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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稅想) 칼럼] 상속세 괴담
[세상(稅想) 칼럼] 상속세 괴담
  •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 승인 2019.06.0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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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지인의 연락으로 오랜만에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용건을 알고 보니 “상속세가 87%라고 보도되는데 이 정권이 드디어 상속세 폭탄을 터뜨린 모양”이라며 상속세 준비를 어찌 하면 좋겠냐는 거였다.

어이가 없어서 그 분이 말한 기사를 찾아보니 상속세율이 87%라는 보도가 정말 있었다. 진앙지는 경제단체 K회장이었다. 그는 여의도 어느 식당에 경제기자들을 모셔 놓고 상속세 폭탄 발언을 한 모양인데 그 말은 여과 없이 일파만파 보도가 된 거였다.

기사제목은 이랬다. “가업승계 세금 87%, 경영권 유지 못 해”(C비즈), “가업상속세 엄밀히 따지면 87% 과도한 규제로 기업가정신 위축”(M경제),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잡아 늘여 죽인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Y뉴스).

국민들이 놀랄만도 했다. 그 분에게는 기사 내용이 과하며 이 정부가 상속세를 증세한 적도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설명은 드렸으나 여전히 미심쩍은 눈치였다. 그리고는 요즈음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지도층 때문에 살 맛이 나지 않는다는 푸념을 듣는단다.

좋은 생활정치를 펼치라고 귀한 세금을 1년에 무려 5억씩 나누어 주는데 여의도 의원님들은 정작 법을 가꾸고 다듬는 국회는 열지 않고 돌아 다니며 막말만 일삼고 있고, 국민 마음을 순화시켜 주어야 할 종교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사업으로 번 돈은 세금을 낼 수 없다고 공공연히 납세거부운동을 하는 건 약과이고 정치 설교와 성범죄까지 저지른다는 거였다.

게다가 이렇게 언론이 소스의 진의를 검증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퍼 나르면 독자들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기실 fact checking 없이 그대로 보도하면 ‘따옴표 언론’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가짜뉴스를 생산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 분 걱정대로 개인이나 이해단체의 주장과 왜곡을 여과 없이 보도하면 대중은 가짜뉴스를 fact로 알고 소비 전파한다. 정확한 사실과 진실의 전달이 본령인 언론이 속보 경쟁과 구독 클릭 수에 매달리다 보면 시나브로 자신들만 모르게 옐로우 저널리즘이 되고 가짜뉴스의 공장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신문은 종국에는 부고란 빼고는 읽을 게 없는 찌라시가 될 것이다.

기성세대들의 행태가 우리를 슬프게 할 때마다 시민들은 한국의 미래이자 보배인 젊은이들 이야기로 위로를 받는다. 그림 같은 골인과 함께 아카시아향 미소를 관중에 날리는 손흥민 선수나 멋진 속구로 삼진아웃을 잡는 류현진,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BTS,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인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임 분위기가 반전되곤 한다.

요즈음의 사회는 거꾸로 걸어 놓은 그림 같다. 국민이 종교계를 바로잡아야 하고, 국민이 국회를 보살펴야 하고,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를 걱정해야 하는 역행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상속세만 해도 그렇다. 일반인들은 세금폭탄 의구심이 크다. 부자는 물론이고 서민까지 상속세를 걱정한다.

가업승계 상속세로 일반 독자들을 패러노이드에 빠지게 만드는 건 혹세무민이다. 상속세 제도를 보면 일반인은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2억을 공제한다. 더불어 자녀 1인당 5000만원씩 공제한다. 연로자라면 추가로 5000만원을 공제한다. 이런 저런 걸 일괄하여 5억까지 공제해 준다.

그리고 배우자에게 30억까지 비과세를 허용한다. 결국 32억 이하의 재산은 상속세가 없다. 거기에 주택이 있으면 동거가족 주택공제가 추가된다. 금융재산은 20%를 또 비과세한다. 영농인은 15억까지 영농상속공제를 해준다. 대강 30억원대의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30억 이상이 문제인데 그런 분들이 몇%나 될까? 국세통계연보(2017 사업연도분)에 따르면 상속재산이 30~50억원 681명, 50~100억원 344명, 100~500억 178명, 500억 초과 18명이었다. 총 1,221명이다. 약 천명만이 상속세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 거였다. 그 해 285,534명이 사망(통계청)하였는데 30억원 이상자는 고작 0.42퍼센트에 불과했다. K 회장이 염두에 둔 층은 넉넉잡아 100억 이상에 해당하는 고작 200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상속세를 고민하는 이들은 0.42%의 극소수 부자들의 이야기다. 이 걸 기업인 모두의 고민인양 대서특필하여 일반 국민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건 생각해볼 일이다. 결국 국민 대다수는 상속세를 두려워할 일이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세금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은 상속세 좀 내는 팔자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세금을 내려면 40억은 넘는 상속재산이 생겨야 하는데 이는 로또 복권이 두 번 터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작년 1년 동안 1등 평균 당첨금이 19억6100만원이었다. 로또가 당첨될 확률은 8,145,060분의 1이고 두 번 터질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상속세가 폭탄이라고 우는 이들이야말로 행복에 겨운 분들이라는 거다.

그럼 K회장이 비유하듯 ‘머리를 자르고 사지를 잡아 늘여 죽인’다는 가업상속세에 대해 살펴보자. 이 제도가 1997년 처음 도입됐을 때는 중소기업에 한해 고작 1억원 한도에서 상속세를 공제해줬으나, 그 뒤 노상 기업 경영권 보호를 노래 부르므로 여러 차례 법을 개정해왔고, 지금은 연 매출 3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으로까지 확대해주었다.

우리나라 기업 전체에서 매출 1,500억 이하의 중소기업이 99.95%를 차지하니 거의 모든 기업인에게 가업상속공제제도의 혜택 자격을 부여 하고 있는 셈이다. 나머지 0.04%는 재벌과 중견기업뿐이다.

그리고 자산 5000억이 넘는 재벌과 중견기업까지도 오너가 자식한테 거대한 부를 세습하도록 상속세를 매기지 말라 주장한다면 일반 국민들 정서상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행 제도만으로도 이미 상속재산 500억원까지 상장기업이든 비상장기업이든 상속세를 매기지 않는다.

이는 일반인이 10억짜리 아파트를 무려 50채나 세금 없이 상속 받아도 된다는 것과 같으니 그 특혜가 서민들에게는 꿈만 같은데, K회장은 우리 나라 상속세가 사람 머리를 자르고, 사지를 잡아 늘여 죽인 프로크루스테스와 같다는 비난을 한 것이다.

틈만 나면 경제단체나 갑부들 그리고 그들이 동원한 이들이 주장하는 가업상속세 완화 합창은 결국 0.04%를 위한 특혜를 의미한다. 이를 두고 한국 상속세가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고 대서특필하는 건 건전 납세환경에 조세저항을 가져오고 과세관청만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어느 조세 전문가는 K회장의 상속세 87% 주장은 완전한 가짜뉴스라고 비판한다. “상속세 65%도 모든 재산을 주식으로만 상속할 때 이야기다. 한국은 상속 재산 중 약 60%가 토지, 건물 같은 부동산이다. 부동산에는 당연히 주식할증이 없다. (그러므로) 상속세 65%도 과장된 수치다. 상속세 공제도 최대 42억원까지 된다. (이 정도면 후하지 않은가)”

재벌닷컴이 국세청 통계자료에 기초해 2008~2017년의 상속세를 살펴본 자료에 따르면 과거 10년간 59,593명이 물려준 상속재산 약 98조대로 상속세는 17조대여서 상속세의 명목 최고세율만 50%이지 실효세율은 17.3%에 불과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상속공제 등 각종 비과세로 과세대상에서 빠진 공제가액 비율이 크다 보니 명목 세율만 거창하지 부자들에 대한 상속세 실효세율은 고작 17%대이고 비과세 혜택을 받은 공제가액 비율은 최대 50.7%에 이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속재산이 50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실효세율은 해마다 내려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500억원을 넘는 상속재산가액에 대해 실효세율은 2012년 48.3%, 2013년 47.1%, 2014년 44.7%, 2015년 39.9%, 2016년 30.9%로 계속 내려갔다는 거다. 결국 상속세율이 87%라는 주장이나 기사는 가짜뉴스를 생산한 격이라는 것이다.

한편 영연방처럼 상속세를 없애는 나라도 많이 있으니 우리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와 그들 국가간의 역사적 배경과 조세 체계를 이해하면서 접근할 일이다.

가령 영국에서는 포틀랜드 전쟁이 선포되자 왕자가 공격함에 승선했다. 영국의 귀족 거실에 걸린 역대 귀족들의 초상화 속 주인공들은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드문 이유를 함께 생각해보아야 한다.

기득권층이 먼저 전쟁에 나서다 보니 팔도 잘리고 눈도 찔려 초상화들이 애꾸눈 아니면 팔 다리 없는 상이용사가 즐비하다는 거다. 그들은 생전에 기부와 소득세로 사회환원을 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다 하다가 갔으니, 남긴 유산만큼은 상속세라는 추가 세금을 매길 일은 아니라는 사회적 함의가 전제된 것이다.

물론 우리도 기득권층이 평소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헌신과 책무를 다하고, 당사자는 물론 자녀들이 제대로 군대에 다녀왔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다한 우리 부자들에게도 상속세 면제의 영예를 안기자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자들은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내 외국여권을 만들고, 신체 멀쩡한 이도 석연치 않은 사유로 군을 면제 받다 보니 각료 대부분이 군을 면제 받은 cabinet이 구성되는가 하면 국회의원들의 징집면제율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높으니 상속세 경감 논의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땅 부자들 역시 강남 땅이든 천안 땅이든 사두면 급등하여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만들어졌는데 세금은 기준시가로 냈다. 당시 기준시가는 실가의 15%~20%였다. 거부들이 낸 세금은 실효세율이 고작 10% 미만이었다. 기준시가(실가의 20%) 곱하기 양도세율 40%로 한들 8%만 세금을 내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천문학적으로 오른 부동산과 재산을 상속할 때가 오니 거부들은 상속세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각종 경제단체와 그 연구소들은 학자들을 동원해 세미나를 열고 외국은 상속세를 폐지하고 있다고 불을 지피고 있고, 일부 언론은 (자사와 사주를 위하여) 이에 편승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총을 받고 있다.

상속세 경감론자들이 언급하는 캐나다도 상속세를 폐지했는데 소득세가 60%인 점을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일본도 상속세가 55%로 우리보다 높고, 기업상속도 중소기업으로 한정하고 납부 유예제 정도만 허용한다.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들을 보면 소득세가 고율이었던 배경이 깔려 있다. 충분한 소득세 과세 환경에서 상속세를 면제한 것이다. 소득세와 상속세의 통합적 판단이 필요하다. 상속세든 소득세든 한번쯤은 제대로 내라는 거다. 우리도 과거 얼치기 세금이 아닌 북유럽 급의 고율 소득세를 냈더라면 상속세를 면제해줄 법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산 불평등과 소득 격차 탓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이 고착되는 쪽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시각들이 아직은 많다.

상속세 퇴출을 주장하려면 부자들과 기업이 과거에 유리지갑 같이 투명한 샐러리맨의 갑근세처럼 제대로 된 세금을 담세하였는지, 그래서 상속세를 부과하기에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지금의 거대한 부가 형성될 때까지 과연 보유세는 제대로 부과된 것인지 등 많은 질문들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필자도 세금 없는 부의 세습은 없다는 사회적 컨센서스를 깰 만큼 한국의 거부와 자산가들이 사회적 헌신과 납세 경력을 쌓아 올려서 이제는 상속세를 퇴출해도 되지 않겠냐는 ‘자기 변호’를 해도 대중이 동의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빨리 오길 기대한다.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김진웅 논설위원·세무사 master@intn.co.kr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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