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철 신원 회장 300억대 재산 숨기고 채무 탕감받아
면책요청서 위조해 개인회생…사기·탈세 혐의 구속기소
신원그룹 박성철(75) 회장이 300억원 넘는 재산을 남의 명의로 숨기고 각종 편법을 동원해 채무를 탕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집을 제외한 전 재산을 내놓겠다"고 약속한 1998년 외환위기 때도 거액의 차명재산을 갖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한동훈 부장검사)는 30일 채무자 회생 및 파산법 위반과 사문서위조 및 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박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신원그룹 부회장을 맡은 박 회장의 차남(42)도 수십억원대 회삿돈 횡령 혐의로 함께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은 2007∼2011년 차명재산을 숨기고 개인파산·회생 절차를 밟아 예금보험공사 등에서 250억원 상당의 채무를 면책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 회장은 300억원대의 주식과 부동산을 차명으로 갖고 있었으나 "급여 외에 재산이 전혀 없다"고 채권단을 속였다. 파산·회생 사건 재판부에는 신원의 차명주주들 명의 면책요청서를 위조해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회장은 직원의 친인척 명의로 허위채권을 만들고 자신의 급여에 대한 압류명령을 받는 수법으로 급여를 계속 받았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자택 역시 압류 직전 회사가 낙찰받도록 한 뒤 공짜로 살았다.
박 회장의 차명재산은 신원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간 19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자택을 제외한 전 재산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신원의 채무 5400억원 상당을 감면받았지만 부동산 등 거액의 차명재산을 은닉하고 있었다. 여기에도 박 회장의 사기 혐의가 짙지만 공소시효가 완성돼 처벌은 면했다.
숨겨둔 재산은 2003년 워크아웃 종료 이후 경영권을 회복하는 데 썼다. 페이퍼컴퍼니인 광고대행업체 티엔엠커뮤니케이션즈 명의로 신원 지분의 28.38%를 사들였다. 박 회장은 부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이 회사를 통해 회장 자리를 유지했다.
박 회장에게는 차명재산으로 주식 등 거래를 하면서 소득세와 증여세 25억원을 내지 않은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당초 조세포탈로 고발된 박 회장을 수사하면서 사기파산·회생 혐의를 포착했다.
검찰은 박 회장의 차남이 2010∼2012년 신원 자금 78억원을 대여금 명목으로 빼돌려 주식투자 등에 써버린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박 회장이 2013년 횡령액을 전부 변제한 점 등을 감안해 아들까지 구속하지는 않았다.
박 회장 부자는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부 인정했다. 박 회장은 자숙한다는 뜻에서 이달 13일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포기하고 구속수감됐다.
박 회장이 불법적으로 빚을 탕감받고 회장직을 유지해온 방식은 기업회생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경영권을 되찾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례와 비슷하다.
검찰 관계자는 "사기회생 피해가 회복되고 정직한 실패자에게 재기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 본연의 취지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