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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 ‘따뜻’, 중산층에 ‘든든’, 가진 자도 ‘보람’…신재정구상
약자에 ‘따뜻’, 중산층에 ‘든든’, 가진 자도 ‘보람’…신재정구상
  • 이상현 기자
  • 승인 2021.03.09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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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구재이 납세자권리연구소장…집권당 세금‧재정정책 밑그림
- 국민적 합의 없는 공약수준 조세재정정책, 재정‧조세체계 ‘중구난방’

3.1절 연휴 직후 맞은 월요일 같은 2일 화요일 아침.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와 정책기획위에서 세금 등 재정분야 국정과제 설계에 참여했던 한국납세자권리연구소 구재이 소장(세무사)과 ‘운좋게’ 인터뷰할 기회를 얻었다. 비접촉 전화인터뷰였지만, 우둔한 기자에게 큰 통찰과 영감을 준 인터뷰였기에 ‘운좋게’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

구 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하루 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발표한 '한국 조세재정 2030' 구상의 대강을 소개했다. 3.1절 1시간 동안 이낙연 대표에게 단독보고하는 발표 일정이었다.

구 소장은 기자에게 “앞으로 한국사회의 과제인 지속가능한 보편적 복지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조세‧재정개혁 방안을 담아 여당 대표에게 발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조세 재정은 단순히 재정조달방안에 그치지 않고 한 정부의 정체성을 의미하고 성패를 좌우한다”면서 “민주당이 기본 신재정정책으로 채택할 수준으로, 향후 10년 조세재정 의제와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귀띔했다. 다음은 구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

- 남들은 좀 쉬었던 삼일절, 이른 아침 유력 대선주자와 나눈 정책 어젠다는 좀 상징성이 있는 것 같은데.

▲ 앞서 민주정부에서도 제대로 된 이념과 정체성, 국민과 함께하는 정책방향 등을 정한 체계적 조세 재정정책을 해본 적이 없다. 최초의 일이 될 것이다.

진보 인사들 사이에서 기본소득 얘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데. 그 재원대책으로 최근 발표된 방법이 사뭇 중구난방식이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이번 의제와 로드맵이 민주당 정부에 보다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재원대책이 되길 바란다.

- 의제와 로드맵의 핵심 캐치플레이즈가 뭔가.

▲ “경제‧사회적 ‘약자에 따뜻’하고, ‘중산층에 든든’하며 ‘가진 자가 보람’을 느끼는 신재정”을 캐치플레이즈로 정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4차 산업혁명기라는 대전환의 시대에 국가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정책을 구상했다.

- 며칠 전 사회연대세 얘기를 하셨는데, 같은 맥락인가?

▲ 구체적인 솔루션보다는 포스트코로나, 4차 산업혁명시대 대전환기 조세나 재정도 마찬가지의 전환을 맞아야 한다는 문제의식부터 다뤘다. 정치인 이낙연이 말하는 ‘신복지구상’의 ‘국민생활기준 2030’ 이외에도 재원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매년 30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그러더라. 이런 복지재정 때문에, 새로 조세개혁과 재정대책 수립의 당위성은 분명하다.

사실 재원조달방안은 정치인들의 요구일 뿐이다. 국민들은 당장의 재원조달보다 앞으로 한 10년 정도를 보고 우리 조세체계와 재정운용을 어떻게 할 거냐에 더 관심이 많다. ‘신복지’라는 이름에 걸맞는 ‘신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 여당 정치인들은 경쟁적으로 부가가치세 등 증세를 거론하던데.

▲ 문재인 정부 포함 기존 정부는 단순히 재원조달방안 공약 차원에서 조세재정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다보니 재정이나 조세 체계가 중구난방이다. 조세와 재정체계 구축은 이념과 정체성, 방향성이 일단 갖춰져야 한다. 그게 올바르게 서고, 국민들한테 동의를 받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그런 재정정책이 먼저 의제(agenda)로 만들어져야 되고 그에 따라 로드맵이 세워지면 재원은 자동적으로 조달이 된다. 지금까지와 다른, 정책의 결과물로 재원조달방안이 뒤따라 오는 개념이다.

- 공감한다. 현 정치지도자들은 기본소득 재원대책 수준으로 즉흥적 증세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 국민들한테 5%, 부동산에 1% 세금을 더 물리겠다든가 하는 것은 사실 재원 대책이 아니다. 복지, 재정건전성, 복지재정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 체계적이고 질서 있게 개혁을 해야 된다. 국민들이 모두 성공하는, 단계적 합의에 의한 더욱 정교한 재정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념과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게 돼야 국민들이 수긍한다.

- 지금 한국이 저부담‧저복지에서 벗어날 때가 맞는 것인가?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조세부담률이 25%인데, 우리는 19.3% 수준이다. 복지정책을 중부담‧중복지 수준으로 하려면 OECD 평균 정도 조세 부담을 해야 한다. 매년 1%씩 조세 부담을 올리면 연간 20조원 정도가 조달이 돼야 한다. 문제는 국민들이 이런 계획에 수긍을 하느냐의 문제다. OECD 평균 수준까지 5년간 증세하면 100조원 수준인데, 이 정도 수준에서 재정부담을 감내하겠다고 하면 기본소득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이 수준 다음이 선진국형 복지다.

- 아무튼 쉽게 말해 세금은 더 걷어야 하는 것 아닌가.

▲ 맞다. 맞는데 문제는 국민적 합의다. 국민적 합의가 돼야 거기에 맞춰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재원조달방안은 사실 우선순위를 가리는 게 문제이기 때문에 언제든 얼마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적 합의’라는 전제를 충족하려면 국민들에게 거의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담세력이 있는 사람들이 보람을 느끼게끔 하면서 징수할 수 있는 방안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 것들도 가능하다는 게 나의 확신이다.

- 아, 그래서 이번 발표의 캐치플레이즈가 그렇게 결정된 것인가.

▲ 그렇다. 영세소상인들과 서민들에게는 정말 따뜻하고, 중산층에게는 더 없이 든든하며, 진짜 돈을 내야 하는 담세층, 속칭 ‘가진 자’들도 보람을 느끼는 그런 재정정책을 조세개혁과 재정대책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 ‘약자에 따뜻’, ‘중산층에 든든’, ‘가진 자도 보람’…이거 뭐 딱 대통령 선거 캐치프플레이즈다.

▲ 단순히 재원조달방안부터 강구하면 국민들은 그저 증세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조세 저항도 부를 수 있다. 국민과 함께 만드는 재정대책이 돼야 한다. 현실에 기반해 필요한 복지와 재정소요를 국민들에 소상하게 알리고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도 보람을 느끼게끔 해주는 제도가 충분히 가능하다. 구체적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재정 분야, 조세개혁 분야, 재정개혁 분야로 나눠 6~7개 주제로 발표를 했다. 추후 각각의 주제에 대해 10~15개 추가 과제를 개발해 나가는 수순으로 진행될 것이다.

- 이낙연 대표가 이런 방향을 원래 갖고 있었나? 구소장님의 제안을 수긍하는가?

▲ 우선순위와 필요성이 강구돼 만들어진 재정정책은 기본과 중심이 잘 잡혀 흔들림이 없다. 지금껏 정치권에서 이런 접근법을 요구하지 않았다. 공약을 앞세우고 세금 재원조달 방안을 내놓는 식이었을 뿐이다. 정치인 이낙연은 다른 후보에 견줘 좀 적극적으로 경청하려는 것 같다. 기본소득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사실 기존 접근 프레임에 갇혀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제기가 쉽지 않다. 조세나 재정정책에 정신이 없다 보면 국민들을 무시하게 된다. 국민들을 배려하지 못 하게 되고 끝내는 흔들리게 된다. 국민적 합의를 중심부에 세워 놓으면 거기에 기초해서 모든 디테일을 다 만들어내 갈 수가 있다.

- 한국 정치가 감당할 수 있는 접근법일지 의문이다.

▲ 스웨덴 등 북유럽도 사실 (여러 갈등을 겪으며) 그런 방향으로 간 것이다. 접근법 자체를 돌아본다면 이런 혁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낸다는 자체만 얘기하지 않고 공동체의 경비에 대한 필요성과 국민적 합의가 있었는지를 되물어 볼 일이다.

- 몇 년 전 OECD가 발표한 ‘조세재정정책 이후 소득불평등도가 심화된 7개 나라에 한국이 포함돼 정부가 ’쉬쉬‘하고 '발뺌'한 적이 있었다.

▲ 자본주의체제에서 소득불평등 심화는 불가피하다. 국가가 재정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재원조달이 쉽지 않다. 우리의 경우 선진국처럼 소득세율을 더 높여서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본다. 며칠전 말씀드린 ‘사회연대세’ 같은 개념의 ‘사회보장세’ 등 복지 목적세를 조달하는 게 필요하다.

 

구재이 소장은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 배율 두 가지가 소득 재분배기능의 지표”라면서 “(보수 진보를 떠나 역대 정권에서) 그 두 가지가 다 약간 악화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OECD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수 비율이 8%대인데, 우리는 3.14%”라며 “소득 상위 0.1%만 추가로 소득세를 더 부담하면 6조원, 상위 1%가 더 부담하면 8조원 정도의 세금이 더 걷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니계수 목표치를 정해 정부가 해당 목표 달성을 위한 조세재정정책을 운영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구 소장은 구체적으로 소득 상위 0.1% 혹은 1%의 소득세에 얹어서 과세하는 부가세(tax on tax)로 ‘복지 목적세’를 추가로 걷자고 제안했다. 좀 더 나가자면, 상속세‧증여세‧양도소득세 등 부자들의 자본이득세에도 세액의 20% 정도를 부가세로 얹어 과세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그렇게 하면 적게 10조원, 많게는 20조원 가까이 추가 세수를 조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 소장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지 말고 실효세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꿔 나가자는 것”이라며 “크게 보자면 세금 더 걷지 않고 소득재분배 개선은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토지에 대해서도 종합부동산세를 더 걷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부동산 종합과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면서 “종부세 체계가 그만큼 누진적으로 과세할 수 있도록 갖춰져 있으니 그걸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재이 소장의 발표가 9일 2022년 제 21대 대통령 선거 1년을 앞두고 사퇴한 유력 대권주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정확히 어떤 영감을 줬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가장 약한 ‘왜(why?)’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집권'이라는, 공익 닮은 사익 대신 큰 정치를 하겠다는 정치인들에게는 적잖은 울림을 줄 전망이다.

 

구재이 소장
구재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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