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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10만원도 상고…승복 없는 '끝장 소송'
벌금 10만원도 상고…승복 없는 '끝장 소송'
  • 日刊 NTN
  • 승인 2015.11.2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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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태료 낼 돈 없어서…교도소 늦게 가려고…'
연간 4만건 대법원 문 두드려도 파기율은 10% 미만

대법원의 사건 적체가 심각하다.

재판에 관여하는 대법관 12명을 전속 재판연구관 3명씩, 분야별 공동 재판연구관 70명이 돕는다. 이들이 주말 없이 일하는 데도 들어온 지 2년 넘은 미제사건이 작년 기준 672건이다. 10년 동안 3.5배 늘었다.

법원조직법이 대법원 재판의 원칙으로 삼은 전원합의체가 오히려 예외적 이벤트처럼 열린다. 대법관 4명씩 구성된 소부로 사건을 나눠야 그나마 밀려드는 사건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법원이 처리한 3만8141건 중 전원합의체 판결은 단 14건이었다.

◇ 무전취식 벌금 사건까지 대법원으로
올해 9월 퇴임한 민일영 전 대법관은 재임 6년 동안 안경을 10번 넘게 바꿨다고 털어놨다. 눈이 계속 나빠졌기 때문이다. 몸무게도 8㎏ 줄었다고 한다. 그는 "30대 넘어가면 눈이 더 이상 안 나빠진다는데 거짓말"이라며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에는 지난해 3만7652건의 사건이 접수됐다. 대법관 1명당 3178건을 처리했다. 하루 평균 8.7건의 판결을 내린 셈이다. 올해는 상고심 사건이 4만2천건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헌법에 규정된 최고법원이라고 해서 복잡한 법리가 필요하거나 큰돈이 오가는 사건만 다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

A씨는 호프집에서 해물떡볶이 한 접시와 맥주 2천cc를 먹고 3만2천원을 안 낸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일명 무전취식, 정식 죄명은 경범죄처벌법 위반. 1심에서 벌금 10만원을 선고받고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기각되자 또 상고했다.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하나다. 결론은 상고기각. 이 사건도 전속 재판연구관의 검토를 거쳐 대법관이 처리했다. 지난해 대법원에 접수된 형사사건 2만773건 중 5천283건은 이렇게 벌금형 약식명령이나 즉결재판에 불복해 청구한 정식재판에서 시작됐다.

민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대법원의 민사 본안사건 1만3016건 가운데 항소심 판결에 불복한 금액이 1천만원 이하인 경우가 3565건, 1천만∼2천만원이 1376건이었다. 2천만원 이하 '소액'을 다투는 사건이 전체의 38.0%다.

기대와 달리 상고심에서 판결이 바뀌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항소심 판결이 깨진 민사사건은 전체의 7.6%, 형사사건 파기율은 2.8%에 불과했다.

형사사건 피고인은 그나마 선고절차도 없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은 피할 수 있다. 지난해 형사를 제외한 민사·가사·행정·특허 사건의 56.8%는 상고이유가 없다며 심리를 하지 않은 채 기각하는 심리불속행으로 끝났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의 3분의1 이상은 최소 한쪽이 불복해 대법원까지 간다. 지난해 고등법원이 내린 민사사건 항소심 판결의 상고율은 44.7%, 지방법원 사건은 34.4%였다. 형사는 지방법원 사건이 33.5%, 고등법원은 38.0%가 대법원으로 최종 결론이 미뤄졌다.

◇ 사건 늦추려 '묻지마' 상고
"삼세판 하시지요, 삼세판."
판사 출신인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올해 7월 상고법원 공청회에서 대법원 고위 관계자와 논쟁을 벌이다가 토론을 더하자며 이렇게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에 사건이 몰리는 이유로 삼세판에 친숙하고 쉽게 승복하지 못하는 국민정서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유는 좀 더 복잡하다. 1990년 상고허가제 폐지 이후 거의 무제한적으로 상고를 허용하는 재판제도, 1심부터 사건이 폭주하는 탓에 부실할 수밖에 없는 사실심, 그에 대한 당사자의 불신 등이 얽혀 있다.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최대한 활용하는 당사자들도 있다.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목적이 우선인 경우다.

A씨는 일반음식점으로 허가받고도 여자 종업원을 고용해 주점 영업을 하다가 적발됐다. 1개월 영업정지 예고처분에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벌금 5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정식재판을 청구한 A씨는 1심에서 선고유예를 받았다. 그런데 또 항소·상고해 대법원까지 갔다. 영업정지 집행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패소할 걸 알면서 돈이 없으니 시간을 더 달라거나 상고이유서에 상대방 험담만 가득 적는 당사자도 있다. 이런 경우가 남소(濫訴)이자 남상고"라고 말했다.

과태료 사건을 전담한 적이 있는 한 판사는 "행정기관이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등 이유가 인정되는 사례는 1% 정도다. 1심에서 할 얘기는 거의 하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우니 깎아달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형사사건은 미결 구금일수를 최대한 늘리려고 상소를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형이 확정되면 교도소에 수감되는데 미결 때 구치소 생활과 처우가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같은 기간 갇히는데 노역 의무에 방장 눈치까지 봐야하는 교도소 생활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생각이다.

지난해 전국 1심 법원에 기소된 구속 피고인은 전체의 10.6%였다. 상고심에서는 이 비율이 44.6%까지 올랐다. 불구속 피고인에 비해 대법원까지 가는 비율이 7배 정도 높다. 징역 10년 미만이 선고된 사건은 형량을 줄여달라는 이유로는 상고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데도 그렇다.

상고법원을 설치하든 대법관을 대폭 늘리든 근본적으로는 1심에서 당사자가 승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데 법조계 의견이 일치한다. 상고제도 개편을 하급심 강화와 떼놓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견 로펌의 한 변호사는 "어떤 이유로 상소하건 법에 3심까지 가능하게 돼 있다면 보장해야 한다. 당사자들에게 부족함 없이 충실한 심리를 할 수 있도록 1심의 물적, 인적 인프라가 바뀌어야 쓸데없는 상소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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