수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 First Century)이란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이 나오자 마자 미국 등에서 전문서적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저자 토마스 피케티(원어 발음은 또마 삐께띠)를 학계의 새로운 록스타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는데, 정작 저자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장기간의 역사책 통계수치를 정리하여 그 결과를 소개하는 것일 뿐이라며 겸손하기까지 하다.

그는 유럽 국가들과 미국 등의 통계들을 길게는 대상기간을 2백년까지도 소급하여 분석하여 기존의 경제이론들 상당부분을 폐기할 실증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가령 종래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성숙해지면 소득의 불평등이 자연 해소되므로 선성장 후분배하자는 입장이었다. 쿠츠네츠의 U 곡선 가설이 대표적인데 경제가 성장하면 초기에는 불평등 격차가 벌어지다가 성장을 계속하면 불평등이 해소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실증분석결과는 그 반대로 나왔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불평등은 심화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택시 기사의 푸념처럼 서민들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경제를 몸으로 느끼고 있고, 능력보다는 조상을 잘 만나야 한다는 자포자기적 우스개소리가 우리 사회에 회자되고 있는데, 정책을 다루는 정치인이나 학자들만 유독 경제라는 파이는 커지면 커질수록 서민들에게도 분배되어 잘 살게 된다는 성장론적인 입장이었다.

실증분석이 말해주듯이 각국에서는 부와 자본의 집중화 현상이 가속되고 있어 그대로 두면 소수의 자본가에게 부가 고도로 집중되면서 중산층이 망가지고 시장과 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불평등 심화의 문제는 이제 학설적 쟁론이 무의미한 실증적 사실로 밝혀졌으므로 각종 정책 입안 및 법 개정을 위하여서는 반드시 이런 사실을 고려하여야 할 듯하다. 물론 유권자인 대중이 먼저 이해하고 요구하면 가장 이상적이고 효과적이겠지만.

통계는 말한다. 근자에 영국은 상위 10퍼센트 부자가 전체 부의 70퍼센트를 소유하고, 상위 1퍼센트는 무려 25~30퍼센트를 소유했다고 한다. 2010년 미국에서 상위 10퍼센트 부자는 전체 부의 70퍼센트 이상을 소유하며, 상위 1퍼센트는 거의 3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도 이에 못지 않다.

오늘날의 경제 역시 19세기 ‘고리오의 영감’에 나오는 보트랭의 세상처럼 노동의 대가가 자본의 수익력을 따라가지 못하므로 스스로 일하기보다는 상속과 증여를 받아야 잘사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세습 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를 떠올리게 된다.

잘못된 자본주의는 자본이 신(神)이다. 사람들은 이익 추구를 최고의 선(善)으로 여겨 부정과 착취도 서슴지 않는다. 세월호가 그 좋은 예이다.  “돈이 왕 행세를 하는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 속에서 늙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가 2% 떨어졌다는 건 뉴스가 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야만적 자본주의’를 걱정한다.

부의 불평등과 세습자본주의, 그리고 야만적 자본주의에서 복지적 자본주의로 복원시키는 평형수는 적절한 조세제도의 도입이다. 늙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하다 죽지 않도록 상위 10%가 가진 세상 부의70%를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를 조세로 고민하자는 피케트의 문제 제기는 오롯이 우리 모두를 위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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