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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염치없는 세상
[칼럼] 염치없는 세상
  • 이동기 논설위원·세무사
  • 승인 2021.08.18 16:2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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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층, 예(禮)·의(義)·염(廉)·치(恥) 겸비해야

염치(廉恥). 사전적 의미로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말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심지어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그럼 염치불구하고”라는 말을 한 뒤 호의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과거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체면을 중시하거나 허례허식에 사로잡혀 허세를 부리는 폐단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잘못된 행동에 대한 비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올바른 길로 가려고 하는 대대수의 사회구성원들 덕택에 사회공동체가 잘 유지되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인 삶이 다소 어려워도 체면을 중시하고 염치를 알고 살았던 사회가 급속한 도시화의 진행과 남들과의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어느 순간 체면이나 염치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로지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회가 된듯하다.

이렇듯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진하다보니 공공의 이익이나 공동체의 선 같은 개념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히려 원칙을 지키고 예의를 따지는 사람들이 손해 보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최근의 뉴스 기사를 보더라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 대한 소위 ‘갑질’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전직 관료나 정치인들의 사리사욕 추구로 인한 일탈 소식 등이 일반 국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그래도 예전에는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거나 법적 처분을 받게 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이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이라도 했는데, 요즘은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흉악범들조차 죄의식이 없어 보이고, 거기에다 누구보다 법을 잘 지켜야 할 정치인들이나 사회지도층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기는커녕 확정된 법원판결조차 비난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염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세상이 되다보니 어떤 일이 터지면 일단 잡아떼고 보자는 뻔뻔함과 몰염치가 일반화된 듯하다.


관자(管子)의 목민편(牧民篇)에서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으로 ‘예(禮)·의(義)·염(廉)·치(恥)의 사유(四維)’를 들고 있는데, ​이 중 ‘예’는 위아래 사이의 절도를 가리키고, ‘의’는 적합하고 타당한 행동의 표준으로 분별없이 나가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염’은 청렴결백하고 정직한 것을 말하고, ‘치’는 수치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사유(四維) 중 하나라도 없으면 나라가 기울게 되고, 둘이 없으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네 가지 모두가 없으면 그 나라는 파멸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예·의·염·치(禮·義·廉·恥)는 국가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기본 덕목이라 할 것이다.

일찍이 맹자도 인간은 본래부터 선한 마음을 타고 난다는 성선설을 주장하며 이를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사단으로 나누었다. 이 중 측은지심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뜻하고, 수오지심은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뜻하고, 사양지심은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을 뜻한다. 그리고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을 의미한다. 관자나 맹자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무릇 의롭지 못한 일을 하게 되면 부끄러워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사를 보면 힘 있는 사람일수록 잘못을 저지르고도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르는 몰염치(沒廉恥) 또는 파렴치(破廉恥)가 판을 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쁜 일반 국민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들이 부정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오히려 공식적으로 사실관계가 드러난 법원의 판결조차 부정한다면 사회적으로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최근의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염치가 없고 무도(無道)한 사회인지 실감이 날 지경이다.

 

지난 달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최종 확정된 모 전 지사의 경우에도 재수감되기에 앞서 지지자들을 향해 헌법상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의 판결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들도 앞 다퉈 그 전 지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유감을 나타냈다. 그 뿐 아니라 이 달에 있었던 전직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4년형이 선고된데 대해서도,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을 포함해 많은 정치인들과 심지어 방송인들조차 법원의 판결이 어떤 목적을 정해놓고 인위적으로 짜 맞춘 것처럼 비난하고 나섰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와 관련된 비영리단체의 부실회계 처리와 개인계좌 모금, 기부금 유용 등의 의혹으로 기소되어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현직 국회의원의 경우에도 앞으로의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에서 본인의 혐의에 대한 충분한 소명과 무죄주장을 하겠지만, 국회의원 신분으로서 이러한 의혹들이 쏟아지는 것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정도는 있을법한데도 본인은 당당하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 최근에만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 독립된 헌법기관인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칭찬하고 환영하다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부의 공정성을 거론하면서 사법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든 처사라 할 것이다. 죄를 떠나 개인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위로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법치체제 하에서 총리와 장관, 도지사 등을 역임한 인사들이 헌법에 따른 사법부의 최종판단에 대해 사과는커녕 그 판결을 부정하는 듯한 언사를 하는 것은 공동체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제27조 제4항에서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무죄추정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따라 아직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는 형사피고인에 대해 무죄추정을 하는 것이 옳을 것이고, 재판의 당사자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대한민국헌법상 최고사법기관인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오면 누구라도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할 것이다. 그게 민주주주인 것이다. 물론, 명백한 증거에 의해 법원의 판결이 오류라고 할 수 있는 경우라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심을 청구하면 될 것이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420조에서는 법에서 정하는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해 그 선고를 받은 자의 이익을 위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에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본 것처럼 헌법과 관련법에서 정하는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을 받고 본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하급심을 거쳐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면 당사자나 그 주변인들은 법원을 비난하기 전에 공인으로서 먼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사죄부터 하는 것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싶다.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예·의·염·치 없는 행동으로 인해 나라가 바로서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전체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기 논설위원·세무사

•현) 세무회계 조이 대표세무사
•현) 전경련 법무서비스지원단 전문위원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2006년)
•호주 시드니대학교 로스쿨 졸업(2009년)

 

 

 

 

 


이동기 논설위원·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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