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17:33 (목)
[김종상의 세짜 이야기] 대통령 못지않게 이름을 남긴 미국의 국무장관 세 사람
[김종상의 세짜 이야기] 대통령 못지않게 이름을 남긴 미국의 국무장관 세 사람
  • 일간NTN
  • 승인 2016.02.29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세일회계법인 대표
   (전 부사지방국세청장)

▶국정의 실질적 2인자로서 대통령을 보좌·보완하는 국무장관
 미국이 세계 2차 세계대전 이후(1945년),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서방세계의 최강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 대통령의 위치가 막강해졌는데, 그를 보좌하며 대외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미국의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들이다.
 그는 미국 연방정부의 10여명(현재 15명)의 장관(Secretary) 중 한 사람으로 미국 내에서는 국무부(Department of State), 우리나라 외교부보다 더 큰 기능을 행사하는 큰 부처의 책임자이면서 대통령 다음으로 힘 있는 국무총리(부통령은 대통령 유고시에 대비) 역할을 하고 있다. 대외적인 외교 총책으로 미국과 전 세계를 아우르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방장관, 재무장관 등의 역할까지 한다.
 대통령의 경륜(經綸)이 짧거나 부통령에서 대통령을 승계한 경우에는 보좌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능력을 보완한다는 평가도 있는데,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로 2차 대전 직후 30여 년 동안 등장했던 다음 3명의 국무장관이 유명하다.

▶트루먼 대통령 시절, 마샬 플랜을 제창하고 추진한 마샬(Mashall) 국무장관(재임 1947-194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맥아더, 아이젠하워와 더불어 3인의 오성장군(원수)의 한사람이었던 조지 마샬(1880-1959)은, 맥아더와 동갑이면서 경쟁자로서 미국 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1945년 사망)을 계승한 트루먼 대통령 정부에서 국무장관(1947-1949년), 국방장관(1950-1951)을 지냈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하버드 대학 졸업식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란에 황폐해진 유럽의 부흥계획(후에 마샬 플랜으로 불림)을 제창하였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전후 소련의 팽창주의에 맞선 트루먼 독트린의 일환으로서 서유럽 16개국에 대한 120억불에 이르는 대대적인 대외경제협력계획이었으며 이를 통해 공산주의에 확장을 막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된다.
 전후 유럽 국가들의 사회 경제적 혼란을 벗어나 안정 기반을 확충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확립시켰다는 공적으로 마샬은 노벨평화상을 수상(1953년)하였다. 마샬은 당시 트루먼 대통령 못지않게 마샬 플랜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위대한 군사 및 행정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시 덜레스(Dulles) 국무장관(재임 1953-1959), 워싱턴 국제공항의 이름으로 남다.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5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한국전쟁의 종료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가 취임(재임 1953-1960)한 1953년에 한국으로서는 실망스런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당시 휴전 및 제반 국제 업무를 총괄한 사람이 덜레스(존 포스터 덜레스 1888-1959) 국무장관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호감형에 그 미소가 국민들에게 인기 포인트라고 했으니 당시 출중한 선배들 마샬, 특히 맥아더를 제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덜레스 국무장관(할아버지도 국무 장관 역임) 같은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참모들을 활용하여,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라디오의 뉴스에서 ‘덜레스 국무장관은…’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당시 세계 대소사를 잘 처리하면서 미국의 전후 활발한 경제부흥시대 세계 최강국의 입지를 다지고 죽는 날까지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 시기의 7년여를 국무장관직을 수행하였다.
미국의 관문인 국제공항이 재임 시인 1958년 개항하였는데, 1984년 아이젠하워가 아닌 그의 이름을 따서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명명되었으니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죽의 장막을 핑퐁외교로 풀어낸 닉슨 대통령 시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국무장관(1923~. 재임 1973-1977)
 키신저 국무장관은 모택동 치세의 중국(1949년 이후), 죽의 장막(소련은 철의 장막)이라고 부르던 대국과 핑퐁외교(1971년)로 시작된 점진적인 관계 개선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전 세계를 해빙무드의 데탕트(Detente)시대로 몰아간 국제정치의 달인이었다. 1969년 미국의 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베트남전쟁을 종식(1973년)시키고, 소련과의 전략 무기 제한협정(SALT)을 성사시키는 등 큰 활약을 하던 중 닉슨 대통령의 2기 임기 때 국무장관으로 취임하였다.
 닉슨 대통령이 재선 과정에서 불거진 도청사건으로 사임(1974,8)한 후에도 이를 승계한 포드 대통령의 국무장관으로 그 임기 말까지 두 대통령들의 역할을 보완하며 오히려 미국외교를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제사회에서 거목으로 활동(93세)하고 있다.
 그는 원래 유태인으로 하버드 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수로서 명성을 얻다가 닉슨 포드정부의 현업에서 8년간 일하면서 이론과 실무에서 두루 성공한 사례(德業一致라고 함)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그 후 노벨평화상을 수상(1973년)함으로써 그 명예와 유명세를 더하였다.

▶우리나라도 책임 있는 국정의 2인자가 있었으면!
 우리나라도 독립(1945년) 이후, 잠깐(1960-1961)을 제외하고는 대통령제를 유지해 왔다. 의례적인 부통령제가 잠깐(1945-1960) 있었을 뿐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표적인 대통령제도하에서 여러 가지 장단점을 체험하였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무총리가 있지만, 그 권한이나 활용 면에서 미국의 국무장관 같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장래, 제도(헌법)를 개정(예, 이원 집정제 등)하거나 현행 체제하에서도 어떤 분야(경제 및 복지 등)에 관한 책임총리제를 운영하는 것은 요즘 같은 북핵 안보위기시에 더욱 요망되는 것이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6(서교동), 국세신문사
  • 대표전화 : 02-323-4145~9
  • 팩스 : 02-323-74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예름
  • 법인명 : (주)국세신문사
  • 제호 : 日刊 NTN(일간NTN)
  • 등록번호 : 서울 아 01606
  • 등록일 : 2011-05-03
  • 발행일 : 2006-01-20
  • 발행인 : 이한구
  • 편집인 : 이한구
  • 日刊 NTN(일간NTN)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日刊 NTN(일간NTN)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tn@intn.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