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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의 화력…아날로그 '시대 역주행'해 세대교감
'응팔'의 화력…아날로그 '시대 역주행'해 세대교감
  • 日刊 NTN
  • 승인 2016.01.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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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된 정서 담은 탄탄한 스토리에 옛 명곡 흡입력도 '업'
늘 머뭇거리던 정환(류준열 분)이 처음으로 덕선(혜리)에게 용기 내 달려간 곳은 이승환의 콘서트장이었다. 덕선이 소개팅 남에게 차여 홀로 콘서트를 보러 간 사실을 깨달은 정환은 급히 차를 몰았지만 먼저 온 사람은 최택(박보검)이었다.

쓸쓸하게 발길을 돌리며 정환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첫사랑은 늘 그 거지 같은 타이밍에 발목 잡혔다"고. 그러나 택이가 대국을 포기했다는 사실에 다시 깨닫는다. "나빴던 건 신호등이 아니라 타이밍이 아니라 내 수많은 망설임들이었다"는 걸.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서는 정환이 첫사랑과 '굿바이'하는 여러 장면에 이승환의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와 '텅빈 마음'이 흘러나왔다. 장면과 노랫말의 궁합은 절묘했다.
 
이승환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자신의 대표곡들이 잇달아 등장하자 최근 제작진에 '고마워요 응팔!'이란 현수막을 내건 밥차를 선물했다. "제작진께 꽁기꽁기한 저의 고마움을 전한다"며.
 
지난 16일 시청률 19.6%를 기록하며 종영한 '응팔'은 이처럼 '쌍팔년도' 언저리를 주름잡은 가수들을 행복하게 했다.

시청률 정주행을 한 '응팔' 덕에 약 30년 전 노래는 생명력을 얻어 시대를 '역주행'했고 가요계 지형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원곡을 리메이크한 '응팔'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곡들은 젊은층에 호응을 얻으며 음원 차트를 잠식했고 복고 바람으로 이어졌다. 기성세대는 오랜만에 청춘을 끄집어내는 '들을' 음악이 생겼고, 신세대는 옛 정서의 새로움에 취했다. 덕분에 부모와 자식이 교감하는 세대를 관통한 음악들이 생겨났다.

◇ 응팔 OST, 차트 장기집권…스토리와 명곡의 절묘한 궁합
지난 시리즈 때처럼 '응팔' OST의 화력이 셀 거란 건 예상됐다. 지금껏 '응답하라' 시리즈는 음악을 시대감을 높이는 하나의 축으로 타임슬립 효과를 끌어올렸다.

이번엔 1980년대 음악이 소환됐다. 옛 가수의 명곡을 지금의 가수가 리메이크해 총 11곡의 OST 곡을 발표했는데 지난해 연말부터 올초까지 줄곧 음원차트를 장악했다.

김필의 '청춘'(원곡 산울림), 이적의 '걱정말아요 그대'(전인권), 오혁의 '소녀'(이문세), 박보람의 '혜화동(혹은 쌍문동)'(동물원), 노을의 '함께'(박광현·김건모), 멜로디데이 여은의 '이젠 잊기로 해요'(김완선) 등은 차트 상위권에 올라 장기집권했다. 새로운 장르와 세련된 사운드를 섞는 편곡이 아니라 원곡의 감성을 최대한 살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걱정말아요 그대'는 20회 엔딩까지 테마곡처럼 흘러나왔다. 특히 고졸 출신 은행 과장인 아빠 성동일이 아내와 자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등 쌍문동 가족의 지친 삶을 위로하는 배경음악이 됐다.

성동일이 "임자, 나 오늘 명예퇴직 당했네, 미안하네"라고, 폐경으로 잠 못 이룬 라미란이 남편의 걱정에 "아니, 안 괜찮아"라고 말할 땐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란 '청춘'이 흘러 감정이입을 배가시켰다.

포츈엔터테인먼트 이진영 대표는 "드라마 전개와 삽입곡 가사의 스토리텔링이 세밀하게 보조를 맞췄다"며 "절묘한 선곡으로 드라마의 인기가 음악으로 이어졌다.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원곡의 멜로디와 가사의 진정성을 재확인했다"고 평했다.

뿐만 아니라 '응팔'은 마치 한편의 뮤직 드라마처럼 당시 가수들의 원곡을 대거 삽입해 아날로그 감성으로 물들였다.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와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를 비롯해 조용필, 들국화, 어떤날, 이문세, 이선희, 송골매, 조덕배, 조정현 그리고 고인이 된 유재하, 김광석, 신해철 등 이름을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가수의 노래가 등장했다. 선우(고경표)와 보라(류혜영)가 재회해 키스를 나눌 땐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이, 덕선과 최택이 중국 호텔에서 키스할 땐 변진섭의 '그대 내게 다시'가 깔렸다.

1980년대는 민주화 바람과 맞물려 이전 권위주의 정권과의 충돌과 규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 TV스타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공존했는데 제작진은 이들 가수를 고루 짚었다.

20여 년간 수많은 히트곡을 낸 작곡가 박근태는 "음악 드라마가 아닌데도 음악이 굉장히 많이 삽입됐지만 결코 과하지 않았다"며 "장면마다 그 시절 정서를 잘 재현한데다 음악의 매치까지 연출적인 측면의 디테일이 강했다. 과거 원곡과 리메이크곡의 쓰임새를 달리하며 감정선을 살려 음악이 갑자기 튀어나와도 이질감 없이 몰입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또 스토리 전개 곳곳에는 당대 가수와 음악 관련 소품이 적재적소에 쓰였다.

극 중 라디오에선 이문세가 DJ이던 '별이 빛나는 밤에'가 흘렀고 TV 속 '가요 톱 10'에선 당시 여고생 가수 이지연이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를,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은 이상은이 '담다디'를 부르는 모습이 등장했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고(故) 신해철의 무한궤도가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는 장면도 뭉클했다.

수학여행 갈 때는 팝송을 '콩글리시'로 합창했고, 쌍문동 독수리 5형제는 홍콩 영화 '영웅본색' 주제가를 가사가 들리는 데로 따라불렀다.
소품도 깨알 같았다. 이문세 콘서트 티켓과 포스터, 변진섭 카세트테이프, 대학가요제 LP, 마이마이 카세트 등이 등장했다.

◇ 음원 세대도 응답한 아날로그 음악…가요계 "스토리의 힘" 교훈
'응팔'은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모두 공감하는 가족, 이웃사촌, 친구란 시대보편적인 키워드를 끌어내 세대 공감을 이뤘다. 가족 해체로 1인 가구가 늘어나며 라이프 스타일까지 변모된 시대에 '응팔'이 제시한 건 가족, 이웃, 친구 등 결핍된 관계의 소중함이었다.

직장인 조창균(44) 씨는 "딸을 둬선지 마지막 회 아빠 성동일이 시집가는 딸 보라에게 쓴 편지에 뜨거운 부성애가 느껴져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도 "옛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성인 덕선 역을 맡은 이미연의 대사처럼 "그 시절로 돌아가 젊고 태산 같았던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 등의 글이 이어졌다.

'응팔'에 삽입된 30년 전 음악도 우리를 웃고 울게 한 '응팔'의 스토리텔링 덕에 세대를 관통하며 흡입력을 가졌다. 한동안 차트 100위권 음악에 소외됐던 기성세대는 '그때 그 시절' 음악에 다시 취했고, 가사보다 비트에 익숙한 신세대는 드라마의 시각적 효과와 함께 들린 옛 노랫말에 귀 기울였다. '응팔' OST를 듣고 원곡을 찾아 듣는 음악팬도 많았다.

음악사이트 멜론 감상평에는 "군대 가기 전에 '걱정말아요 그대' 듣고 갑니다", "헤어질 거라 생각 못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친구 사이도 뒤틀려 힘들었는데 '걱정말아요 그대'로 위로받았다"란 글들이 올라왔다.

쎄시봉 멤버인 이장희가 1974년 발표했다가 1989년 김완선이 리메이크해 널리 사랑받은 '이젠 잊기로 해요'는 여은이 '응팔' OST로 발표해 부모부터 자식 세대까지 교감하며 생명력을 이어갔다. 여은의 노래로 이 곡을 접한 신세대는 "처음 듣는 곡인데 중독된다", "가사가 너무 좋다"고 했다.

이처럼 웰메이드 드라마 한편은 아날로그 시절의 음악을 소환했고, 그 음악은 누군가를 젊은 날로 되돌리고 누군가의 감정을 어루만지며 여러 세대가 부르는 명곡이 됐다.

이진영 대표는 "LP, CD와 카세트테이프, 디지털 음원 세대를 아울러 응답한 드라마를 통해 아날로그 음악을 음원 세대와 함께 감상했다"며 "드라마에 매개로 쓰인 음악이 여러 세대를 이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응팔'이 불러온 복고 열풍에 가요계가 움직이기도 했다.
1988년 가요계를 이끈 전영록, 조정현, 이정석, 김완선, 최성수, 구창모 등은 지난달 '어게인 1988 토크 콘서트'란 타이틀로 합동 공연을 열었다. 이들 가수는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를 다시 불러 발표하기도 했다.

가요계에 던진 교훈도 있다.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는 "'응팔'을 따라 한 다른 콘텐츠가 반응을 얻지 못한 걸 보면 '응팔'은 단순히 추억팔이, 복고에 그치지 않았다"며 "공들여 탄탄하게 만든 스토리가 중요한 성공 요소란 걸 보여줬다. 그저 옛 음악을 꺼내온 것이 아니라 그 노래가 나온 배경과 장면, 그때의 패션과 소품까지 하나의 스토리로 이뤄져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제 마구잡이로 키워드를 던지는 콘텐츠는 답이 없다는, 새로운 길을 제시해줬다"고 의미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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