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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로펌들 M&A시장 독식…‘위기의 한국로펌’
외국로펌들 M&A시장 독식…‘위기의 한국로펌’
  • 정영철 기자
  • 승인 2015.10.09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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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우려 현실로…올해 큰 건 20곳 중 14곳 싹쓸이
법률수지적자 4년간 4조…국내 로펌 60곳 문 닫아
형사사건 성공보수폐지·변호사 포화·해외공세 3중고

국내 로펌들의 체질이 무척 허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법률시장이 아직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외국계 로펌들이 상륙해 서울사무소를 차려 자문영업을 시작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대형 M&A 20개 중 14곳이 외국계 로펌에 의해 M&A가 성사 됐다. 굵직한 인수합병(M&A)은 외국로펌이 싹쓸이 하고 있다. 국내 로펌들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 9월말까지 적자생존을 견뎌내지 못하고 문을 닫은 로펌이 60여 곳에 이른다. 특히 2016년 7월, 3차 개방이 시작되면 합작법인 설립이 가능해 진다. 허약체질의 국내 로펌이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국내로펌시장이 큰 위기다. 대처방안은 없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1~9월 중 국내 인수합병(M&A)기업은 945건(858억 달러)에 이른다. 이중 법률자문은 거래총액 기준 상위 20개 로펌 가운데 14곳이 외국계다. 상위 10위 안에도 허버트 스미스(4위), 왁텔 립턴(6위), 웡파트너십·길버트토빈(공동 7위) 등 외국계 로펌 6곳이 진입했다. 지난해에는 상위 10개 중 외국계가 5곳이었다. 이는 국내 M&A 법률자문시장이 해외 로펌에 빠르게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국내 최대 사모주식펀드(PEF) MBK파트너스에 7조6000여억원에 팔렸다. 국내기업 매각 사상 최대의 빅딜이었다. 매수인 측 협상 주역은 미국 로펌 클리어리 고틀리브와 국내 로펌 율촌이, 매도하는 테스코 측은 영국 로펌 프레시필즈와 국내 로펌 태평양이 공동 법률자문을 맡았다. 이에 대해 국내 M&A 전문 변호사는 “공동자문이 외견상 대등한 관계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해외 로펌들은 자문 수수료를 국내 로펌보다 다섯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시장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2∼2014년 미국에서 진행된 애플과의 특허소송에서 삼성전자는 현지 로펌인 퀸 이매뉴얼을 선임했다. 국내 로펌은 한 곳도 끼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한국 법률시장의 핵심 엔진 역할을 해온 국내 로펌 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1·2위 로펌인 베이커 앤드 매킨지, DLA파이퍼를 포함해 초대형 외국계 로펌 26개가 상륙해 활동 중인 가운데 법률시장 3차 개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내년에는 유럽연합(EU) 로펌, 2017년엔 미국 로펌의 합작법인 설립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합작법인이 출범하면 해외 로펌들이 국내 법률 관련 사건까지 맡을 수 있게 된다.

외국계 로펌들의 상륙작전이 시작되면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법률서비스 무역수지 적자가 매년 늘고 있다. 2011년 이후 최근까지 4년여 동안 누적적자는 27억8390만 달러(약 3조2850억원). 올해 상반기만 3억1090만 달러(약 3668억원)를 기록했다. 여기에 국내 법률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대기업 사내변호사들이 크게 늘고 있는 데다 대법원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폐지’ 판결까지 겹치면서 로펌들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신희택 서울대 로스쿨법학연구소장은 “국내 로펌이 국제중재·금융 등 국제거래 전반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체계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외국 로펌, 기업공개 시장도 잠식

 실제로 국내 대형 로펌 국제중재 팀장이었던 A변호사는 최근 동료 변호사 3, 4명과 함께 로펌을 나왔다. 기업 인수합병(M&A) 및 국제중재 전담 ‘부티크펌(소형 전문 로펌)’을 차린 것이다. 그는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A변호사처럼 중견 변호사들이 전문 분야별로 함께 로펌에서 나와 부티크펌을 만드는 현상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내년부터 법률시장이 3차 개방될 때를 대비한 포석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해외 로펌과의 합작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란 얘기다.

또 다른 대형 로펌에서 형사사건을 주로 담당해온 김모 변호사는 요즘 줄어드는 매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파트너 변호사로서 몇 년째 사건 수임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지난 7월 말 대법원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폐지’ 판결로 설상가상이 됐기 때문이다. 상황은 다른 로펌들도 다르지 않다. B변호사는 “계속된 불경기 속에 기업 컨설팅 등 사건 의뢰 건수 자체가 준 데다 수임료 단가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며 “과거엔 맡지 않던 1000만~2000만원대 사건까지 수임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형 로펌 몇 곳을 빼고는 대부분의 로펌이 2∼3년 전부터 파트너 변호사들의 연봉을 20~30%씩 삭감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형 로펌도 3차 개방에 위기감

내년 7월 법률시장 3차 개방을 앞두고 대형 로펌들이 떨고 있다. 변호사 2만 명 시대가 열리면서 시장이 포화된 데다 외국계 대형 로펌까지 공세를 강화하면서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올 9월말까지 적자누적으로 인해 문을 닫은 로펌이 60개에 이른다. 지난해 중소형 로펌 30개가 공중 분해된 데 이어 올 들어선 8월 말까지 30여 개가 폐업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폐업 로펌 대부분은 한 해 사무실 유지비 4억∼5억원을 감당 못한 변호사 10명 미만의 중소형 로펌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형 로펌들은 안전지대인가? 유력 일간지의 설문조사에서 ‘외국계 로펌 진입에 따른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국내 10대 로펌 대표변호사 10명 중 5명이 ‘국내 대기업의 해외 M&A 자문 분야’라고 답했다. 나머지 5명은 기업공개(IPO), 지적재산권 등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꼽았다.

현재 한국 법률 시장에는 외국계 로펌 26곳(미국계 21개, 영국계 5개)이 지역사무소 등을 내고 활동 중이다. 이 중 20곳이 세계 랭킹 100위권 내 대형 로펌들이다. 국내 대형 로펌의 규모는 외국계 대형 로펌과 비교할 때 ‘다윗과 골리앗’과 같다. 국내 상위 15개 로펌의 매출액 합계가 2조원 가량으로 세계 1위 로펌 베이커 앤드 매킨지의 한 해 매출(2014년 2조7635억원)보다 적다.

이러한 초대형 외국계 로펌들이 M&A와 해외투자, 금융 등 분야에서 급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지난 9월 초 완료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국내 대기업 계열사 간 기업결합이었지만 삼성물산은 김앤장과 함께 영국계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에 법률자문을 맡겼다. 합병 계획을 발표한 직후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반대 소송에 이어 주총 대결까지 벌이면서 미국 내 기업 M&A 전문 로펌인 왁텔 립턴에 거액의 수임료를 주고 별도로 방어전략을 자문했다. 외국 로펌과 국내 로펌이 공동으로 M&A 자문을 할 경우 기업 실사 등 국내 로펌의 업무량이 훨씬 많은데도 수임료는 외국계 로펌들이 자국 기준을 적용해 5∼10배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외국계 로펌의 서울 사무소가 국내 대기업 공략을 위한 ‘전초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10조원대 대형 M&A의 경우 법률 자문료가 100억원대에 이른다”며 “한 건만 따내도 10년 동안 사무소 운영비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헤지펀드의 적대적 M&A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이 늘고 있는 것도 외국계 로펌으로선 블루오션이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5조원대 ISD 소송의 경우 론스타 측에선 미국계 시들리 오스틴과 법무법인 세종이, 한국 정부 측에선 아널드 앤드 포터와 태평양이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IPO나 지적재산권 분야도 상황은 비슷하다. 삼성SDS는 지난해 기업공개를 앞두고 클리어리 고틀리브·폴헤이스팅스 등 외국계 로펌에 법률자문을 맡겼다. 폴헤이스팅스는 코오롱과 듀폰의 1조원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코오롱 측 대리인을 맡기도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아시아 지역(일본 제외) IPO 자문 상위 로펌 20위 내에 국내 로펌은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외국 대형로펌에 비해 국내로펌은 왜소하기 그지없다.

한성수 국제변호사(세무법인 가덕 국제부 대표)는 “세계경제가 다변화되어 있는 탓에 국가 간 분쟁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내 로펌업계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문분야에 대한 국제거래 법률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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