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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영 칼럼] 정책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정창영 칼럼] 정책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 정창영 기자
  • 승인 2021.03.2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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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무원들의 시간이 왔다. 정치에, 권력에 밀려 숨 죽여 왔던 공무원들이 정책을 다시 이야기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역설이다. 대형 선거가 눈앞에 다가온 정치의 계절에 공무원이 되레 숨을 쉰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마저 받고 있는 우리나라 선거제도 아래서 공무원들이 본연의 업무에 사명감을 갖고 균형추 역할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제 그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지금부터 대략 1년 정도다.

새 정권이 출범하며 소위 ‘찬란한 꿈’을 펼치기 시작하면 정작 그 분야를 담당하며 누구보다 그 업무에 밝은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조용히 사그라진다. 모든 것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새 정권이 문제가 있는 선택을 해도 전문가인 그들은 쉽게 말 할 수 없다. 기득권 옹호 세력으로 몰리거나, 아니 ‘적폐’로 찍히면 말 그대로 끝이다.

산전수전 공중전에 지하참호 전투까지 섭렵한 공무원들이 새 정권이 어설프게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에 걸릴 일은 아예 없다. 오히려 이 엉성한 부비트랩을 이용해 안전한 길을 다시 내고, 이 장애물이 해체될 시간까지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차후를 대비해 완벽한 이유를 망라한 구명(求命) 보고서가 깔끔하게 준비되는 것은 기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국정운영의 동력이었던 지난 정권의 정책들은 완벽하게 지워졌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은 일관성을 잃고 궤도에서 벗어나 ‘댕강’ 잘려 나가기 일쑤다. 그동안 공 들여온 것과 앞으로 기대되는 모든 것들이 무시되며 쓸쓸히 뒤안길로 사라진다. 나라의 명운이 걸렸던 것처럼 강조되던 해외자원개발이 그렇고, 녹색경제니, 창조경제니 모두 그렇게 됐다. 현재 살아 숨쉬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정책이 어떻게 될지 예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정책의 입안과 실행은 공무원의 손에서 이뤄진다. 단지 보조행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생성과 소멸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공무원이 주관한다. 선출된 권력이 선택을 했다면 위임된 권력인 공무원은 실행을 하는 것이다. 선택과 실행의 근간에는 물론 국민과 국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책은 선택 단계에서부터 파격이 다반사로 나왔고, 실행단계에서 곤란을 겪는 일이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책의 근간에서 국민과 현실이 소외되면서 계획과 실행 사이의 괴리가 회복불능 상태로 벌어지고 있다.

당연히 공무원의 위치가 어정쩡해졌다. 눈알 부라리는 정권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고, 그렇다고 평생 함께해야 하는 업무가 잘못되는 것을 외면할 수도 없다.

‘달도 차면 기운다’. 5년마다 반복되는 일이고 이제 또 한 번의 정권이 물리적 시간이 다 됐다. 선출된 권력을 보내는 일도 일이지만 새로 들어설 ‘찬란한 권력’의 길도 깔아야 하고, 무엇보다 이 정권의 공과가 따져질 때 ‘흠 잡힐 일’이 없어야 한다.

이제 공무원들은 눈 부라리는 권력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국민을 염두에 두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치밀하게 찾을 것이다. 잠재된 경험과 실력을 기반으로 꼭 그렇게 할 것이다.

정치권은 대형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시도와 계획을 열어 가려 하겠지만, 국민 입맛에 맞는 달콤한 정책을 제시하겠지만 적어도 공무원은 흔들려서는 안 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아울러 이 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한 정책 중 그림자가 짙은 일은 ‘마사지’와 함께 책임을 염두에 둔 복선이 깔릴 것이다. 감사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닥친다 해도 흔들림 없는 설명이 가능한 이론과 포장이 곁들여짐은 물론이다.

5년 단위로 윤회하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은 좀 클 것 같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고, 꼭 국민을 염두에 두고 평가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너무 크게 벌였거나 의도와 다르게 궤도를 많이 벗어난 정책은 공무원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되돌리거나 대처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힘에 부치면 지금이라도 호루라기를 불어야 한다. 조세정책만 해도 선(線)을 넘은 것이 많았다. 부동산 세금은 당장 지속가능한 것인지 부터 따져야 할 판이다.

지난 시간은 선출된 권력과 위임된 권력의 순도까지 쟀던 졸렬한 상황이었다. 이 시대 공직자, 공무원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더 이상 야밤을 틈타 없애고 지우는 ‘신 내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야학(夜學)이 있었다. 시대적 상황이 순수와 열정을 움직여 만든 가슴시린 배움의 현장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현실에서 배움을 향한 목마름과 열망, 일종의 부채의식까지 모아졌던 특별한 자리였다.

지금은 식사까지 제공하는 의무교육으로 대체됐고, 촘촘히 깔린 공교육 망으로 야학은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가 됐다.

목적과 행동에서 말할 수 없이 순수했던 야학이지만 그걸 운영하던 마인드와 방식은 어쩔 수 없이 그 시대로 한정된다. 만약 야학을 운영하던 마인드를 지금의 현실 교육에서 강조한다면 미안하지만 먹힐 구석이 없다. 그때와 지금은 경제적인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데다 국민 의식은 물론 정치·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달라져 있다. 당시 야학의 순수와 열정은 숭고한 모습으로 남았지만 지금 그 방식으로 해결될 일은 거의 없다.

단지 야학의 문제만이 아니다. 시대정신이라는 것도 시대를 달리하며 모습을 바꾸는 특성이 있다. 초스피드로 변하는 환경은 구체적 방법과 도구도 그때그때 바꿔 나가고 있다.

정책(policy)은 공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결정한 행동방침이다. 물론 국민을 위한 것이고, 따라서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검토하고 반영해야 한다.

특히 시급을 요하는 정책일수록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목적이 맞아도 현실 수용 적합 여부는 꼼꼼히 따져져야 한다. 자칫 한쪽만 보다가 다른 면이 받게 될 역작용을 간과해 큰 홍역을 치르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방향이 옳다고, 의욕과 힘을 가졌다고 밀고 나갈 수만도 없다. 그래서 정책 결정 과정은 많은 검토와 고민을 요구한다. 전문성은 말 할 것도 없고, 그게 잘 갖춰진 것이 곧 그 정부의 ‘실력’이다.

정책은 국민의 삶과 희망에 바로 연결된다. 이런 정책을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써 왔는지 다시 볼 때가 됐다.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시작과 과정의 증거 자료는 그대로 남아 있고 일부에서는 벌써 결과가 나오고 있다. 정책에서는 ‘결과의 왕국’도 위험하지만 수단이 목적을 배반해서도 안 된다.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안 된다는 얘기다.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에 대한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특별히 많은 것을 바꾸는 노력을 했다. 집권 초기부터 ‘우리사회의 주류를 바꾼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을 정도다.

그 결과 정책의 이름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는 과정에 있다. 코로나19 상황이지만 결코 어물쩍 넘어 갈 수 없는 세금 정책을 비롯해 재정정책, 소득주도 성장 정책, 복지정책, 대북정책, 탈원전, 적폐청산, 여기에 검찰개혁 등 각종 개혁의 이름으로 진행됐던 것들이다.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된 정책도 즐비하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며 대통령 집무실에 상황판까지 공개했던 청년 일자리 대책을 비롯해 부동산 대책, 저출산 고령화 대책, 저소득층 복지정책, 노동정책, 의료정책, 재난지원금, 방역대책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책에 세금을 투입했다.

이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결과는 곧바로 이 정부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다른 많은 수식어가 붙을 수 있지만 성적표는 수치로 계산된다. 세금이 어떻게 쓰였는가가 핵심일 수밖에 없다.

큰 선거가 수순에 들어가면서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한동안 말 꺼내기가 어려웠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평가와 결과의 계절이 눈앞에 왔다는 것을 직감한다.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고 있다.

정창영 주필
정창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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