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永哲 편집국 부국장
▲ 鄭永哲 편집국 부국장 | ||
순리가 섭리와 합성되면 향기로움은 가시고 숙연해지고 엄숙해지며, 때로는 장엄해 진다.
인간이 인간의 도리를 깨우치고 본연의 직분과 품위를 지키는 것이 순리의 이치라면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법어처럼 자연의 변화무상함을 깨닫는 것이 섭리의 이치일 것이다.
비가 잦은 하와이 무지개 마을에 가면 ‘No Rain No Rainbow(비가 내리므로 무지개도 뜬다)’라는 표어가 있다. 마을 어귀에 새겨진 표말은 단순함과 순수함, 투명함이 엿보인다. 자연의 섭리를 순리로 아름답게 표현한 말이다.
서울시 종로구 소송동 104번지 국세청에는 지금 비가 내린다. 언젠가는 하와이 무지개 마을처럼 아름다운 무지개가 뜨겠지만, 선장 없는 국세청 호는 삼각파도에 휘말려 방향타를 잃고 위기의 항해를 하고 있다.
국세청 개청40년사에 사상처음으로 현직 청장 소환과 구속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신기록’을 두 개나 세웠다. 충격에 2만여 국세공무원은 말문을 닫고 있다.
6일 오후 부산지방법원의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전군표 국세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TV뉴스를 통해 이를 지켜본 국세청직원들은 망연자실해 하며 넋을 잃었다.
대부분 불구속을 기대하는 분위기였으나 기대마저 무너져 주변 선술집에 삼삼오오 모여 서로 불편한 심기를 달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국세청직원들은 평소처럼 출근해 정상근무를 했으나, 분위기는 설렁하다 못해 시베리아 벌판같이 냉기가 감돌았다.
진실과 거짓 말, 사의표명과 버티기, 국세청과 검찰의 기 싸움 등을 지켜본 국세공무원들의 마음은 두 당사자들 못지않게 좌불안석이었다.
한마디로 지난 6일(1일 소환~구속까지)동안은 6년만큼이나 급박한 긴장의 연속 이었다.
이번사건에는 한차원 높은 혜안도 필요했다. 청장직을 던져 버리는 것과 움켜잡는 것 둘 중 국세행정에 미치는 득과 실은 뭔가.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청탁뇌물과 업무협조비의 차이는 뭘까? “가슴에 안고 가라”는 본청장의 지시, 그 배경에 깔려있는 복잡한 사연은 뭔가. 진짜 그와 같은 지시를 부산청장에게 내렸단 말인가.
본청장과 국장간의 대질에서 어떤 말이 오갔으며, 두 사람의 표정관리까지 궁금해 했다. 이 모든 문제들은 국세청 위상에 해악으로 남게 됐다.
정권말기 역주행의 위험 운전수(?)인 대통령을 닮아가는 것인가.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을 하는 상식 밖의 위험한사태가 연출된 것이다.
“그 1억원은 내 돈이 아니다. 내가 입을 열면 여럿이 다친다는”라는 정상곤 전 부산청장의 말의 의미를 곱씹으면 아직도 의혹의 실마리가 완전해소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유죄-무죄의 시시비비는 앞으로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청사에 남을 불명예 사건임에는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과 방패의 싸움같은 거대한 시나리오를 떨쳐버리고 ‘君君臣臣父父子子’의 성어처럼 오늘의 참담함을 사랑으로 끌어안고 가면된다.
2만여 국세가족들이여, 용기를 잃지말자. 시련은 새로운 것을 잉태하려는 창조의 아픔이 아니겠는가.
오늘 끝날 것 같은 석양은 내일 또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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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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