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형 본지 주필
▲ 沈載亨(本社 主筆) | ||
당시의 공직사회 권위주의를 비유한 말이지만 실은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선서장들에겐 나름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들의 헛기침 한방에 직원과 납세자들은 알아서 기고(?) 일선조직 또한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였다. 속된 말로 세무서장 한번 해 먹을 만한 시절이었다.
관내서도 홀대 받는 신세 전락(?)
한 세월이 가버린 요즘의 서장님들, 관내에서 조차 홀대 받는 기막힌 세상을 살고 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다. 어느 세무서장이 외부 손님과의 저녁약속을 위해 청사(廳舍) 이웃에 있는 조촐한 한정식 집에 사전 예약을 했더란다.
평소 국세행정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인사에게 일선 기관장으로서 관심도 표할 겸 해서 마련한, 이를테면 공적(公的)인 자리를 예약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약속시간 5분여를 남기고 예약 장소에 도착한 서장님은 주인마님의 버선발 마중은 고사하고 ‘자리가 없다’는 어이없는 전갈을 받은 것이다.
분명 똑 부러지게 사전예약을 해 놨는데 앉을 자리가 없다니. 처음에는 식당 측의 무례 함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자초지종 상황을 알고 보니 더 기가 차더라는 것이다. 관내 구청(區廳)의 높으신 분이 급한 회식자리가 필요하다기에 그 쪽으로 방을 내 줬다는 것이다. 우리네 예약문화의 현주소를 들먹거리기 이전에 일선서장들의 현실적인 위치가 너무나 초라함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세정의 근간이 납세자 서비스 중심으로 옮겨지면서 세정가의 정서도 크게 바뀌고 있다. 납세자들은 기(氣)가 솟는 대신 일선직원들의 사기는 날로 시들어 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 요즘의 세상이니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이해를 한다 치다.
이젠 납세자 행패에 시달려
하지만 세상이 물색없이 좋아진 탓일까, 아니면 세정의 ‘권위’가 실종된 때문일까. 이젠 그 기(氣)를 추스르지 못한 나머지 객기(客氣)를 부리는 납세자까지 등장하고 있다. 대낮에 정신 멀쩡한 사람들이 세무서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종합소득세 또는 부가세 납기 때가되면 앞뒤 안 가리고 ‘서장실’로 뛰어드는 납세자들 때문에 애를 먹는다니 입이 벌어질 뿐이다. 대부분이 민원(民願)으로서 가치가 없는 억지 주장을 들이대며 무조건 서장실로 덤벼든다니 그들 눈에 담당과장 정도는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다. 국세청은 따뜻한 세정으로 납세자 곁을 다가가는데 납세자들은 이렇듯 어깃장을 놓고 있다.
허기야 파출소 순경들도 취객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세상이니 그리 놀랄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때는 세금 신고 차 반바지 차림으로 세무서를 찾아도 눈총을 받던 것이 세정가의 정서였는데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한 것 같다.
그동안 ‘권위주의’ 버린답시고 맹목적 서비스 세정에 집착해온 나머지 권위마저 내동댕이친 자업자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세정환경 변화에 따른 각종 스트레스가 쌓여도 내색 한번 못 하는 것이 오늘의 관리자들이다. 그렇다고 직원들로부터 편한 대접을 받는 처지도 못된다. 행여 상관 예우 받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더 큰 오산이다.
국세행정 권위는 일선이 튼튼해야
오히려 직원들 정서 살피느라 항상 긴장이다. 이렇듯 무심한(?) 직원들과 무뢰한 납세자들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지 오래다. 그러자니 기관장을 비롯한 일선 관리자들의 ‘품’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간다. 관리자와 실무자와의 구분이 무너진 지도 오래다. 좋게 보면 ‘실무형 관리자’라는 긍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지만 관리자와 실무자는 분명, 유별(有別)해야 한다.
그것이 조직다운 조직이다. 그러기에 일선 기관장들에겐 창의적이고도 진취적인 업무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안정된 근무환경이 우선적으로 배려되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찌들게 해서는 결코 좋은 품질의 세정수행을 기대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세행정의 권위는 일선 세정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가 너무나 무색해 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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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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