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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상의 세짜이야기]
[김종상의 세짜이야기]
  • 日刊 NTN
  • 승인 2014.06.0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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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있었던 韓,美,英의 최대 여객선 침몰 사고

봄꽃도 빨리 펴 봄기운이 한창이던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이 엄청난 사고로 300명이 넘는 학생 및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면서 나라 전체의 분위기도 한 달 반 이상 침몰 위기인 듯 했다.

김종상 세일회계법인 대표

1990년대 이후,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적지 않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는 유별나게도 충격적이었다.
눈 앞에 가라앉고 있는 선박에서 희생자들을 더 이상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총체적 대응능력을 각종 통신기기 및 매스컴의 중계방송으로 생생히 보면서 국민 모두는 허탈감, 상실감,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영국의 T.S.Eliot(1888-1965)의 대표적인 시, ‘황무지’에서 ‘1편 죽은 자의 매장’ 첫 구절에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경천동지(驚天動地-아니-海)의 재해(災害)를 상징하는 듯 했다.
세계 역사에 기록된 이번 같은 대형 여객선 사고들, 그중 4월에 발생했던 미국, 영국의 경우와 비교해서 이번 우리나라의 악몽, 세월호 사고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1865년 4월 27일, 미국 미시시피 강에서 Sultana 호의 침몰로 1547명 사망

미시시피 강은 북쪽의 캐나다 국경 오대호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루이지애나를 거쳐 태평양으로 흘러드는 세계에서 아마존강, 나일강 다음으로 긴 6000㎞가 넘는 강이다. 1806년 풀턴(Robert Fulton)이 증기기관을 이용한 선박을 개발한 이래, 미시시피강을 따라 여객과 화물을 활발하게 운송하던 당시의 대형 증기여객선 Sultana호가 침몰한 것이다. 1865년 4월 27일 2천3백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항 중, 4개의 증기엔진 중 3개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1547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증기선 사고로는 최대이면서 미국의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기록될 이 참사가 크게 주목받지 않고 역사에 묻혀버렸다고 한다. 그것은 1865년이라고 하면 1861년부터 시작된 남북전쟁이 그해 4월 9일 남군의 사령관 ‘Lee'장군의 항복으로 끝나 나라 전체가 전후처리의 소용돌이 속에 정신 없었을 때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북전쟁이 끝난 지 5일후인 4월 14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었고, 암살범인 부스가 도피하던 중, 이 침몰사고 하루 전인 4월 26일 사살된 뉴스가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그 해 4월에 발생한 술타나호 침몰은 미국의 최대 해난사고였던 것이다.

1912년 4월 15일 영국의 타이타닉호 침몰 1514명 사망

역사적으로 제일 유명한 여객선 침몰사고는 1912년 영국의 타이타닉호일 것이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여객선으로 제작한 ‘Titanic'호는 영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처녀 취항하던 중 4월15일 밤 북대서양 부근에서 거대한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한 해난사고다. 타이타닉호는 무게 4만6천톤, 길이 260m로 100여 년 전에, 현재의 선박처럼 야외수영장, 헬스클럽 등이 처음으로 마련된 초호화 여객선이었으며, 절대로 가라 않지 않는 ‘무적의 배’라고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대형사고 후에는 항상 작은 실수들이 들어난다고 하는데, 타이타닉호도 출항 직전 승무원들이 북극해의 빙산을 미리 발견하지 못하고 급히 나타난 빙산을 피하려고 서둘러 후진하였지만, 결국 배의 옆 부분과 충돌하였다. 그 거대한 여객선 내부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불과 3시간 만에 선체는 두 동강이 났고 탑승객 2224명 중 구명보트 등으로 탈출한 710명을 제외하고, 1514명(시신 수습 300여명)이 수장된 것이다.

이 침몰사고는 1998년 영화로 제작되어 그 긴박한 순간들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구렛나루가 멋진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가라앉는 배에서 부녀자 등을 우선적으로 구명보트에 태웠는데, 이를 어기는 승객들에게는 총을 겨누면서까지 질서를 지켜냈으며, 선장 자신은 마지막 순간까지 배와 운명을 함께 하여 그 이후 ‘선장은 배와 함께’라는 선례가 되었다.
승무원들도 침몰의 순간까지 갑판의 전등을 유지하는 등 본연의 임무를 다 하였고, 갑판에서 끝까지 음악을 연주하던 음악가들도 바다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고 조난당한 이들을 구하러, 구명보트 선박들이 왔을 때, 바다 위에 던져진 승객들은 섭씨 2도의 차가운 바닷물에서 거의 전원(남자 주인공 포함)이 동사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바닷물 온도는 10∼11도였다고 하니 구명복을 입고 갑판으로 나와 바다에 뛰어들기만 했어도 더 많은 승객이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다.

21세기에 어처구니없이 발생한 세월호 해난사고, 300여명 사망, 실종

미국과 영국에서 발생한 해난사고의 희생자가 1500명이 넘는다 하더라도 이는 150년, 100년 전의 사고로 인재(人災)라기 보다는 자연재해에 더 가까웠다.
그에 비하면 세월호의 재난은 현재를 사는 21세기, 눈부신 과학기술, 전자정보기술산업, 특히 세계 최고 조선강국인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100% 인재(人災)라고 하니 참담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비극이었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 250여명을 포함한 300여 탑승객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됐으니, 대통령이하 모든 책임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비탄, 상실감,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특히 선장과 승무원들의 상식 밖의 잘못된 행동, 그 선박회사를 소유한 회장과 주변 인물들, 행정, 관리 감독책임부서들, 그리고 해운항만 등 관련단체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거론돼 왔다. 이제 국무총리 이하 관계장관 등이 경질되고 관련분야에 대한 뼈를 깍는 쇄신이 예상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들 분야의 광범위한 국정조사를 벼르고 있는데 지나친 정치공세로 불필요한 국정공백과 장기적 경기부진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더구나 일부의 불순한 재야세력이 끼어 들어 이 국가적 재해를 엉뚱한 목적으로 악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우리나라 경제력이 세계 십몇 등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이번 해난사고로 기본적인 밑천이 드러났고, 이전부터 7∼80등 이라고 했던 국가행복지수, 부패지수 말고도 이제 국가의 총체적 안전지수는 그 보다도 더 형편없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150만명이 넘는 참배객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며 합동분향소에 줄을 이었고 기업 등 사회단체가 성금과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는 잘 사는 대한민국도 좋지만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이것이 이번 참사를 통해 모두가 얻게된 뼈저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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