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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잠실세무서에 어서 오세요
[탐방]잠실세무서에 어서 오세요
  • 고승주 기자
  • 승인 2014.12.23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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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벽 너머 세련된 데스크 라인, 세무서 맞아?

20년 전만 해도 그랬다. 침침한 고동색깔의 회벽, 퀘퀘한 냄새, 삐걱거리는 낡은 나무 탁자,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자기 차례까지 1시간, 자기 차례가 되면 공무원의 ‘뭐하러 오셨어요’란 딱딱한 질문. 어린 시절 기자가 기억하는 세무서란 그런 곳 이었다. 지난 12일 기자가 찾아간 잠실세무서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밝은 화이트 톤의 벽과 은행 대기실과 같은 깔끔한 내부 배치, 방문객과 민원실 공무원이 나누는 조곤조곤한 대화 속에서는 예기치 않은 웃음도 피어오른다. 벽 한 쪽에는 고아한 민속품까지. 사람들과 정이 숨쉬는 잠실세무서를 엿보았다.  /편집자 주
 

 

휴게실은 아늑한 형광+주광 톤 커피숍 분위기 물씬

“여기 은행 업무도 받나요?” 지난 8월 25일 잠실세무서 민원봉사실의 문을 열렸다. 민원실이 없어 바로 옆에 위치한 송파세무서와 더부살이 신세였지만, 1층에 있는 까페가 정리되면서 잠실서 만의 터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송파서 민원실을 기억하던 잠실서 방문객(?)들은 의아한 눈치로 잠실서 민원실을 본다고 한다. 까페도 아닌데 하회탈 등 민속품을 세무서에서 볼 줄은 몰랐다는 눈치다. 방문객마다 ‘특이하다’, ‘신기하다’란 말이 툭툭 튀어 나온다고 한다.

출입구 주변이 유리벽으로 시야가 탁 틔여서 그럴까. 밝은 조명과 여기저기 배치돼 있는 푸른색 화초들 덕분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불편하지 않다. 세무서가 아니라 은행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국세청은 요즘 국민에 다가서려고 한껏 노력하고 있다. 한 발, 한 발 국민에 다가서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벽 한 켠 임환수 현 국세청장의 취임사 일절인 ‘균공애민(고른 세금으로 국민을 사랑한다)’은 달라진 국세청의 태도를 보여준다.

잠실세무서는 달라진 국세청의 최선두에 있는 세무서 중 한 곳이다. 솔직히 평가하자면, 운이 좋았다. 좋은 사람들이 만났기에 가능했다. 임채수 서장과 140명의 직원들이 그들이다.

잘 봐둬, 아빠, 신발 끈 묶는다
 
잠실세무서에서 최근 열었던 체육대회의 이야기는 듣는 이가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도 참석이 가능한 행사였는데, 휴일을 틈타 열리는 탓도 있겠지만, 보통 직장행사란 것은 가족은 커녕 본인조차 가기 싫은 경우가 상당수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잠실세무서 체육대회에선 가족을 포함한 200여명이나 되는 인파가 모였다. 어쩔 수 없어 못 나온 인원들이 수 십여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놀랄 일이었다. 어린 자녀들을 대동한 국세인 가족이 수십여. 아이들이 너도나도 할 것없이 경기에 참여하려고 하다보니 부모로서 자존심을 건 진짜 체육대회가 됐다. 행사를 기획했던 운영지원과 직원들은 물론 임채수 서장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들이 체육행사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좋아서 나온 거란 것이다. 1년마다 과를 바꾸고, 2년마다 세무서를 바꾸는 떠돌이 인생이 국세공무원의 삶이다. 서로 고충을 잘 알아도 자기 가족을 상사나 부하에게 보인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서로 마음을 터놓게 된 연유는 뭘까. 임 서장의 예가 대표적일 듯 하다. 임 서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신사’로 불린다. 어떤 상황이든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예의 바르게 보이는 사람이어도 뒷말을 듣는 타입이 있다. 이런 타입은 평소 예의를 차리지만, 조금만 감정이 곤두서면 막 대하는 그런 유형이다. 하지만 임 서장은 항상 업무관계로 만났다고 해도 사람으로서의 예가 먼저라고 강조한다.

잠실세무서 직원들도 임 서장과 서로 맞았나 보다. 서로 등 돌리기보다 대화로 푸는 일이 많아졌고, 직장동료를 떠나 인생선배이자 후배로 말을 나누는 일도 많아졌다.

체육대회에 앞서 임 서장은 아이들이 올 것을 대비해 자신의 딸이 어린 시절 풍선을 좋아했던 것을 기억하고 풍선을 마련했고, 예상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몰려 풍선은 동이 나고 말았다. 깜짝 행사로 세무서 직원 자녀들이 작은 합창을 선물하기도 했다. 서로 마음을 쓴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그러다 보니 민원인들을 대하는 태도도 하나라도 더 도와주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고 한다. “서로 돕기 위해 걷는 것이 세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릴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좋게 행동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휴식의 값어치는 일하는 사람만 안다 -헤겔-

“민원인이 욕해도 참아야지. 국세공무원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내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것들이 일 제대로 처리 못 해!”

국세공무원의 하루는 바쁘다. 칼퇴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저녁이라도 가족이랑 먹었으면 하지만, 그게 쉬울 리 있으랴.

국세공무원이라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세무서도 직장의 한 형태다. 하지만 항상 민원인들의 욕설에 시달린다. 성난 민원인이 젊은 여직원이라도 만나면, 한바탕 욕설이 풀리는 건 한 순간이다. 젊은 남자 직원도 한 번 붙으면 그날 일정, 꼬이는 건 한 순간.

분명히 같은 내용의 말인데 나이든 남자 직원이 말하면 민원인은 순식간에 웃는 낯으로 수긍하는 것을 보면 속 썩는 기분이 든다.

상한 속을 친구나 배우자에게 털어놨더니 “공무원이면 당연한 거 아냐”란 말이 여지없이 떨어진다. 그저 힘들어서 하는 말인데도 공무원이란 꼬리패에 사정없이 타박이 들어온다. 잠실서 직원들은 이럴 때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그 때가 낙옆이 다 떨어질 때쯤이었나 보다. 부가세 신고 등 각종 신고로 세무서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쌓일 때로 쌓일 그런 때였다. 당시 옆집(?) 송파세무서엔 직원 휴게실이 있다는 데 잠실세무서엔 그런 게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곰팡내 나는 서류가 켠켠히 쌓여 있는 시커먼 옥상 창고 정도.

그 때 임 서장도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직원들, 큰 맘 먹고 휴게실 좀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임 서장은 요즘 말로 쿨(?)하게 “당장 하지”라고 답했다. 맘 놓고 쉬거나 대화할 곳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결정이 내려지고 기획단계를 거쳐 단 3주 만에 어두컴컴한 창고가 깔끔한 직원휴게실로 문을 열게 됐다.
 

 

탁구장, 커피룸, 미니 세미나 룸으로 이뤄진 잠실서 휴게실은 송파서에 비교하면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커피룸의 집기와 벽 조명 일부는 1층 까페가 문을 닫을 때 주인의 허가를 받아 챙겼고, 빈티지 백 등 나머지는 모두 직원들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특히 인기 있는 것이 둥근 고무공 같은 짐 볼. 여기에 앉으면 균형을 잡기 위해 뒤뚱거리게 되는 데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척추를 바로 세워준다고 한다. 일부 직원들은 짐 볼 때문에 일부러 찾는다고 하고, 서로 얼굴을 모르더라고 해도 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직원단합과 건강의 일석이조라고나 할까.

다소 걱정이 됐던 것은 연상의 선배 공무원들. 그들도 처음엔 어디 구경이나 할까하고 찾아왔다가 이젠 휴게실 매니아가 됐다고 한다. 이곳 커피는 무료가 아니라 잔 당 1000원인데 “오늘 내가 커피 쏘지”하고 직원들과 함께 오는 반장님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고.

커피룸의 조명은 형광과 주광등을 함께 배치해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안쪽 미니 세미나 룸은 말 그대로 직원들이 둥글게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점심때 배달음식을 시켜 함께 먹거나 말 그대로 직원 세미나가 간단히 이뤄지기도 한다. 사무실은 아무래도 업무공간이어서 수직적인 대화가 오갈 수 밖에 없지만 여기선 열린 대화가 기본매너다.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공무원이니까요. 하지만 공무원은 욕먹고 손가락질 받으려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납세자들을 돕기 위해 일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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