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급증땐 고용감소 등 임금 질서 교란
국책연구기관에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공식적으로 나왔다.
내년 이후에도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면 고용시장에 충격이 클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4일 <KDI포커스>에 실린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글에서 “2년간 최저임금을 연 15%씩 올리면 그에 따른 고용감소 규모가 2019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에 이를 수 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번 고용 감소 규모 추정은 2000∼2004년에 최저임금을 실질 기준 60% 인상한 헝가리 사례를 국내 상황에 적용해 추정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주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부 일자리 안정자금이 없는 경우를 가정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급속한 인상이 계속되면 최저임금 인근에 밀집된 임금근로자 비중은 급속히 증가하고, 최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증가하면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영향 탄력성 값도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저임금 수준이 매우 높아지면 고용감소와 더불어 서비스업이나 저임금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 취업이 어려워지는 등 임금 질서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국내 최저 임금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최 연구위원에 따르면, 프랑스는 지난 2005년 최저임금이 임금 중간값의 60%에 도달한 후 임금 질서 교란 때문에 추가 인상을 중단했다. 한국은 2018년 기준 이 비율이 55%다.
이와 함께 저임금 근로자가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되면서 지위상승 욕구가 사라지고 인력 관리가 어려워지는 등 문제가 생기거나 최저임금 근로자가 증가하면서 정부 지원금 소요 규모가 확대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그는 특히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월 190만원 이하를 받는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규모를 확대하면 임금 인상 때 정부 지원금을 못 받게 될 것을 우려한 사업주가 임금을 인상하지 않아 190만원이 근로자의 임금 상한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최저임금 인상은 큰 부작용 없이 정착되고 있으며, 저임노동자 일자리 개선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도 “향후 급속한 인상이 계속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아 득보다 실이 많아질 수 있다”면서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한편 최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2020년 1만원’을 달성하려면 2019년과 2020년 2년간 15.24%씩 같은 비율로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그는 “최저임금이 내년에도 15% 인상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초고인 프랑스 수준에 도달, 속도조절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새로운 최저임금 수준에서 고용되기 어려운 저임금 노동자 고용에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홀 교수는 미국 내 영향력이 큰 전미경제학회(AEA) 회장을 지낸 거시경제학자다.홀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국은행 주최로 열린 '통화정책의 역할 :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 BOK 국제콘퍼런스에 기조 연설을 위해 방한했다.
그는 최근 한국 취업자 증가세가 둔화하고 소득 격차가 확대된 배경으로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꼽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볼 수 있다. 기본적인 경제학 이론이 그 점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홀 교수는 올해 미국 대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최저임금이 시간당 15달러를 돌파한 시애틀을 예를 들었다. 시애틀은 2016년 최저임금이 전년보다 32% 오르며 저임금 노동자 고용은 오히려 6.8%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홀 교수에 따르면, 기술수준이 아주 높지 않거나 고용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은 최저임금이 인상될 때 일자리를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