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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칼럼] 대리인과 국민 정서
[국세칼럼] 대리인과 국민 정서
  • 일간NTN
  • 승인 2016.05.2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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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창 영

“대한민국에서 약자가 승리하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요. 신현우(전 옥시 대표) 그 사람이 구속됐지만 제대로 처벌받고 진상규명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 대기업들이 있고, 김앤장이 있고 쉽게 끝날 일이 아닌데, 시간이 길어지면 ‘저 얘기 또 나왔어?’ ‘지루해’ 이렇게 반응할 거고, 저희는 다시 처참하게 버려질 것 같고….”

가습기 살균제에 23개월 된 아들을 잃은 부은정(44)씨가 어느 신문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그 자신도 2급 피해자인 은정씨는 불안하다고도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이슈이자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는 단지 사건 자체의 문제를 떠나 사건의 발생과 진행, 처리되는 과정에서 서민이자 국민이 느끼는 날카로운 정서가 그대로 읽혀지고 있다.

돈만 벌면 된다는 불감증 기업과 대충 덮고 가는 정부, ‘보도자료’에만 눈을 뜨는 언론, 이런 상황에서 ‘메시아’가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국민들이 느끼는 무력감이 분노로 변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가해자 측 조력자로 나선 대리인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점이 새로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록 법적인 잘못이 없고, 의뢰인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변호사(대리인) 윤리에 충실했다고 해도, 현재의 대리인제도가 잘잘못을 떠나 새로운 권력으로 변질돼 가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아무 잘못 없이 어린 생명을 보낸 엄마가 처절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넘기 어려운 벽으로 ‘로펌’을 우선 꼽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연장선에 ‘로펌’이 물려 들어가고 있다.

모든 가치에 앞서는 생명윤리 문제를 두고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집단이 보인 일련의 행태에 대해 국민은 지금 고개 숙이지 않으면, 고개를 돌린다는 무서운 상식으로 대하고 있다.

단지 김앤장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김앤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1등 로펌으로 먼저 매를 맞는 것일 수 있다. 그동안 편협한 성장으로 일관해 온 우리나라 대리인 제도는 이미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대리인은 ‘자격’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는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이고, 각 분야에서 탄탄한 권력을 형성할 만큼 그 규모가 커졌다. 시베리아에서도 끄떡없을 정도로 겹겹이 둘러싸인 온실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몸집을 불리며 안주해 왔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와 행정을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공권력을 무기로 어깨에 힘을 바짝 주는 공무원들조차 대리인 눈치를 살피는 세상이 됐다. 지금 대리인 업계에는 어떤 문제에도 답변과 논리가 가능한 각 분야 전문 자격사가 그득하고, 특정분야의 제도와 행정을 주물러 왔던 전직 고관·실무자들도 촘촘하게 포진돼 있다.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논리와 관행으로 무장한 채 안주하며 지내다 보니 오늘의 대리인들은 사명감과 윤리의식이 많이 후퇴한 면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교역할을 수행한다면서 정작 소중한 가치인 사명과 윤리가 생뚱맞은 소리로 들릴 정도가 됐다는 지적이다.

생존을 위한 무한·과당경쟁의 폐해라고 주장하지만 솔직히 대리인 세계에서의 ‘돈’ 문제는 이미 상식과 이성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도박을 한 기업 오너의 구속을 면하기 위해 불과 얼마 전까지 현직에 있던 검사장과 부장판사가 대리인으로 발 벗고 나서 ‘50억, 100억’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수임료를 받고, 밤낮으로 전화통 돌리고, 밥 먹고, 급기야 뺨까지 들이대면서 벌인 이전투구는 엄연한 현실이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대리인업계는 극도의 긴장 속에 있다고 호소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답이 없다. 국민이 곱게 보겠는가, 믿겠는가.

고전이나 동화 같은 이야기가 됐지만 대리인은 스스로 자신이 왜 필요한지, 무슨 사명과 윤리의식을 갖고 일을 하는지 되물어야 할 시기와 상황이 분명히 됐다.

특히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가 공무와 공권력의 주변에서 이를 조력하고, 조율하고, 교통시키는 일종의 가교(架橋) 역할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억울하고 어려움에 처한 국민이 비용이 들더라고 법의 테두리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일을 전문가 입장에서 돕는 것이 대리인의 역할이다. 수호천사가 될 수 있고 협잡꾼이 될 수도 있다. 사명과 윤리가 필요한 이유고, 소비자이자 의뢰인인 국민이 가슴 뜨겁게 받아들이는 대목이다.

살인을 무죄로 만드는 화려한 법률적 기술을 지닌 대리인을 국민이, 세상이 혐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그 기술은 법이 그토록 지키려고 갈망한 소중한 국가의 가치와 인류의 존엄, 국민의 행복과 믿음이라는 목적에 정면으로 배신하는 행위라는 것을 국민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리(橋)는 그저 잘 교통하도록 든든하게 받쳐주고 길을 열어주는 역할이 존재의 이유이자 임무다. 다리 스스로 흔들고 넘고 뛰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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