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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칼럼]포연 속에 꽃 피운 인간애
[국세칼럼]포연 속에 꽃 피운 인간애
  • 일간NTN
  • 승인 2016.04.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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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미국. 링컨의 노예 해방에 반기를 든 남부 11개 주는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새로이 옹립하고 북부 22개주를 상대로 공격을 개시한다. 남북전쟁이 터진 것이다.
초기에는 노련한 장군들이 이끄는 남군이 우세하다가 흑인들이 계속 북군에 가세하고 북부의 우세한 경제력 앞에 남군은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전쟁은 4년을 끌며 북군은 200만명중 36만명이 전사하고, 남군은 65만명중 26만명이 전사한다. 무려 60만명의 무고한 병사들이 전쟁의 광기에 희생되었다.

 남북전쟁 종반. 북군에 쫓긴 남군은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폭우로 불어난 강을 만난다. 퇴로가 막힌 거다. 이제 북군이 밀어붙이기만 하면 전멸할 상황. 백악관에서는 남군을 공격하라는 전문이 계속 날아든다. 그러나 북군 지휘관은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북군은 진을 치고 병력을 정비할 뿐이다. 날이 갈수록 강물은 줄어들고 남군은 강을 건너 남쪽으로 무사히 퇴각한다. 북군 지휘관은 어차피 패주하는 남군을 몰살하여 자신의 전과를 화려하게 만드는 대신 인간애를 발휘한 것이다.
 당시 남군측 총사령관은 로버트 에드워드 리 장군이었다. 전세는 날로 기울어 남군의 소생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1865년 4월 8일 리 장군 역시 군인으로서는 매우 힘든 결단을 내린다.

군인은 장렬히 싸워야 이름이 남는다. 항복은 치욕이다. 그러나 남군 장병들의 무고한 희생을 막고자 리 장군은 전투를 중단하고 항복을 결심한다. 전장(戰場)에서 연락 장교단을 꾸려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 장군에게 보낸다.
 1865년 4월 9일 정오. 늙고 지친 리 장군은 병영에서 정장을 화려하게 차려 입고 항복 장소로 떠났다. 4년간의 살육전으로 적개심이 넘실대는 전장에서 패장 리 장군은 총살형을 대비하여 군인다운 최후의 예복을 차려 입은 거였다.
 항복장소에 북군 총사령관이 나타났다. 그랜트 장군이었다. 승장(勝將) 그랜트는 흙 묻은 군화에 빛 바랜 낡은 야전 군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승자와 패자의 서로 다른 모습이었다.

 항장(降將)은 자신의 지휘도(軍刀)를 적장에게 바쳐야 한다. 리 장군이 군도를 풀어 그랜트 장군에게 건네자 그랜트 장군은 손을 내저으며 그대로 차도록 배려한다. 그랜트는 리에게 군인으로서 존경한다는 대화까지 나누었다. 정중한 분위기 속에 항복 문서에 서명이 이루어졌다.
 남군이 떠나려 하자 북군 군악대는 승전의 팡파레를 울렸다. 이 때 그랜트 장군은 황급히 연주를 중지시켰다. 남군 지휘관들에게 모욕감을 안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승자의 배려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남군 병사들에게서 총도 말도 빼앗지 않은 채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종전이 되고 북군은 남군을 아무도 처형시키지 않았다. 남군 포로수용소장 한 사람 빼고는. 이런 것이 정치다. 관용과 화합이다. 그로부터 4년 뒤 그랜트 장군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50달러짜리 지폐에 나오는 초상화가 바로 그다.
 미합중국이 괜히 강성대국이 된 것이 아니다. 훌륭한 리더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자란 리더십이다. 리더십의 핵심은 경쟁, 권모술수, 세 부풀리기가 아니다. 포용, 화해, 인간애이다.

 우리도 대규모 내전을 겪었다. 결국 나라는 두 동강 났다. 그 후 동족간 분단은 갈수록 공고해지고 증오심은 갈수록 진해진다. 자칫 화합하자고 했다간 사쿠라 아니면 빨갱이로 몰린다. 그랜트 장군이 설 땅이 없다. 불과 며칠 전까지 여의도에서는 공천 싸움으로 붕당 정쟁을 벌였다. 시민들이 부끄러워 외면할 지경이었다.
 붕당은 뿌리가 깊다. 조선도 붕당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왜군에게 철저히 유린당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명가도(征明假道)’, 즉 명을 정벌하는데 조선의 길을 빌린다는 핑계로 조선 침략을 준비하던 1590년, 조선 통신사로 일본을 살피고 온 서인 정사 황윤길이 왜군이 쳐들어 올 것이라 선조에게 고하자 동인 부사 김성일은 황윤길이 괜히 혹세무민한다고 왕에게 반소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였다.

 정쟁에도 금도가 있어야 선진국이다. 금도가 없으면 진실을 이야기해도 정쟁거리만 된다. 어느 붕당 안에서는 그 간 금지어가 있어왔다고 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라는 말이란다. 그 말 때문에 누군가 당에서 쫓겨 나고 심판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는데 재정전문가들은 이해불가다. 복지를 논할 거라면 세금을 늘여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원론 중에 원론 아닌가.
 원론적인 말조차 정쟁의 씨앗이 될 정도라면 정책을 법제화할 국회나 정당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고품격 정당이자 국회라면 담세론과 복지론에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논의하여야 한다.

 옛날 이솝 우화가 있다. 벌거숭이 임금에게 모두가 참 아름다운 옷(御衣)를 입으셨다고 아첨할 때 순진한 어린이만이 진실을 말했다 한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네요!” 기원전에도 정치는 이미 그런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경쟁적이어서 걱정들이 많다. 그래서 시민들은 치유와 화합을 원한다. 우리도 그랜트 장군 같은 리더들이 사회를 이끌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적장을 존중하고, 적군을 살려주고, 총도 말도 빼앗지 않고 평온히 귀향하라는 화합의 지도자 말이다. 아울러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진실을 말하는 어린이들이 많아야 한다. 그 것이 바로 우리 일반 시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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