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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콩을 원했으면 콩을 심었어야지
[특별기고] 콩을 원했으면 콩을 심었어야지
  • 이창규 한국세무사회장
  • 승인 2019.03.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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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세무사회 이창규 회장, "세무대리는 오랜 공부 필요한 세무전문가 영역"
- "전문성 없는 자격사에 세무대리 맡기면 명의대여 등 부작용…납세자 피해"

3월에는 만물이 싹을 틔우듯이 대학도 새로운 학기를 시작한다. 우리 세대에 대학은 여유와 낭만이 넘쳤다. 하지만 ‘청년실신’의 시대에 대학 4년은 많은 이들에게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전락했다고 하니 씁쓸하기도 하고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기도 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커리어넷 학과정보에 따르면, 2017년도 전국의 26개 4년제 대학의 세무회계학과 입학자는 4601명이다. 예닐곱 대학의 세무학과 정원까지 포함하면 세무사 업무와 직접 관련되는 학과의 입학정원은 6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학과 입학생의 성적은 대체로 해당 대학에서 최우등 등급에 해당된다. 왜 그럴까? 이들 학과는 교과목이 회계학과 세무에 집중되어 있어 학점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관련 분야 자격시험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으며, 따라서 타 과에 비해 취업률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높은 청년 실업을 반영하듯 세무사 시험의 경쟁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져가고 있다. 매년 1만여 명이 세무사 시험에 도전하지만 630명만 합격의 영예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관련 학과에서 장기에 걸쳐 체계적으로 준비하여 어렵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해도 바로 개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금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세무사의 업무는 많게는 하루에 수백 건 이상 다양하게 발생하는 고객 기업의 거래를 다루기 때문에 책상머리 공부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따라서 세무사 등록을 위해서는 6개월 이상의 실무교육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나마 실무교육을 받은 세무사가 바로 개업하는 비율은 약 25%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수년간 세무법인 등에서 선배들에게 도제식 교육을 받는 길을 택한다.

현재 등록 세무사는 약 1만3000 명이며, 세무사 1인당 4~6명의 사무직원을 고용하여 기업의 세무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업계의 상황은 너무나 어렵다. 세무사의 주 수입원인 기장수수료 등은 수십 년간 고정된 반면, 최저임금과 임대료는 급격하게 인상되어 많은 세무사 사무소가 경영난을 겪고 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올해 세무사 업계에 생각지도 않았던 큰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받은 2017년 이전 변호사에게 세무대리를 전혀 못하도록 한 법률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올해 말까지 변호사에게 일정 수준의 세무대리를 허용하는 입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변호사에게 허용할 세무대리의 범위 등은 전문자격사인 세무사 제도의 취지에 맞도록 세무대리에 필요한 전문성과 능력을 가진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여 제한적으로 허용하라는 입법 권고를 하였다.

이창규 한국세무사회장
이창규 한국세무사회장

그런데 대한변협은 1만8000여 변호사에게 사전 교육이나 검증도 없이 장부기장을 포함한 모든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정부의 입법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이들 변호사 대다수는 세무대리 업무 수행에 필수적인 세무회계나 세법을 배운 적이 없다.

변호사 시험과목에 세무회계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세무사에게 상식 수준인 조세법은 선택과목인데 그나마 이를 선택하는 수험생은 2.5%에 불과하다. 조세법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세법이 너무 어렵고 방대하여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점수 따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이들이 무분별하게 세무대리 시장에 뛰어들 경우 명의대여 등으로 시장교란이 예상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납세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난다. 팥을 콩밭에 심고 좋은 콩을 기대할 수는 없다. 콩밭만 망칠 뿐이다. 세무대리 시장은 고교 교정을 나오기 전부터 세무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대학에서 관련 교과목을 이수하면서 전문성을 다지고, 다년간 준비한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6개월 이상의 실무교육을 이수한 자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그야말로 세무전문가의 영역이다. 그런 다음에야 서로 다른 업종에 있는 수백 개 기업의 세무대리를 하고, 대여섯 가정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변호사 자격증만 가졌다고 해서 이러한 과정을 뛰어넘을 만큼 전문성이 생기지 않는다. 진실로 그대는 세무사의 직무에 가슴이 뛰어본 적이 있는가?


이창규 한국세무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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