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 꿈꾸던 청년 수험생 울린 ‘세무사시험 불공정 논란’ 해법 안보여
2021년 세무사업계는 세무사제도를 지켜내느냐 나락으로 떨어지느냐의 기로에 선 한 해였다.
2004년에서 2017년 사이 변호사자격자에 세무업무를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벌인 3년 7개월에 걸친 변호사와의 지루한 싸움이 세무업계의 승리로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변협 등 변호사업계는 또다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며 싸움을 멈추려하지 않고 있어 여진은 남아있다.
또 올해 세무사들은 본의 아니게 조세전문가로서의 위상을 구겼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법전문가로서 납세자의 세금 고민을 해결해줘야 하는데 잦은 세법 개정에 따른 경우의 수가 많아 양도세 상담을 꺼리게 된 것. ‘양포 세무사’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했다.
‘공정’도 화두였다. 유례없는 과락률을 보인 세무사시험의 불공정 논란으로 청년 수험생들의 분노가 폭발해 세정가를 뒤흔들었다. 현재진행형인 이 사안은 불합격자들의 집단소송 제기 등 강도가 높아지고 있어 파장이 확산될 조짐이다.
올 한 해 세무업계의 주요 이슈를 짚어본다.
◆부동산 정책 26차례 변경에 양도세제도 누더기…‘양포세무사’ 등장
‘양포세무사.’ 양도소득세 상담을 포기하는 세무사를 일컫는 신조어다.
올해 세무업계는 이 신조어 때문에 조세전문자격사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야 했다.
실제 현장 세무사들 사이에는 “너무 복잡해서 양도세 계산을 할 수가 없다. 상담에 문제가 생기면 큰 곤란을 겪게 되는데 안하는 게 상책”이라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납세자 세금고충을 해결하고 보수를 받는 것을 업으로 삼는 세무사가 돈 벌이를 마다하는 웃지 못 할 기현상이 벌어진 것.
문재인 정부에서 26차례나 부동산 정책이 바뀌고 양도소득세제도 여기에 맞춰 춤을 추다보니 아무리 조세전문가라 하더라도 납세자가 원하는 답을 깔끔하게 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양도세 분야 권위자인 안수남 세무사조차도 “수시로 비과세와 중과세 요건이 개정돼 조세전문가들 조차 비과세와 중과세 판정을 정확히 할 수 없고 양도를 결정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지난해 국세청에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3243건의 양도소득세 관련 서면질의가 쏟아진데 이어 올해에도 6월까지 2863건으로 폭증한 통계치가 누더기 세제의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 정책의 빈번한 제도변경도 문제지만 조세제도를 활용하는 것 역시 성공사례를 찾기 어려운 만큼 지양해야 한다는 조세학자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무업무 영역 다툰 세무사와 변호사의 3년7개월 쟁투…세무사 ‘승’
거대 기득권 법조세력을 꺾고 세무사업계의 당면 현안인 세무사법이 지난달 11일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8년 4월 26일 헌법재판소가 세무사자격 보유 변호사의 세무대리를 제한하는 세무사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3년7개월만이며, 2년 가까이 세무사 신규등록을 할 수 없었던 입법공백도 해소됐다. 세무사업계는 오랜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경희 세무사회장과 집행부는 첫 임기 2년은 물론 지난 6월 재선 이후에도 5개월 동안 꼬박 국회를 뛰어다녀야 했다.
2004년부터 2017년 사이 세무사자동자격을 취득한 1만4000여명의 변호사에게 ‘기장과 성실신고확인 업무’를 허용할 경우 세무사제도 자체가 허물어진다는 위기감이 세무사업계에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세무사법은 20대 국회서 천신만고 끝에 법사위에 올라갔으나 심의조차 못하고 회기종료로 법안이 폐기되는 아픔을 겪었다. 21대 국회에서도 기재위와 법사위에서 율사출신 의원들의 집요한 방해로 큰 어려움을 겪은 뒤에야 마침내 지난달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비록 오래 걸리긴 했지만 이번 세무사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는 세무사회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국회 구도에서 얻어낸 값진 성과로 평가된다. 변호사에 대한 업무제한 외에도 세무플랫폼의 소개·알선 금지, 전관예우 금지, 명의대여 처벌 강화 등 많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율사 출신 의원들이 즐비한 기재위와 법사위에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싸움을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세무사 출신 의원의 배출이 시급하다는 과제를 남겼다.
또 세무사법 개정을 지켜본 일부 회원들 사이에서는 세무사회 임원진과 특정 전직 회장에 의존하는 임시방편적 국회 활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유례없는 세무사고시회의 ‘세무사법 통과 촉구’ 800일 ‘릴레이 시위’
한국세무사고시회의 세무사법 개정 활동은 2018년 4월 헌법재판소가 세무사자격 보유 변호사의 세무대리를 제한하는 세무사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3년7개월간 끊이지 않았다, 이동기, 곽장미, 이창식 회장 등 3대에 걸친 집행부와 회원들의 세무사제도 지키기 ‘릴레이 시위’ 과정은 눈물겨울 정도다.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임원들과 고시회원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투쟁자금을 마련해야 했고, 혹한과 폭서에 몸을 던지며 세무사제도와 업역을 지켜내야 한다는 하나의 목표로 질주했다.
변호사의 세무사자동자격 폐지를 촉구하며 1년여 국회앞 릴레이 시위를 주도해 자동자격 폐지 완결에 큰 역할을 했던 이동기 전임 회장 때부터 투쟁 불씨가 지펴졌다. 2019년 9월 ‘여장부’인 곽장미 고시회장 당시에는 서울역에서 개최된 사상 최대 규모의 세무사 집회와 대대적 일간지 광고, 1인 릴레이시위 등이 계속됐다.
전대 고시회장과 집행부의 활약을 이어받은 이창식 현 회장의 대국회 활동은 더욱 많은 회원들의 참여하에 치열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김상철, 구재이 등 전직 고시회장들을 비롯한 회원들의 격려와 자발적인 참여가 속속 이어졌다.
국회앞 1인 릴레이시위는 무려 800여일 지속돼 회원들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고 언론들도 앞 다퉈 보도해 여론이 조성되면서 국회의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국회활동에서 한국세무사회가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부분을 세무사고시회가 아무런 지원 없이 ‘야전군’ 역할을 톡톡히 해 변호사업계의 세무사 업역침탈을 막아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무사 2차시험 세법1부 과락 82.13%…뿔난 수험생들 집단저항 계속
지난 1일 합격자가 발표된 제58회 세무사 2차 시험에서 ‘세법학 1부’ 응시생 가운데 82.13%가 과락으로 불합격했다. 과목점수 40점 이하면 과락이다. 최근 5년간 세법학 1부 평균 과락률이 38.5%인 것에 비해 2배 넘는 수치다.
이에 따라 평균점수 60점 이상을 받고도 세법학 1부에서 과락을 받아 불합격한 수험생이 대거 발생했다.
논란은 국세청 등 세무공무원 경력자들이 면제받는 세법학 1부 4번 문항에서 0점을 받은 일반 응시자들이 속출했다는 의혹 제기에서 출발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15일 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받은 ‘세무사 2차 시험 공정성 논란 관련 보고’ 문건에 따르면 이 문항에서 0점을 받은 응시자들이 2025명에 달했다. 0점자 비율은 전체 응시자 3962명의 절반이 넘는 51.1%. 이 문항에서 0점을 받은 응시자들은 2018~2020년 평균 334명에 불과했지만 올해엔 6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특히 합격자 706명 가운데 33.6%인 237명이 이 과목에서 면제 특혜를 받은 세무공무원 출신이었다. 지난 5년간 합격자 중 세무공무원 출신자 비율이 평균 7.4%였는데 올해는 무려 5배 가까이 늘어났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세무사시험 특혜 의혹’을 제기한 배경이다. 탈락한 수험생 단체인 ‘세무사시험제도 개선연대’는 지난 8일부터 채점기준 공개와 세법학1부 과목 재채점 등을 요구하는 차량시위를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집단행동에 나섰다.
11일 국회 앞 집단 피켓시위, 14일 산업인력공단·국세청·기획재정부에 근조화환을 보내는 ‘근조화환시위’에 이어 17일에는 종로 보신각 인근에서 집단시위를 벌였다.
‘세시연’은 지난 14일 집단소송을 진행할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달 중 소장을 제출한다고 밝히고 있어 세무사시험 불공정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