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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통령·장관후보, 성공한 부모들의 자녀들이 마주한 가혹한 운명
[데스크 칼럼] 대통령·장관후보, 성공한 부모들의 자녀들이 마주한 가혹한 운명
  • 이상현 편집국장
  • 승인 2019.08.30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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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음마 떼야 하는 시점까지 자녀 손 놓지 못하는 부모들
- 능력만으로 성공 못하는 경험이 부른 불가피한 어리석음
- 자녀 독립 못시킨 부모가 세습 제도화‧고착화→망국 초래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에게 전하는 격려의 말을 올렸다는 뉴스가 화제다.

문씨 글의 건더기는 “후보자의 자식까지 검증해야 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식의 실력과 노력이 폄훼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문씨는 “분명히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을 텐데. 그간 충분히 훌륭한 성과를 이루며 살아왔음에도, 사람들은 그의 노력을 말하지 않고, 그의 부모만 말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의 자기 인생이 부정당하는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아마 그를 조국 딸로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는 문씨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부당할 것이다. 문씨에게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지만,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론의 영역으로 평소 지론을 조심스레 펴 본다. 

조선이 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세습이다. 왕부터 양반, 객주들의 세습이 당연한 시대였다. 조선이 정치혁명을 통해 망하지 않은 후과는 오늘날까지 사뭇 혹독하다. 혁명 없이 근대를 맞은 탓에 한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망국을 부른 세습의 위험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아간다. 어리석은 경험주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채.

망한 조선을 제대로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오늘날의 부모는 자녀가 일정하게 성장하면 스스로 삶을 개척해 독립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소위 한국의 사회지도층과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음으로 양으로(제도적으로 인맥으로) 걸음마가 끝나가는 자녀들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런 행위의 결과는 어떨까?

지금의 일부 사회지도층들이 자녀들의 걸음마에서 끝낸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어리석은 경험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자신들의 성공이 순전한 실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고, 외려 숱한 인재들이 속칭 줄을 잘못 타거나 그런 인맥(혈연, 지연, 학연) 관리를 못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한 자신이 자녀의 가장 중요한 인맥이 돼 줘야 한다는, 매우 현실적이고 분명한 근거가 있기에 걸음마를 떼야 하는 자녀의 손을 끝내 놓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일까? 바로 자녀의 삶을 통째로 망쳐 버리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한국에서 성공한 부모는 한국 사회가 특정 대학과 기관 등에서 소위 스펙을 쌓아야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점에 착안, 매우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자녀가 스스로의 능력으로 사회에서 일어서도록 내버려두지 않은 결과는 사뭇 가혹하다. 자녀는 성공한 부모가 자신의 인생을 망쳐놓았다는 사실을 부모의 성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이미 깨닫는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한국인의 자녀는 부모의 음덕 이외에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세울 것도 없는 무능력자, 금수저, 타고난 기득권자로 치부될 뿐이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가?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조금도 인정받을 수 없는 삶, 그것은 바로 성공한 부모의 어리석은 경험주의가 자녀에게 내린 가혹한 운명이다.

통계적으로 베이비부머 세대에 해당하는 부모들까지 이런 성향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통계적일 뿐 더 젊은 사람들도 드라마 <스카이 캐슬>과 같이 자녀의 삶을 통째로 망치고 있다.

오늘날 여러 좋은 명분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변호사와 의사, 외교관 등의 좋은 일자리들이 세습되고 있다. 이것은 건물주가 세습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걸음마를 떼야 할 때까지 자녀의 손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부모들의 어리석은 경험주의가 제도와 행정에까지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준용씨는 호소한다.

"사람들은 아마 그를 조국 딸로 기억할 것이다. 사람들 머릿속에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것은, 한참을 달려야 자랑할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아직 졸업도 못한 젊은이에게는 오랫동안 버거운 싸움이 될 것이다."

오늘 밤 내 자녀들에게 비틀즈의 명곡 ‘렛잇비(Let it be, 내 버려 둬!)’를 들려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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