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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 꿈꾸는 올해 최고 모범 납세자의 남모를 고민은?
100년 기업 꿈꾸는 올해 최고 모범 납세자의 남모를 고민은?
  • 이상현 기자
  • 승인 2019.03.18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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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단독 인터뷰] 2019년 '납세자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상 이종남 이화PNC 대표
— 반기업정서, 특히 대기업 불신 풍조 개탄…"경쟁 없으면 품질개선도, 생존도 어렵죠"
— "리더는 가장 힘든 일 하는 사람…인재에게 급여 덜 주면 잠못이뤄" '신뢰'가 최우선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 대기업들의 위상이나 활약에 놀라곤 합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강하고 똑똑한 중소기업들도 대기업들처럼 꿋꿋하게 약진하고 있죠. 이런 기업들이 100년, 200년 영속하도록 국가가 도와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종남 이화PNC 대표

지난 3월4일 2019년 ‘제 53회 납세자의 날’을 맞아 최고상인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한 이화PNC 이종남 대표(65세)는 지난 13일 오후 5시 강원도 원주시 문막공단 소재 본사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이 대표의 첫 화두가 그랬다. 가업승계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최대 화장품 브랜드는 물론 랑콤과 시세이도, 암웨이, 에스티로더, 갤랑 등 해외명품 화장품브랜드들의 용기(case)를 만들어 납품하는 강소기업을 44년째 경영해왔다. 지난해 연매출 200억원을 돌파했지만, 놀랍게도 이 회사의 사업자등록증에는 ‘개인사업자’로 표시돼 있다.

납세자의 날 대한민국 최고 모범납세자로 이종남 대표를 추천한 것도 원주세무서가 아니라 이 대표의 서울 자택 관할 강동세무서였다.

최원봉 원주세무서장은 지난 12일 이종남 대표를 비롯한 원주세무서 세정협의회 회원들과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관내 훌륭한 모범납세자를 먼저 추천하지 못해 면구스럽다”는 취지로 인삿말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빨리 늙어 은퇴하고 싶었던 스물일곱 젊은 사장

국내외 유력 화장품 브랜드 제품의 용기를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회사답게 첨단 설비의 공장 설비라인들이 사무공간과 투명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 배치돼 있다.

건물 입구에 “경축, 금탑산업훈장 수상”이라는 플래카드가 아치형 현관입구 띠를 한치오차 없이 두르고 있었다. 제조업체라기 보다는 반도체 회사의 정갈함과 정돈된 실내가 인상적이었다.

이 대표의 부친은 40여년 전 돌아가셨다. 1970년부터 화장품 용기제조업체인 삼양이화공업사를 경영하던 선친은 당시 일을 배우고 있던 이종남 대표가 스물일곱살이 되던 1978년 갑작스레 쓰러졌다. 쓰러진 지 사흘만에 부친이 돌아가시자 이 대표는 말 그대로 하늘이 캄캄했다.

“나이 스물일곱이 뭘 알았겠습니까? 회사 임직원들은 물론 거래처, 협력업체 사람들이 모두 저보다 나이가 많다보니 모든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이 대표는 당시 ‘얼른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한국사회에서 나이가 어리다는 것, 게다가 나이가 어린 데 리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이중삼중의 부담을 의미한다.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습니다. 경로당에 다니는 노인들이 부러웠습니다. 연장자가, 은퇴자가 부러웠어요. 그 어린 나이에 경영 부담을 벗고 훨훨 날아다니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요.”

 

“200년 가업 잇는 기업 북돋워 줘야 나라 발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을 44년째 경영하면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 ‘이 녹록찮은 부담을 또 자식에게 물려줘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려서 떠맡은 가업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대표는 가업을 물려주되 자식 세대에는 자신처럼 ‘황망하고 엉겁결에’ 회사를 물려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좌충우돌 꾸려온 자신의 인생경로와 달라야 한다는 생각 컸던 것. 그런 강박으로 자식 농사는 철저하게 지었다.

큰 아들 혁제씨가 한화그룹 계열사에 다니다가 9년 전부터 아버지 회사에서 경영 전반을 배우며 익혀왔다. 혁제씨는 3월 현재 이화PNC 경영총괄실장을 맡고 있다. 이 대표의 둘째 아들은 삼성엔지니어링에 근무하고 있다.

자식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고 마음 먹은 뒤 머리를 떠나지 않는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세금’ 문제였다.

“상속세로 재산의 절반 가까이를 국가에서 떼 간다고 생각을 하니,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남동공단, 시화공단에서 수십년 꿋꿋이 현장을 지켜온 기업인들과 만나 얘기를 나눠봐도 생각이 다 비슷합니다. 모범납세자의 영예도 이런 고민을 떨쳐내지는 못하고 있어요.”

이 대표는 인터뷰 내내 “유럽이나 서구 여러나라들이 가업을 물려주는 기업에 대해 세금 부담을 주지 않으니 중소기업인들도 100년, 200년 전통의 강소기업을 대를 이어 경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몇차례 더 강조했다.

 

“큰 틀 잡아주는 대기업들 기 살려줘야 경제생태계 유지 발전”

“대기업들 기 살려줘야 합니다. 당장 우리 회사 주 고객이 한국과 해외 대기업들이다 보니, 그 분들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누구든 실물경제 현장에 나와보면 대기업이 경제의 틀을 잡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그 덕분에 나머지 경제 생태계가 유지되는 이치를 절실히 느낄 수 있을테니까요.”

이종남 대표는 “현장 사람들은 경제 생태계 역시 자연계와 같이 모두가 이해관계로 얽혀 그 자체로 상생하거나 공멸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학자들이나 공무원들이 그 생태계 속 이해당사자들을 적극적이고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탁상행정과 이념적 정책이 나온다는 얘기로 풀이됐다.

“요즘 관공서 납품이든 대기업 납품이든 ‘최저가입찰제’에 대해 많이 비판들을 합디다. 그런데 대기업이 협력업체들에게 품질과 가격 경쟁을 시키지 않고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요? 대기업이 시장을 잃으면 우리같이 대기업에 남품하는 기업들은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불을 켜고 품질관리와 원가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꾀할 리가 없지요. 경쟁이 없다면 경쟁을 초월할 기술개발을 도모할 까닭이 없지요.”

 

법인세에 배당소득세까지, 이중과세?…가업 기업인의 고뇌

이화PNC는 2019년 3월 현재 130명 가량의 임직원들이 일한다. 지난해 200억원 매출을 돌파했다.

기자가 “이렇게 매출이 많으면 세금도 많이 낼텐데, 왜 법인으로 전환하지 않았는가”라고 이종남 대표에게 물었다.이 대표의 대답은 의외였지만, 적은 규모로 시작한 가업을 키워왔다는 점에서 일견 수긍이 갔다.

“해마다 매출이 늘면서 전들 왜 법인 전환을 고민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저나 우리 회사 세무를 자문해주는 세무대리인이나 비슷한 생각을 해왔습니다. 우리 회사가 법인이라면 회사 구성원들이 애를 써서 번 돈을 나눌 때 세금이 너무 많이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법인세는 법인세대로, 급여나 배당으로 나갈 때 또 소득세를 내게 되니까요.”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마당에 대부분의 회사 지분을 본인이 보유하고 있으니 개인회사나 진배없다. 그런데 법인으로 전환하면 법인 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때 까다로운 계산을 해야 한다.

가업을 이어받은 기업인으로서는 법인세를 낼 때도 유한책임 사원이나 주주처럼 초연하기 어려울 것이다. “배당을 받고 배당소득세를 또 내면 이중으로 세금을 내는 것 같다”는 게 이 대표의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매출이 늘어 더 이상은 개인사업자로는 너무 세 부담이 커서 법인 전환을 본격 검토하고 있습니다. 올해 내로 움직일 지도 모르죠.”

 

“사내도, 사외도 신뢰가 최우선”

이화PNC에는 130명 직원들 중 30년 근속 직원도 있다. 20년, 10년 근속 직원은 그 보다 훨씬 많다. 제조업을 속칭 ‘인건비 따 먹는 장사’로 여기는 기업인이라면 결코 기업을 성장시킬 수 없다는 게 이종남 대표의 지론이다.

“직원들에게 급여를 더 주려는 마음이 항상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요즘 젊은 인재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미련없이 떠납니다. 저도 능력 있는 임직원에게 좀 덜 줬다 싶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룹니다. 그런 인재를 잡아둘 능력은 바로 더 나은 급여를 주는 경영자의 핵심 덕목입니다. 냉정한 것 같지만, 아주 평범한 진리입니다. 믿을만한 회사, 능력만큼 대우 해주는 회사라는 신뢰가 쌓이면 10~20년, 아니 30년 근속도 충분히 가능하죠.”

임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협력업체와의 신뢰는 이 대표의 ‘정도경영’이 추구해온 핵심이자 요체다.

“경영 초기부터 직접 수금을 나가곤 했는데, 납품업체가 우수리 가격을 자르고 돈을 주는 게 그렇게 싫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줄 돈은 우수리 가격을 절대 자르지 않죠. 심지어 반올림해서 더 지급합니다. 신뢰는 기본적인 것에서 쌓인 것 같습니다. 제 때, 현금으로, 깎지 않고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니 협력업체들과 큰 신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가격은 중국처럼, 품질은 일본처럼!”

화장품 용기 제조업은 경쟁이 만만찮다고 한다. 안으로는 품질과 가격으로 치열하게 맞서는 경쟁업체들도 여럿 있고, 밖으로는 중국업체들과 일본 업체들이 시장 포석을 바꾸고 있다고 한다.

“경쟁은 우리를 강하게 깨어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므로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목표는 간단합니다. 가격은 중국산처럼, 품질은 일본산 수준으로! 그런 마음으로 합니다.”

52시간 근무제나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들이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안타까와 한다. 1994년 서울에서 지금의 문막으로 회사를 옮겼을 당시보다 경기 부침은 더 커졌는데, 노동유연성은 더 떨어져 더 걱정이라고 한다. 기자가 “그래서 기계로 인력을 대체하는 시설투자나 연구개발 투자에 공격적인가”라고 묻자 이종남 대표는 “인력대체효과보다는 품질안정 효과가 절대적”이라고 딱 잘라 부인했다.

이 대표는 화장품 회사 리더들과 골프도 친다. 평균 잡아 85타 정도. 젊을 때부터 영업 목적으로 배운 골프인데, 운이 좋아 그간 홀인원을 무려 3번이나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홀인원 3번보다 더 어려운 게 ‘금탑산업훈장’인 줄 사실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저는 상 타기 전까지 이 상이 대통령상보다 낮은 것인 줄 알았다니까요.”

이 대표는 천상 리더의 운명을 타고 났다.

“사장은 힘든 일, 직원이 해결 못하는 일을 해결해 줘야 자질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부 조달이 없는 업종을 하다보니 관가 사정에 어두웠는데 이번에 나라의 큰 상도 받았으니 앞으로도 세금 더 잘 내고 좀 다르게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기자가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이혁제 실장에게 전화를 했는데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에 회의 중이었다. 기업인들은 노동자의 ‘워라벨’을 위해 자신의 워라벨을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노동자도 워라벨을 고집하며 기업의 손님이 돼 버리면 가난이 뒤따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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