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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갈등 속 맞은 RCEP…“관세사 없이 감당이 될까?”
미중갈등 속 맞은 RCEP…“관세사 없이 감당이 될까?”
  • 이상현 기자
  • 승인 2021.03.16 1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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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사회 윤리위원장 후보의 절박한 호소…“표준수임료 부활 시급”
- “원산지검증요청 급증, 원산지확인 책임질 관세사 역할 더 중요해져”
- 회계사‧세무사엔 위임사무 법정, 관세사는 수임료를 경쟁입찰로 책정?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 가열된 미중무역분쟁이 바이든 행정부 들어 전략‧안보적 대립으로 확산, 사실상 반중(反中) 대오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힘겨운 균형외교를 펼쳐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많다.

전통적 동맹관계인 한일양국과 ‘가치동맹’을 강조한 미 바이든 행정부에 부응하면서도 빠르면 내년 2월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가입국으로도 활동해야 하는 한국은 외교‧안보의 큰 물결이 몰고 올 크고 작은 통상 이슈들에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임표 관세사는 최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회가 비준할 경우 빠르면 내년 2월쯤 RCEP이 발효돼 가입국들끼리는 거의 95%가 무관세 등의 특혜관세를 적용받게 되는데, 미중 통상갈등이 지속되면 원산지 검증 등 수출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현안들이 즐비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미국은 지난 12일 인도‧태평양 지역 내 전통적 주요 우방국들인 일본과 호주, 중국과 국경분쟁을 겪어온 중립국 인도를 아우른 4개 나라의 비공식 외교체 ‘쿼드(Quad·4자 협의체)’ 첫 정상회담을 열었다.

군사동맹은 아니지만 기후변화. 인권문제 등 사실상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한 쿼드를 한국같은 동맹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중국과 불편한 외교 현안을 지닌 나라들에 개방하고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크게 높아졌고, 미중간 대립과 경쟁에 따른 공식, 비공식적 통상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한국의 수출 상대국들로부터 원산지 검증요청이 쇄도하는 것이 대표적인 징후다.

유럽연합(EU)이나 인도는 중국산이 한국을 거쳐 수입되지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미국과 외교갈등을 빚는 터키가 한국 수출업체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이 미국산인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식이다.

특히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 확산에 따라 해외 관세당국이 원산지검증을 통해 한국에 벌금(과징금)을 물리거나 형사상 처벌, 수입업체와의 거래 중단 등 불이익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해외 관세당국으로부터 일반 원산지 검증 요청 건수는 2018년 전년 대비 16.5배, 2019년 1.5배로 줄곧 증가세를 보여왔다. 

관세청에 따르면, 원산지 검증 요청은 앞서 큰 이슈가 되지 않았는데 지난 2018년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면서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일반 원산지 판정 기준은 FTA 등 특혜 원산지 판정 기준과 달리 통일된 국제규범이 없고 수입국 규정을 우선 적용하며 수입국 규정이 없을 경우 한국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에 수출기업이 유의해야 한다.

정 관세사는 이런 통상환경에서 관세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의 현실은 '관세사를 고사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는 30일 치러지는 제26대 한국관세사회장 선거에서 윤리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정 관세사는 “현행 ‘외감법’에 따라 회계감사를 수임하는 회계사, 세법에 따른 외부세무조정를 수임하는 세무사 등 국가사무를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전문자격사들과 달리 관세사는 최근 세계 통상환경의 중요성 점증 와중에도 국가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관세사에 따르면, 한국 수출기업의 70% 이상이 대기업이다. 대기업들은 수많은 수출입 업무의 통관에 필요한 원산지 확인서 등을 관세사에게 맡긴다.

그런데 관세사가 대가로 받는 통관대행 보수는 대기업이 여러 관세사들로부터 견적서를 받아 싼 곳을 선정하는 경쟁입찰 방식으로 결정된다. 한국상장사협의회(상장협)가 매년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협상해 시간당 감사보수를 결정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관세사 보수의 경우 표준 수임료 자체를 폐지했고, 대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원가도 안 나오는 수준으로 깎을 수 있다. 관세사들끼리의 출혈경쟁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과감한 규제개혁을 요구했고, 당시 법령으로 정해 운용되던 관세사 수임보수가 희생양이 됐다. 2021년 현재 2000여명인 관세사 수는 당시나 지금이나 공인회계사, 세무사에 견줘 턱없이 적다. 관세사가 부도위기에 몰린 국가 구제금융의 희생양이 된 내막이다.

정 관세사는 “관세사는 국민들이 쉽게 할 수 없는 통관업무를 대리하는 자격사이지만, 회계사나 세무사와 달리 국가가 공식적으로 위임한 사무가 없어 IMF 이래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왔다”고 밝혔다.

그는 “RCEP이 타결되면 원산지 증명 업무의 중요성이 훨씬 커질 것이고, 조금만 잘못되도 수출기업과 관세당국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대기업 원가를 낮춰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달라진 통상환경에 걸맞게 관세사 표준보수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관세사 제도를 둔 이유와 지속가능한 전문자격사 제도를 위해 공직자들도 시야를 넓히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내놨다.

정임표 관세사는 “관세사가 입력하는 원산지 확인서는 고스란히 국가 무역통계의 원천 데이터가 되는 만큼, 전문성 있고 완벽하게 검증된 전문가들이 작성‧검증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중요한 국가통계를 생성하는 전문자격사제도를 법제화 해놓고, 정작 출혈경쟁으로 먹고 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관세청은 과거 경제위기 시절 규제개혁 상황논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관세사 표준보수를 부활시키는 데 앞장 서야 한다”면서 “수출기업들도 표준보수 부활로 원가가 올라간다고 여기지 말고, 복잡해진 통상환경에서 점증하는 잠재위험(potential risk)을 줄이는 투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가 주요 정책기조로 강조해온 ‘상생협력’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관세사 표준보수화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정 관세자는 “원산지 확인서가 자율로 돼 있어 수직계열화 된 제조업계 특성상 최하위 영세 협력업체가 관세사 비용을 들여 ‘원산지 확인서’를 작성하는 실정”이라며 “이런 취약성은 이미 다가온 통상환경에서 단순한 개별기업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통상위험을 방치하는 셈”이라고 밝혔다.

또 “경쟁입찰 방식으로 통관대행수수료가 책정되다보니 '을 중의 을'인 관세사들은 물가상승률조차 반영하지 못한 보수인상 수준 때문에,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무역을 배워야 할 젊은 직원들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수출주도로 성장해왔고, 앞으로 수출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원산지 확인서 업무가 갖는 국가적 중요성을 고려해 표준수임료 제도를 꼭 부활하도록 언론이 도와 달라”고 거듭 절박하게 호소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홍소영 제작=일러스트 / 출처=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홍소영 제작=일러스트 /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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