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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무지‧분노의 ‘낙인’, 다음은 한국 차례
[데스크 칼럼] 무지‧분노의 ‘낙인’, 다음은 한국 차례
  • 이상현 편집국장
  • 승인 2020.02.25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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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한 폐렴 표현 왜 못쓰냐?…중국인 입국 금지하라”던 한국인들
- 언론도 인종주의적 분노 조장…WHO, “‘낙인’, 상태 악화시킬 뿐”
- 낙인→혼란‧분노‧공포→고정관념→은폐‧반사회적저항→방역 실패

“신천지가 배후!”

국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한 보도전문 채널 케이블방송이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내보내면서 쓴 표현이다.

뉴스를 지켜본 한 대학생은 “지식과 지능, 감정조절의 편차가 심한 일반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언론이 저러면 안 되는데…”라며 우려를 표했다.

국내 최고의 한 일간신문은 최근 “코리아 포비아…한국인들 비행기 탄 채 쫓겨났다”는 제하의 머리기사 위에 이례적으로 “중국서 오는 외국인 입국, 전면 금지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얹어 실었다.

이를 발견한 한 외국인 학자는 “이해할 수 없다. 한국어 공부하면서 배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이스라엘에서 입국을 거절당한 사실을 개탄하면서 바로 같은 지면에서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을 유럽인들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24일 ‘코로나 19’ 검사를 받은 미래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내가 검사를 받게 되리란 것을 미처 그려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평소와 달리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명칭인 ‘코비드 19(COVID-19)’라고 지칭했다.

미래통합당은 당내 모든 발언과 논평 등에 내내 ‘우한폐렴’이라는 명칭을 반복적으로 써왔는데, 원내대표가 처음 WHO의 공식 명칭을 쓴 것이다.

WHO는 24일(스위스 제네바 현지시각) “쿠웨이트에서 추가 확진자(이 나라 누적 확진자는 25일 현재 5명)가 나왔다”고 발표하면서 “특정 감염병 발생 지역 출신의 사람들에게 ‘낙인(Stigma)’을 찍는 현상이 급증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WHO는 “낙인은 사람들이 특정 감염병이 특정 지역민들에게만 감염되는 것으로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핵심을 짚었다.

특정 지역 사람들을 전형적인(stereotyped) 잠재 감염자로 싸잡아(labelled) 왕따(separated)를 시키고, 질병과 관련해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사람 관계로 몰아가기 때문에 차별이나 특정 경험을 차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 WHO의 우려다.

WHO는 단순히 인도주의적 측면의 캠페인 차원에서 이런 말을 꺼낸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

WHO는 “낙인찍는 행위는 공중에게 혼란과 분노, 공포를 자아내고 결국 해로운 고정관념을 만들어낸다”면서 “낙인은 특히 이런 차별과 해로운 고정관념이 두려운 나머지 병이 감염된 사람이 감염 사실을 숨기는 동기로도 작동한다”고 경고했다. 그릇된 낙인찍기 행위가 결국 감염자의 즉각 진료‧치료 시도를 막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자칫 낙인찍는 사회의 차별에 분노해 건강수칙이나 공중보건 수칙에 반하는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 아직은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사례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과거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가 세상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해 무분별한 성행위로 AIDs를 기하급수적으로 확산시킨 사건도 있었다.

낙인은 결국 국가 차원의 방역을 어렵게 하고 감염성 질환 통제에 실패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해악적이다.

WHO는 적십자사·적신월사 연맹(IFRC)과 유니세프(UNICEF) 등 국제기구들과 함께 “낙인은 코로나-19 전염경로와 방역 등에 대한 부정확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면서 각국 정부와 시민사회, 미디어에 촉구했다.

WHO는 일반인들이 낙인 광풍에 휩싸이지 않고, 쉽고 빠르게 안정적 통제 상황을 조성할 수 있도록 종교지도자나 유명인들이 “낙인을 배격하자”는 선언을 해주기를 촉구하고 있다.

또 정부와 시민사회가 “감염병 상황에서 다른 민족이나 인종 기반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함께 방역과 진료‧치료 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균형적인 언론보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WHO는 “미디어가 상황에 맞는 증거 기반의 정보를 제공하고 루머 퇴치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감대를 만들고 연대하라”는 WHO 권고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이상현 편집국장
이상현 편집국장

한국에서 “도대체 중국 눈치를 얼마나 보느라고 ‘우한폐렴’이라는 말도 못 하게 하느냐”고 분노조절 장애 증세를 보인 것은 비단 정치인들 뿐 아니었다.

일부 언론사들은 굳이 괄호까지 쳐서 굳이 그 ‘우한폐렴’이라는, 사실상 ‘나는 너희 중국인 싫어!’라는 감정 표현을 귀한 지면에 반영하려고 극구 애를 썼다.

‘우한 폐렴’은 ‘대구 폐렴’으로, 이제 ‘코리아 포비아’으로 변종됐다. 신종 바이러스의 진화 과정과 아주 흡사하다.

“WHO가 중국으로부터 많은 자금지원을 받았으니까 중국 욕을 못하게 한다”는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한국, 한국인. 이제 ‘민족주의’로 ‘인종주의’에 맞설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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