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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현행 세금계산서는 대기업 만능경제의 원인이자 결과”
전문가, “현행 세금계산서는 대기업 만능경제의 원인이자 결과”
  • 이상현 기자
  • 승인 2020.12.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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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은 무역금융에 납품대금 안주고도 매입세액공제, 수출 부가세 환급혜택까지
— 6개월짜리 어음받은 중소협력·하청기업들은 부가세 내고, 어음깡 아니면 고리대출
— 차삼준 박사, “권위주의 정권하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불가피했어도 이제는 바꿔야”

현행 세금계산서 제도는 과거 종합상사를 계열사로 둔 재벌 대기업들의 수출 부가가치세 환급 등 신속한 자금 회전을 지원하면서 제조 대기업들로부터 장기 어음을 받는 협력・하청기업들에게는 엄청난 자금부담을 준 제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소 협력・하청기업들은 대기업에 납품하는 날짜에 세금계산서를 발급, 납품대금을 못받은 시점에 부가가치세 납부 의무가 확정되는 반면 장기저리의 정부 무역금융까지 제공받는 대기업들은 어음결제에 수출부가가치세 환급혜택까지 이중삼중 혜택을 받으며 엄청난 이윤을 독차지했다는 주장이다.

차삼준 박사(세무사)는 9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세금계산서 발행시기를 실제로 돈을 받는 날(공급대가를 받은 날)이 아닌 납품한 날짜로 적는 현행 세금계산서 제도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개발연대시기 대기업 위주 성장전략에 동원된 나쁜 제도”라면서 이 같이 밝혔다.

차 박사는 “대기업들이 6개월짜리 어음으로 납품대금을 지급할 경우 높은 금리를 적용받는 중소 협력・하청기업들은 이윤을 포기하고 금융기관에서 어음할인을 받거나 어음 만기도래 때까지 또다른 금융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 무역금융지원을 받는 대기업들이 해당 납세기간에 매입세액공제를 받고, 수출 부가가치세 영세율 적용에 따른 부가세 환급 등 이중삼중의 혜택을 받는 동안 중소 협력・하청기업들은 거의 역마진으로 버티면서 종업원 저임금과 재하청업체 납품가 쥐어짜기 등 악덕사업자 역할을 강요받았다”고 설명했다.

차 박사는 “한마디로 중소기업이 생산성과 기술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한국의 모든 불평등에 잘못된 세금계산서제도가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면서 “과거 수출주도형 성장기에는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상식에 어긋나는 세금계산서 제도를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차 박사 주장의 핵심은 세금계산서에 표기되는 ‘공급시기’를 ‘공급대가를 받는 날’로 표기하도록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정부나 전문가들은 다양한 이유로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차 세무사가 국회에서 익명으로 떠도는 반론 문건이라며 기자에게 보내온 문건에 따르면 “공급대가를 받은 날로 세금계산서 발행시기를 변경하면 ‘발생주의 원칙’에 맞지  않아 세금계산서를 법인세·소득세의 수입증빙자료로 활용할 수 없게 되는 등 혼란이 예상된다”는 반론이 눈에 띈다.

문건 작성자는 또 “(차 박사 주장은) 과세체계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고 특히, 납세자들의 납세편의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측면이 있어 실제 시행하기 곤란한 과제들”이라고 평가했다.

차 박사는 지난 2019년 자신의 박사 논문인 ‘세금계산서제도의 효율적 개편방안에 관한 연구’를 인용, 이런 반론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발생주의 원칙’과 관련, 차 세무사는 “현행 부가가치세 계산방법인 ‘전단계 세액공제법’은 ‘발생주의’에 따라 세금계산서를 발행, 세금영수증 기능을 부정하고 있어 ‘조리(條理, reason)’에 맞지 않은 제도”라고 비판했다. ‘조리’는 ‘사람의 상식으로 판단가능한 사물이나 자연의 본질적 이치’로, 유추해석·반대해석·일반원칙을 추출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발생주의’에 따라 발행된 세금계산서는 ‘권리의무확정주의’에 따라 세무조정 절차를 거쳐 법인세·소득세의 수입금액으로 활용된다.

차 박사는 “발행일자는 ‘현금주의’, 공급일자는 ‘발생주의’에 따라 기재하기 때문에 개선된 세금계산서를 증빙자료로 활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허구(虛構)”라면서 “세금계산서의 영수증 기능 복원을 위해 세금계산서 발행 시기가 ‘공급 대가를 받은 시기’로 변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행 세금계산서 발행시기는 ‘공급받는 자’가 아직 납부하지 않은 부가가치세를 공제·환급을 받을 수 있고 ‘의제매입세액공제’처럼 조리(條理)에 어긋나 헌법의 ‘평등권(11조)와 ‘재산권(제23조)’을 침해하는 위헌 소지를 낳는다”고도 주장했다.

차 박사에 따르면, 부가가치세제 선진국인 유럽연합(EU)의 모든 국가는 재화 또는 용역 거래가 확정된 시점, 곧 ‘공급대가를 받은 시기’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발행시기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는 한국과 달리 EU에서는 발행시기 분쟁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차 박사는 “세금계산서가 영수증 기능을 하도록 바꾸면 관련 분쟁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차 박사의 주장이 현행 부가가치세제는 물론 부가세와 밀접한 소득세・법인세 등 다른 세금과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쉽게 공론화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회에서 돌고 있는 익명 문서 작성자는 “과세체계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고 특히, 납세자 납세편의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측면이 있어 실제 시행하기 곤란한 과제”라고 폄하했다.

차 박사는 이에 “세제의 근간을 바꾸는 개혁이기 때문에 부가가치세 부서 인원 축소를 걱정하는 국세청, 현행 대기업 기득권 시스템에 안주하려는 기획재정부 등이 반길 리가 없다”고 공론화의 여려움을 토로했다.

차 박사는 지난 몇년 전부터 최근까지 국세청과 기재부 등 세금 관련 정부부처는 물론 청와대 정책실, 세금에 밝은 국회의원 등에게 자신의 주장을 이해시키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관료사회는 차 박사의 주장에 사뭇 ‘냉소적’이었다.

차 박사는 관료사회와 학계가 현행 세금계산서 제도로부터 수혜를 받아왔기 때문에 쉽게 자신의 개혁제안이 공론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차 박사는 정유업계나 금(Gold)산업계가 현행 세금계산서의 문제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표적인 산업계로 보고 있다.

차 박사의 제안이 공론화 될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9일 본지 통화에서 “차 박사의 주장을 수차례 접했고, 여러 각도에서 고민해 봤다”며 “단순한 세법 논리가 아니라 미래지향적 경제정책, 산업정책, 상생경제 차원에서 조사와 공론화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며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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