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8:57 (목)
[Executive Essay] 잔인한 4월의 황사 바람 속에서
[Executive Essay] 잔인한 4월의 황사 바람 속에서
  • 33
  • 승인 2006.05.03 08: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영일 (연세대 명예교수)
   
 
 
미국 출생의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이 34세가 되던 1922년에 발표한 장편 시 황무지(The Waste Land)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로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나간 유럽의 황폐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지만,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4월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중국 서부와 몽골 지역의 불모지에서 흩날려 편서풍을 타고 누런 흙먼지(황사)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50위권에서 맴도는 우리의 가난한 4월을 더욱 잔인한 달로 만들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기상청의 빗나간 황사예보 덕분에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우리네 정치권은 경제성장을 뒤로 한 채, 보라색, 청색, 노란색의 색깔바람이나 일으키기에 여념이 없지 않은가.

우리네 시인 김종길에게는 황사현상이 정교한 이미지로 전개된다. “그 날 밤 금계랍 같은 눈이 내리던 오한의 땅에/ 오늘은 발열처럼 복사꽃이 핀다.” 하지만 “앓는 대지를 축여 줄 봄비는 오지 않은 채/ 며째 황사만이 자욱이 내리고 있다.”

시인 홍신선은 “황사바람 속에서” “너와 나의 젊음은 무엇이었는가”라고 묻는다. “황사 바람이여 그 4.19 5.16 5.17 속에/ 누가 장대높이뛰기를 하였는가/ 나는 어디에 고개를 묻고 있었는가.” 지난날의 삶과 운명이 황사바람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흐리고 희미할 뿐이다.

하지만 시인 최동호는 황하(黃河)의 물기를 품은 “황사바람”을 빛과 어둠인 동시에 갈증과 물의 대위적 구조로 인식한다. “이 한낮/ 황사바람이 창문을 때리니/ ... /거대한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그래서 만년필로부터 갈증을 삭인 시구(詩句)가 사각거리며 흘러나온다.

실제로 황사 발생지의 하나인 고비사막은 한때 숱한 공룡이 살던 풍요의 땅이었을 게다. 지금은 공룡 화석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황무지가 발표된 1922년에도 이곳에서 프로토세라톱스의 뼈와 공룡의 알들이 발견됐다.

하지만 오랑캐의 땅은 기원전 33년, 한(漢)의 절색의 궁녀 왕소군(王昭君)이 정략에 의해 흉노(匈奴)의 왕에게 시집가던 날에도 아직 꽃과 풀이 없는 곳이었다(胡地無花草). 당시 중원은 따뜻한 봄이었지만 북쪽 변방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 닥쳤던 곳이다(春來不似春).

우리가 옛 부터 토우(土雨) 또는 우토(雨土)라 하던 누런 흙비를 황사(黃砂)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 이후라고도 하고, 정식 명칭으로 채용한 것은 1954년부터라고도 한다. 아무튼 우리 기상청이 정성적 예보에서 발전해 정량적 황사특보를 발령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4월 10일부터의 일이다. 중국에서는 2001년 3월부터 모래폭풍에 대한 예보를 실시하고 있다.

2001년 2월 베이징(北京)에서 제1차 한·중·일 환경장관 회의가 열렸고, 같은 해 12월에는 서울에서 제2차 전문가 회의가 개최되는 등 대책에 나서고 있지만, 한반도에 불어 닥치는 황사 발원지는 더욱 광역화되고 발생 빈도나 강도도 당분간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동아시아의 광역적 환경문제를 넘어 ‘기상재해’로 발전했다. 심할 경우에는 휴교령까지 발령하고 있지 않은가.

어째서 푸른 초원이 사막으로 변질되어 모래바람을 일으키는가? 가축의 지나친 방목에 의한 초지 감소와 토양 악화가 원인이라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가난과 공유자산의 비극이 초래된 결과가 아니겠는가. 최근 우리나라 환경단체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관심을 가진 이들이 식목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심고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땔감으로 베 간다는 이야기다.

국내적으로는 1960년대 이후의 대대적인 삼림녹화사업으로 삼림의 황폐화를 막는 동시에 경제발전을 이룩한 경험이 있다. 지금의 황사 발원지의 녹화사업에서는 교토의정서에 의한 탄소배출권 확보와 같은 정치경제적 인센티브와 연계시켜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길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환경연구가들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발원지의 황폐화를 막으면 얼마든지 황사를 예방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조림사업 등을 지원하고 황사 측정망을 확충하여 자료를 더욱 정교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의 설치를 위한 돈과 국제적 협력이 필수적인 동시에 관련 재산권의 확립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지금은 황사 피해가 수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치나 건강피해가 막대하다는 수치나 발표하면서 기상청의 예보 불량을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루속히 생각의 가난에서 벗어나 정신적 황무지를 개간해 경제발전에 매진함으로써, 아직 50위권에서 헤매는 1인당 국민소득을 되도록이면 빨리 향상시켜야 하는 소이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황사피해도 줄이고 소득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도 있으며 우리 독도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재원도 충분히 마련되지 않겠는가.


  •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6(서교동), 국세신문사
  • 대표전화 : 02-323-4145~9
  • 팩스 : 02-323-74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예름
  • 법인명 : (주)국세신문사
  • 제호 : 日刊 NTN(일간NTN)
  • 등록번호 : 서울 아 01606
  • 등록일 : 2011-05-03
  • 발행일 : 2006-01-20
  • 발행인 : 이한구
  • 편집인 : 이한구
  • 日刊 NTN(일간NTN)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日刊 NTN(일간NTN)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tn@intn.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