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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칼럼]달리는 증세 열차
[세정칼럼]달리는 증세 열차
  • 日刊 NTN
  • 승인 2013.08.2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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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본지 논설위원

 
한반도는 목하 아열대다. 8월에만 서울지역의 열대야가 16일 이상 집중적으로 발생해 천오백만 수도권 시민들이 잠 못 이루게 하더니, 바다에서는 적조 현상이 동해안까지 상승해 가두리 바다 목장들은 배를 뒤집고 떠오르는 생선들로 어부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천리포 수목원에서는 봄에만 꽃을 피우는 수목들이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모두 날씨 탓이다.
날씨만 빨간불인 게 아니다. 세수도 적색 경보다. 금년 들어 상반기에만도 10조 이상 세수가 목표치를 밑돌았다. 하반기 역시 전망은 어둡다. 금년에만 20조 이상의 세수 미달이 현실화될 것이다. 1970년 이래 이런 심각한 세수 비상은 거의 기억에 없다.

현 정부가 대선 공약을 초미일관 지키려면 아무리 겸손하게 주판을 놓아도 134조 이상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세수 미달 현상이 이대로 지속되면 5년간 정상 세수만 100조 이상 결함이 생기게 된다.
추가 세수 134조와 합치면 물경 234조의 재정 적자가 불을 보는듯 뻔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약속이니만큼 반드시 지켜야 한다면 재정을 지탱할 재원 확보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납세자의 호주머니에서 235조를 빼내가던가 아니면 국채를 발행해 빚을 지는 거다. 두 시나리오 모두 시점 차이일 뿐 납세자 호주머니에서 나가기는 매 한가지이다.

선거 때마다 구애는 늘 달콤하다. “저를 뽑아 주시면 이런 복지, 저런 복지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선거 캠페인은 비전 경쟁이다. 그러나 사회적 컨센서스는 물론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비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약속은 공약(空約)이다. 공약(空約)을 스스로 실현 가능하다고 믿은 후보라면 그는 공상가이고,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밀고 나간 후보는 기만가(欺瞞家)이다.
지난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정책면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모두가 복지 선점 경쟁을 하다 보니 성장 대 분배의 전통적인 경제정책의 차별성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선거도 거래이자 선택이다. 선택은 신중하여야 한다. 선택을 하면 거래가 성사된다. 거래는 청약과 승낙의 합치로 이뤄지는데 선거공약이 청약(offer)이라면 표를 주는 것은 승낙(acceptance)이다.
공약(空約)에 관한 한 후보자들 탓만은 아니다. 유권자도 자유로울 수 없다. 유권자는 제시한 정책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제대로 가늠해보고 투표를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나라의 정치는 늘 유권자의 안목과 수준에서 펼쳐진다. 정치인들만 후안무치인 것은 아니다.
정책이 내재적으로 결함이 있었든 후속 상황에 의해 수정돼야 하든 문제가 발견되면 치유돼야 한다. 원안대로 두는 것이 일관성이고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알면 정지 기능이 없이 재정 절벽을 향하여 달리는 열차나 다름없다.

재정 통계는 빨간불임에도 정부는 “증세도 공약 구조조정도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대통령의 공약이 ‘증세는 없다’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세수를 채울 방안을 고민하면서 최근 기재부가 연간 2조5천억의 증세를 담은 세제 개편안을 발표하자 청와대 관계자는 세수는 늘지만 증세는 아니라는 희한한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세제 개편안은 3천만원대의 근로소득자부터 세금을 더 내도록 각종 소득공제나 비과세를 축소해 실질적으로 연간 세수 2조5천억을 더 거두는 것이라서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자 청와대로부터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절전으로 에어컨도 꺼진 무더운 청사에서 러닝셔츠 바람으로 밤을 지새우며 ‘증세’가 아닌 ‘세수확보’방안(서해안에 대규모 유전이 터지기 전에는 이런 방안은 없을 것이다)을 새로 짜내야 하는 기재부 세제실 직원들의 노고가 안타깝기만 하다.

결국 5천만원대 이상의 샐러리맨들 세금이 늘어나도록 타깃 납세자를 수정하여 새로운 증세안을 도출함으로써 소득세 수입이 당초보다 4400억원 정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 부족분은 FIU 정보 등을 이용하고 세무조사를 강화하여 확보하겠다는 이야기인데 납세자들 호주머니에서 나가기는 매한가지이다.
일이 꼬일수록 떠올려야 할 좋은 격언이 있다. “정직이 최선이다.” 이쯤에서는 납세자들에게 증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설득하든지, 아니면 공약의 구조조정을 하는 거다. 어느 쪽이던 국민이 이해하면 그것이 애국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미디어들이 발 빠르게 여론조사를 해 보니 국민 열명 중 여섯은 증세를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복지 공약은 더 이상 원치 않으니 증세도 하지 말라는 거다.
어느 여론조사에서는 경제전문가들의 75%가 증세보다는 공약부터 구조조정하라고 제언하고 있다. 공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은 25%였다. 국민도 전문가도 말리는 공약을 이행한다는 것은 집착일 뿐이다.
지금부터는 지출은 고정시켜 놓고 증세에 매달리지 말고 불요불급한 세출 분야를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과감하게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정책은 공약 리스트에서 제거했으면 한다. 세무조사 역시 위축돼가는 경제를 더 옥죄기만 한다.

없는 살림에서는 지출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다. 경제도 어려운데 ‘폼나게’ 공약을지켜 보려고 증세안에 골몰하고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것은 한도가 다해 가는 신용카드를 그어 대며 허세를 부리는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모쪼록 처서가 지나면 세출 검약을 위한 공약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간다는 청량한 기사가 우리를 맞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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