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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세청 근무자료 기증, 신영찬 전 마포지역세무사회장
[인터뷰] 국세청 근무자료 기증, 신영찬 전 마포지역세무사회장
  • 이대희 기자
  • 승인 2021.11.30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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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직 떠돌다 세무서장은 못했지만 근무한 흔적 역사에 남았잖아요”
-“열악했던 초기 국세청 전산실 근무자료 조세박물관에 기증해 뿌듯”
-20여년 세무사로서 납세자 세금 고민 해소해 줄 수 있는 것에 감사
신영찬 세무법인 진명 대표세무사
신영찬 세무법인 진명 대표세무사

“속된 말로 돈 안되는 한직을 돌다 보니 국세공무원의 꽃이라는 세무서장을 못하고 일찍 퇴직한 것에 한이 맺히기도 하지만 국세청 자료 전산화에 족적을 남기고 정년 없는 세무사로서 납세자 세금고충을 해결해 주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

1970년대 중반 8급 공무원으로 열악한 근무환경에서도 국세청 초기 전산실의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해 오늘날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실이 국세 DB공룡의 산실로 자리잡는 데 헌신한 신영찬 세무법인 진명 대표세무사의 말이다.

신영찬 세무사가 소장한 국세청 전산실 근무자료 기증에 대한 '기증증서'

신 세무사의 상담테이블에 붙어있는 국세청장이 발급한 ‘기증증서’가 그의 초기 전산실 근무 이력을 무언으로 말해준다. 증서에는 “조세박물관에 기증한 ‘전산실 작업관리 지침 등 5점’의 유물은 전시 및 연구자료로 영구 보존하여 대한민국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교육연구 자료로 활용할 것을 약속한다”고 되어 있다.

단 몇 줄로 표현된 기증증서 문구의 이면에는 기구하다고 할 신 세무사의 공무원 생활 애환이 숨겨져 있다. 그간 남에게 좀처럼 하지 못한 말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국세청 공직생활을 30~40년 할 경우 50대 중반에 서장이 되는데 신 세무사는 그러지 못하고 조기 퇴직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에 대한 ‘한’이 있다. 과거에는 정년 2~3년 전에 퇴직을 하면 세무서장으로 발령을 내주고 3년 정도 월 1000만원 정도의 고문료가 보장되는 구조였다.

이런 국세청의 관행적 공직 생활에서 발목을 잡은 것이 발령 5년차에 맡게 된 국세청 전산실 근무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공직에 복귀한 1975년 맡게 된 업무가 2년 전 생긴 국세청 전산실이었는데 전산 프로그램을다루는 사람이 전무하던 시절에 그 기능을 보유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전산업무는 생소하고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한직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납세자와 접촉이 전혀 없는 부서이다 보니 모두들 꺼리는 보직이었다. 그 역시 개인납세자를 상대하는 부가가치세과 등의 근무를 원했다. 하지만 ‘2년만 있어 주면 원하는 곳으로 옮겨주겠다’는 상관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국세청 전산화를 위한 사명에 충실했다.

전산실이라고는 있지만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75년에 국내 유일한 전산 교육이었던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프로그램 교육을 동료들과 받았는데 6개월 과정의 학원비가 당시 월급의 3분의 1이나 되었다. 그러니 같이 수강했던 동료들은 중도에 모두 그만뒀고 신 세무사만 6개월 과정을 모두 마쳤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박봉인데다 지원이 없는 근무환경에서 전산실 근무는 그야말로 고군분투였다. 명절에 고향 갈 여비가 없어 동료들의 숙직을 밥 먹듯 대신해야 했다고 신 세무사는 어려운 시절을 회고했다.

또 총무처에서 실시한 프로그램 교육을 비롯해 온갖 고생을 다하며 전산실 업무 정상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 당시는 미국이 전산화를 주도하던 때여서 미 국세청에 출장까지 가서 프로그램을 배우고 매뉴얼도 미국식으로 만드는 것이 시급했다.

신 세무사는 그 때 만든 것이 ‘전산실 작업관리 지침’이라며 색 바랜 복사본 철을 보여줬다. 철필을 잉크에 찍어 그가 직접 쓰고 작성한 것이었다.

이렇게 국세청 공무원 본연의 업무와는 동떨어진 분야에서 5년을 동분서주한 끝에 ‘이제는 제대로 된 근무처로 가겠지’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상관의 난데없는 한 마디가 신 세무사를 망연자실하게 했다.

“프로그램을 다루는 사람이 없으니 2년만 더 있으면 좋은 보직으로 보내주겠다.”

인내의 한계를 느낀 신 세무사는 급기야 폭발했다. 그는 당시 상관실을 찾아 “왜 좀스럽게 말단 공무원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강하게 항의하고 침상 쪽에 침을 뱉는 등 격앙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자 일선 세무서에 발령이 났는데 담당 업무도 없는 차석 구역의 보조 보직이 주어졌다. 국세청 전산조직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한 그에게 조직이 해준 대우였다. 그가 인터뷰 중에 여러 차례 얘기한 ‘한’의 실체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신영찬 세무사가 1977년 국세청 전산실 근무시 작성한 '전산실 작업관리지침'

그 뒤에도 1980년대 특수한 업무를 하는 임시조직에서도 다년간 근무했는데 “임무가 끝나면 국세청이든 타 부처든 원하는 곳에서 근무하게 하고 대통령 표창과 함께 특별승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조차도 공수표였다.

다른 동료들이 부가세과나 법인세과 등 본연의 보직에서 성장해 나가는데 반해 신 세무사는 남들이 기피하고 빛이 나지 않는 특수한 보직에서 7~8년을 근무했으니 재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고 신 세무사는 털어놨다.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통해 세무서장을 하고 퇴임하겠다던 그의 공직생활은 그렇게 뒤틀린 끝에 28년 만에 마감하게 되었고 세무사의 길로 들어서 또다시 24년이 지났다.

진절머리가 날 법도 한데, 41년 전 국세청 전산실의 매뉴얼과 작업관리지침 등을 조세박물관에 기증하게 된 연유를 물어봤다.

“예전에는 선산에 묘지가 있어 안장을 했지만 요즘은 80% 이상이 화장하고 일부는 산에 뿌리는 걸 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조세박물관에서 관련 자료를 기증받는다고 해 국세청에서 근무한 흔적이라고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기증하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평이했던 공직생활이 아니어서 한 때는 섭섭한 마음도 많았지만 자신이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수행했던 업무의 흔적이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교육 자료’로 활용된다는 것에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44년 전인 1977년 만들어진 작업관리 지침 원본 등은 조세박물관에 2016년 기증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복사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신영찬 세무법인 진명 대표세무사]

▲경남 밀양, 밀양실업고, 명지대 경영학과

▲미국국세청 IRS 국비연수(종소세 및 전산연구)

▲모범공무원 수상(1990)

▲(전) 마포지역세무사회장

▲(전)한국세무사회 정화조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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