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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과 ‘학철부어(涸轍鮒魚)’
코로나 팬데믹과 ‘학철부어(涸轍鮒魚)’
  •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21.09.02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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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 이야기다. 전국시대 무위자연을 주장했던 장자는 왕후(王侯)에게 무릎을 굽혀 안정된 생활을 하기보다는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그는 끼니조차 잇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장자는 굶다 못해 친구인 감하후(監河侯)를 찾아가 약간의 식대를 꾸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감하후는 친구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어 이렇게 핑계를 댔다. 
“빌려주지. 2, 3일만 있으면 식읍(食邑)에서 세금이 올라오는데 그때 삼백 금쯤 융통해 줄 테니 기다리게.” 
당장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2, 3일 뒤에 거금 삼백 금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체면 불고하고 찾아온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장자는 내뱉듯이 말했다. 
“고맙군, 하지만 그땐 아무 소용없네.” 
그리고 그는 특유의 비아냥 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여기 오느라고 걷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부르지 않겠나.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붕어가 한 마리 있더군. ‘왜 불렀느냐’고 묻자 붕어는 ‘당장 말라 죽을 지경이니 물 몇 잔만 떠다가 살려 달라’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귀찮은 나머지 이렇게 말해 주었지. ‘그래, 나는 2, 3일 안으로 남쪽 오나라와 월나라로 유세를 떠나는 데 가는 길에 서강의 맑은 물을 잔뜩 길어다 줄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랬더니 붕어는 화가 잔뜩 나서 ‘나는 지금 물 몇 잔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기다리라고 하니 이젠 틀렸소. 나중에 건어물 전으로 내 시체나 찾으러 와 주오’라고 하더니 그만 눈을 감고 말더군.” 
‘학철부어(涸轍鮒魚)’라는 말의 유래다. 

 

□코로나 팬데믹과 학철부어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조금만 참으면 곧 해결될 줄 알았던 미증유의 팬데믹은 잦아들기는커녕 4차 유행을 몰고 오면서 그 기세가 한층 더 사납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막대한 규모의 재정지출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으나 아직 그 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도 ‘굵고 짧게’ 이 난국을 끝내자면서 국민의 협조를 구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확진자 수가 2000명대 이상으로 불어나자, 정부는 지난 8월 20일 더 강도 높은 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현재 거리두기 단계(수도권 4단계, 비수도권 3단계)를 2주 더 연장한다는 것과 그동안 오후 10시까지 제한했던 식당과 카페의 영업시간을 오후 9시로 한 시간 더 단축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영세·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비명에 가깝다.
영업제한 업종에 올라 피해를 보고 있는 어느 커피 프랜차이즈 카페 사장의 사연이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그는 자신의 카페 영업시간을 24시간으로 전환했었다. 생존을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기에 힘들긴 하지만 그 선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코로나 이후 뜻밖의 악재가 되고 말았다. 정부는 피해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금을 풀었지만, 그의 가게는 3차 재난지원금을 나눠줄 때까지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유는 직원이 5명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24시간 영업 특성상 그의 카페는 다른 가게에 비해 고용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영업시간 제한과 경영 악화로 직원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거의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현재 고독과 피로 그리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싸우고 있다.
또 한 분, 코로나 재난의 직격탄을 맞은 호프집 사장 이야기는 이렇다. 집합제한과 영업제한으로 매출은 바닥을 쳤다. 운영자금으로 빌렸던 은행 대출이자를 갚는 것이 당장 문제였다. 궁여지책으로 오후 10시 이후부터 늦은 새벽까지 밤잠을 줄여가며 배달로 영업을 확대했다. 배달업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가 배달과 접객 장사를 병행하며 기존의 전문 배달업소와 경쟁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그래도 전업을 해서 가족관계까지 희생되는 새벽 장사는 그만하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현재 침몰 중인 접객업종에서 빠져나와 요즘 활황이라는 배달 전문업으로 탈출을 시도 중이다. 그러나 과연 성공적인 전업이 될 수 있을까 그는 불안하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계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평균 0.7% 줄었다. 최상위 20% 계층의 소득만 1.4% 늘었고, 그 밖의 중산층과 저소득층 소득은 모두 감소했다. 특히 최하위 20%의 소득은 6.3% 급감했다. 이에 따라 상위 20%와 하위 20% 계층의 소득 격차도 크게 벌어졌다. 또 정부에서 받은 공적 이전소득도 1년 전보다 37%나 줄어들었다. 전체 소득 중 공적 이전소득 비중이 상위 20% 가구는 5%인데 비해 하위 20% 가구에서는 45%에 달한다. 정부 지원금이 중단될 때 저소득층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구조다. 이래저래 저소득층은 상대적으로 힘들다.

 

□급한 곳에 더 많이, 그리고 늦기 전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당장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희망회복자금’의 지원이 지난달 하순부터 시작되었다. 집합금지 업체, 영업제한 조치로 매출이 감소한 업체 등이 대상이다. 지원유형과 매출액에 따라 최하 4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집합제한이나 영업제한 업종으로서 입은 실제 피해액에는 한참 못 미칠 수밖에 없다. 수레 자국에 고인 물이 마르기 전에 단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들의 자금 사정은 여의치 않다. 정부 정책에 따라 만기 연장과 대출 및 이자에 대한 상환 유예조치가 이뤄지고 있지만 1년 반 넘게 지속된 위기 상황에서 4차 대유행으로 매출이 더 급감한다면 종업원 급여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렵다. 상당수는 빚을 늘려 위기를 모면하고 있는데 이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암담한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 부담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들이 파산에 이르면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급한 곳을 찾아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할 이유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할수록 정부는 같은 피해 계층 중에서도 저소득층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지원 대상 확대를 강조하는 논리 중 하나는 부유층에게도 지원하면 이들이 소비를 늘려 피해 계층이 종사하는 업종에도 혜택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에 의한 소비증가는 주로 대면접촉이 필요 없는 품목에서 이뤄졌다. 고소득층은 코로나19 위기 기간에 소득 감소 없이 소비만 줄였고, 이에 따라 늘어난 저축 때문에 지원금 없이도 상황만 좋으면 소비를 늘릴 준비가 돼 있다. 반면 저소득층은 코로나19 위기 동안 소득이 급격히 감소해 소비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들 저소득층에게 지원한다면 바로 소비증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소비 진작을 위해서라도 피해계층에 집중된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 곧 5차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전체 국민의 88%에게 1인 기준으로 25만원씩 지원하기로 한 재난지원금 얘기다. 기획재정부는 애초 국민의 소득 하위 50% 또는 최대 70%를 대상으로 추진했지만 국회 논의과정에서 대상을 계속 늘리면서 88%까지 확대됐다. 그 결과 보편인지 선별인지 어정쩡한 88% 기준이 나오고 말았다. 소득계급에 상관없이 25만원씩 지급은 효과 측면에서 타당하지 않은 결론이다. 그러나 이왕 결정된 지원금이라면 서둘러 지급하는 것이 옳다. 

 

□자영업자의 자구노력도 필요

현 정부는 추경을 거듭하면서 지난해부터 해마다 100조원 안팎의 나랏빚을 쓰고 있는 형편이다. 재난 기간이 길어질수록 재정지출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영업자도 자구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 자영업은 만성적인 공급 초과 상태에 있다. 옥석을 가려 경쟁력 있는 자영업자가 자연스럽게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프집 사장처럼 다른 업종으로 전환을 모색하는 자영업자를 위해 정부는 재취업이나 재교육 등 기존 시스템을 보완해야 하겠다. 지금은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일이 급하지만 긴 안목에서 자영업 경쟁력을 높일 방안도 정부와 업계가 함께 찾아야 할 때다.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박인목 세무사·경영학 박사(본지 논설위원)

•국세청 국장 명예퇴직(38년 근무)
•세무사(세무법인 정담 대표) 
•경영학박사
•수필가
•가천대 대학원 겸임교수 
•서울세무사회 자문위원장
•(사)건강사회운동본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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