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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제일모직‧삼성물산 언급 없이 ‘사과’
이재용, 제일모직‧삼성물산 언급 없이 ‘사과’
  • 이상현 기자
  • 승인 2020.05.0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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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버랜드‧SDS만 거론…과거 건은 ‘비난받았다’ 표현
- 재판중인 불공정합병→경영권승계 관련 언급은 없어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3시 “위험을 무릅쓰고 방역과 치료에 애쓴 의료진 등 재난극복 과정에서 보여준 국민들을 보면서 국격이 뭔지 깨달았다”면서 밝힌 소회다.

이 부회장은 이날 언론에 생중계된 발표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녹록치 않은 경영환경에서 제 자신이 제대로 평가도 받기 전에 자녀에게 넘겨주는 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이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고,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데, 많은 논란은 이 문제에 비롯된 게 사실”이라며 “분명히 약속하건데, 법을 어기는 일을 결코 하지 않아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재판 받는 것은) 제 탓입니다”라며 “윤리적 비난을 자초한 각종 편법을 엄금하고 오로지 회사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도 했다.

이날 이 부회장은 지난 2015년 당시 삼성서울병원을 통해 중동호흡기질환(메르스)이 확산돼 대국민 사과에 나선 지 5년 만에 두 번째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런데 이날 대국민 사과 자리는 공교롭게도 그 해에 있었던 많은 일 때문에 마련됐다.

2015년 7월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기업설명회에서 ‘나스닥 상장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해 5월 합병이 발표됐다. 그 해 5월1일은 이재용 부회장이 부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사실상 물려받은 날이다.

합병 발표 한 달 전인 4월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그룹 미래전략실의 ‘M사 합병 추진’ 문건에는 “(이 부회장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 주가가 고평가 돼 합병 비율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또 “주가 악재 요인은 합병 이사회 이전에, 호재 요인은 이사회 후에 집중해서 주가를 부양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룹 차원에서 합병 성사를 위해 직접 개입한 증거로 여겨지고 있다.

분식회계 의혹도 경영권 승계와 밀접히 연관됐다는 지적이다. 2015년 11월 삼바 문건에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1조8000억원대 콜옵션 부채를 반영하면 자본 잠식에 빠지게 돼 불공정 합병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복제약 판매 승인’이라는 이벤트를 급조, ‘회계 처리 변경’을 통해 에피스의 자본 잠식을 회피한 정황도 수차례 지적돼 왔다.

합병 때 이 부회장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실체가 없는 제일모직 바이오 사업부의 가치를 과대평가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이밖에 사실상 비업무용인 에버랜드 소유 부동산을 업무용 자산으로 분류, 부당하게 높게 가치를 평가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였다.

합병 전 “유휴 토지에 대해 별도의 관광사업을 시작한다”며 용인시와 계약까지 맺었지만 2015년 합병 이후이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영업규모나 이익규모 면에서 제일모직을 훨씬 능가하는 삼성물산의 가치는 크게 낮게 평가, 부당하게 축소했다”고 주장해왔다. 삼성이 조직적으로 양사 합병비율 조작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2조~3.6조원의 이득을 챙겨 줘 이 부회장이 배임 혐의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이 부회장의 발표는 기자회견이 아니었다. 당초 지난 4월9일 예정됐지만, 코로나19 재난대응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연기됐다가 6일 오전 ‘발표를 오후에 한다’는 깜짝 발표에 따른 것이다. 이 부회장 발표 직후 행사 진행자는 “질문 있는 기자들은 커뮤니케이션실로 연락해 달라”고 했다.

삼성은 지난 1월9일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내세운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재판부는 약 1주일 뒤 열린 재판에서 준법감시위를 ‘양형 조건’으로 고려하기 위해 법원과 특검, 변호인 추천으로 구성된 전문 심리위원단을 꾸려 그 실효성을 살피겠다고 공언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이 부회장에게 대국민 사과를 권고했었고 당초 5월11일쯤 사과가 이뤄질 것으로 예견돼 왔다.

이와 관련, 삼성에 비판적인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 부회장의 범죄수법의 불량성 등 양형의 ‘가중’ 사유가 될 수 있는 특검 신청 증거는 채택하지 않고 감형 요인인 준법감시위 건은 적극 채택했다”고 재판부를 비판해왔다.

발표 내용에 ‘사과’라는 말은 있었지만, 사과의 구체적인 내용과 재발 방지책, 불공정합병에 따른 주주피해 배상대책 등이 전혀 없어 내용적으로 사과가 맞는지 의문이라는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익명을 부탁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부회장이 ‘나는 내 아이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만 했다”면서 “재발방지 약속이나 피해배상 할 잘못이 뭔지 밝히지 않고 ‘제 탓입니다’라고 한 것은 정치인들의 정치적 수사(rhetoric)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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