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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후남이를 부탁해
[칼럼] 후남이를 부탁해
  • 日刊 NTN
  • 승인 2013.09.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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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본지 논설위원

 
‘아들과 딸’. 1992년 10월부터 1993년 5월까지 주말 밤 8시가 되면 온 국민을 TV 앞에 모여 앉게 만든 인기 드라마다. 여주인공 후남이 역을 맡은 김희애의 연기력과 캐릭터는 찰떡 궁합이었고 시청자들은 국민 딸 후남이의 삶에 울고 웃었다.

그 당시엔 아들 선호 풍조가 차고 넘치던 시절이었다. 누워 있는 아들 위로 누나들이 지나가기라도 하는 날엔 ‘계집애가 큰 일 할 아들을 감히 넘는다’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보릿고개가 한 시름이든 그 시절에 ‘보리쌀을 깔고 쌀 한줌 얹어 밥을 지으면 얼마 되지 않는 하얀 쌀밥을 아버지 주발에 먼저 푸고 나서 남는 반 쌀밥은 아들 몫’이었다.

아들 귀남이는 스타 최수종. 귀한 건 모두 아들 차지이고 혹여 남는 게 있으면 비로소 딸 몫이던 시절. 귀남이는 법대에 진학하지만 쌍둥이 후남이는 집안을 돌보는 일손으로 남는다.

얼마 전 지방에서 연차 학술세미나가 있었다. 세미나를 마치고 저녁식사와 화목한 친교 시간을 가진 다음 서울로 돌아오면서 방향이 같은 매력적인 학회 회원 분의 차를 얻어 타게 되었다.

그녀는 세미나 참여도 활발하고, 세무대리인도 하면서 오랫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하여 왔으며, 복수의 박사 학위를 가진 학구파여서 어찌 그리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청하였다.

지레 유복한 집안이라서 공부를 많이 했나 보다 싶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딱 후남이였다. 그 시절 모두가 그랬듯이 아들을 대학 보내면 딸은 여고로 끝나던 때였는데 이 분도 오빠의 진학을 감안하여 스스로 여상을 선택했다고 한다.

유명 여상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접하자 학벌 차별 때문에 공부를 더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학교 다닐 때 늘 성적이 발군이었던 터라 1년만에 사표를 쓰고 대학에 가기로 하였는데 모은 돈은 딱 한 해분 등록금 밖에 되지 않았단다.

멀쩡한 직장 사표 쓰고 대학 간다고 하니 걱정이 많으신 부모님께는 이렇게 말씀 드렸다고 한다. “한 가지만 부탁 드리겠습니다. 대학 진학을 반대만 하지 말아 주세요. 학비는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에 가고 좋은 성적을 유지하여 장학금으로만 대학을 마쳤다고 한다.

장학금에는 생활비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공부에만 몰입할 수 있었고 졸업 전에 대리인 시험에도 합격하였다고 한다. 그 분은 장학재단에서 준 조건 없는 그 장학금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그녀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우려스러운 세제 개편을 목도하고 있다. 기부금을 대폭 줄인다는 거다. 세수 증대를 위하여 소득세 전반적으로도 누진적 효과가 있는 소득공제 제도는 축소하고 일정액으로 한도를 정하는 세액공제로 전환한다고 한다.

졸속 세제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고 기부금 세제혜택을 없애면 누가 기부하겠는가 걱정을 하니 당국자는 명언을 했다고 한다. “세금이 최고의 기부금이다. 세금이 걸림돌이면 세금도 고려해서 기부를 하라.”
이런 세제로 가면 앞으로는 후남이가 장학금을 받고 전문가가 되는 성공 스토리는 전설로만 남게 된다. 늘 빠듯한 나라 살림살이의 우선 순위가 이름 없고 힘 없는 수 많은 서민 후남이에게 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쏟아낸 공약을 이행하려면 추가예산이 최소 135조 이상이 필요하지만 이는 전략적인 득표용 예산이지 눈에 뛰지 않는 개개인 후남이를 위한 예산은 아니다. 제도적, 법적 사각지대는 늘 생기며 그런 그늘은 정부가 도와 줄 길이 없다. 정부가 가려운 데를 긁어줄 수는 없으니 결국 기부단체와 사회단체들이 나서야 한다.

대선 공약을 이행하려면 증세 밖에는 길이 없는데 증세는 없다는 대선공약이 발목을 잡으니 말로는 증세가 없는데 실제로는 세금은 늘려야 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세율은 건드리지 않고 애꿎은 기부금 소득공제 등을 희생시키려고 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류의 시도는 꼼수 증세라고 뒷말들을 한다. 어느 세미나에서는 요즈음 정부가 말하는 ‘증세’의 정의가 도대체 뭐냐고 묻는 일까지 생겼다.

각종 조세 인센티브는 복합 사회의 미세조정 튜너로서의 존재 이유가 다 있다. 세수가 부족하면 정공법으로 여야가 논의하여 세율 체계를 손볼 일이지 엉뚱하게 여타 조세 장치들을 손보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가장 합당한 것은 통 크게 공약 이행을 축소하는 거다. 그러면 표준적 세제도 지키면서 납세자와 세무조사 전면전을 할 필요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내년에는 두 개의 큰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보나 마나 국회의원과 지자체 후보들은 돈 먹는 공항을 유치하고 도로를 뽑아준다며 예산 쓰는 공약 경쟁을 펼칠 것이다. 현명한 유권자라면 내년 선거는 예산 쓰지 않는 공약을 내놓는 후보를 눈 여겨 보아야 할 일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며 개개인은 공동체에 대한 애착을 가진다. 크게 보면 우리는 인류 공동체를 위한 이타적 애착 동기를 실현하고자 기부를 한다. 어떤 이는 아프리카에서 기근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기부하고 싶어 하고, 어떤 이는 우리 주변의 소년소녀 가장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선한 사마리안들이 많을수록 베푸는 이도 소외된 이도 행복해진다. 기부하는 삶을 정부가 가로막을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행복한 사회를 위하여 기부금 세제는 지금보다 넓히면 넓혔지 축소할 일은 아니다. 앞으로는 우리들의 행복추구권을 가로막는 세제들이 나오지 않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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