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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美 독립 및 헌법 제정시, 가장 중요했던 세 인물
[칼럼]美 독립 및 헌법 제정시, 가장 중요했던 세 인물
  • 日刊 NTN
  • 승인 2014.07.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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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일회계법인 대표 김종상

얼마 전, 미국의 역사에 중요한 독립기념일(1776년 7월4일)을 맞이하였고 우린 제헌절(1948년 7월17일)을 지내고 있다.
이런 날들을 기념하는 행사를 보면서 미국이 독립선언을 하고 헌법제정을 하여 연방정부를 수립하는데, 기여한 인물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 인물을 꼽는다면 누구를 꼽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정도전>을 보면서 조선왕조 건국에는 태조 이성계, 삼대 왕이 되는 태종 이방원, 그리고 정도전이 세 인물이었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경우, 첫 번째 인물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두 번째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후에 3대 대통령이 되는 토마스 제퍼슨까지는 누구나 인정하는데, 세 번째는 누구일까?

독립선언(1776년)에서 워싱턴 대통령이 취임(1789년)까지 13년이 경과

우리나라는 해방(1945년)된 후, 초대대통령 취임과 함께 정부가 수립(1948년)되기 까지 꼭 3년이 걸렸다. 남북한의 분단 상태와 여러 정치단체의 난립 등이 있었으나, 초대 국회의원선거를 거쳐 헌법을 제정하고(제헌절), 국회에서 대통령이 선출됐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가장 젊고 총명한 토마스 제퍼슨(33세)이 초안을 작성하고, 위원장격인 벤자민 프랭클린과 나중에 제2대 대통령이 되는 존 애덤스 등이 수정 및 가필 과정을 거쳐 확정됐다.
이미 1775년에 시작된 독립전쟁은 워싱턴 사령관을 중심으로 6년간 계속됐고, 파리평화회의에서 미국의 독립이 인정된 것은 1783년 이었다. 그 후 13개 주(州)들은 4년의 진통기간을 거치며, 다시 2년 동안 헌법제정, 비준기간이 필요했다.

헌법제헌회의(1787년)에서 활약한 인물들 

이미 150여년(1607년 이후)의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 왔던 대부분의 주(州)들은 대표, 상하의원 등 작은 국가(공화국)의 형태로 독립성을 갖추고 있었기에 별도로 큰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립전쟁 중 전비(戰費)의 처리, 유럽나라들과의 대외적인 관계 등을 감안하면 어떤 형태이든 州들의 연합체(국가) 수립이 불가피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 각주의 내로라하는 대표 55명이 모여 미합중국의 골격이 되는 헌법을 제정 하게 된 것이다.
이 대표들의 주류는 41∼45세 이었는데, 독립전쟁의 영웅 워싱턴이 55세로 이 회의 의장으로 추대됐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81세의 최연장자로 당시 국민들의 멘토로서 회의가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모두들 진정하고 의사진행에 앞서 기도합시다’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잡았다고 한다. 제헌회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사람은 당시 44세의 제퍼슨(제3대 대통령), 30대의 뉴욕 대표인 알렉산더 헤밀톤(차후 재무부 장관)과 버지니아 대표 제임스 메디슨(제4대 대통령) 등이었는데, 이들은 주로 연방 권력의 강화와 주(州)의 자주권 보호를 중심으로 열띤 논쟁을 벌였다. 진통 끝에 대 타협을 이룬 헌법초안은 13개 주(州)중에 9개 주가 비준해야 효력이 발생되므로 다시 1년 이상 소요된 절차를 거쳐 확정됐다.

워싱턴 대통령과 제퍼슨 국무장관, 헤밀톤 재무장관

이 헌법에 의해 1789년 초, 상하의원선거가 실시됐고, 이들 선거인단은 만장일치로 워싱턴을 대통령으로, 존 애덤스를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워싱턴은 주(州)의 특권과 자주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공화파의 실질적인 리더, 제퍼슨을 국무장관으로, 연방의 실질적인 권한 부여와 중앙정부로서의 능률성을 강조하는 연방파의 대표격인 헤밀톤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는데, 이들의 이견을 조정하여 신생국가의 방향을 잡는 것이 대통령의 주된 임무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두가지 상반된 주장은 당시 상황에서 예상할 수 있는 쟁점이었으며,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이들이 현재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대 정당으로 발전했다.
제퍼슨은 일찍 자리잡은 농장주이자 명문가 출신인데 비해, 헤밀톤은 사생아 출신이지만, 명석한 머리와 뛰어난 언변으로 중앙 정계에서 인정받은 대조적인 경력의 소유자였다. 워싱턴이 연임(8년) 동안 신생국의 초석을 다지고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고향 마운트 버논 농장으로 명예롭게 은퇴하자, 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가 제2대 대통령으로, 차점자인 제퍼슨이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연방파였던 애덤스는 워싱턴에 비해 카리스마가 약해 제퍼슨을 비롯한 공화파 등으로부터 많은 공세에 시달렸는데, 결국 연임하지 못하고 3대 제퍼슨 대통령까지의 과도기적인 대통령으로 만족해야했다.

제퍼슨 대통령과 그를  당선시킨 헤밀톤의 죽음

이제야 비로소 공화파에게 집권 기회였던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인품과 명성이 높은 제퍼슨에게 의외의 강적 아론 버(Aaron Bur)가 선거인단 투표에서 동수의 표를 얻었다. 헌법은 이런 경우, 하원에서 결선투표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랜 정적이었던 헤밀톤의 도움으로 제퍼슨이 당선 되었다.
비록, 정치이념이 다른 숙적(宿敵)이었지만, 헤밀톤은 국가를 위해 결정적인 순간에는 냉철하고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몇 년 후, 아론 버가 헤밀톤에게 결투를 신청하는데, 명예를 위해 결투를 받아들인 헤밀톤은 버의 권총에 맞아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다. 그는 그렇게 갔지만, 그가 살아 생전 재무장관 등 건국을 위해 활약했던 점을 인정받아, 10달러의 주인공이 되는 영예를 안았다. 1달러 지폐에 올라 있는 워싱턴과 2달러 지폐의 얼굴, 제퍼슨과 더불어 건국 초기의 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존경받던 인물, 프랭클린은 너무 연로하여 대통령이 되지 못 했으나, 명예의 전당이라 할 100달러 지폐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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